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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알라 Nov 19. 2023

엄마의 대장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엄마 아프지 마! 감기 정도는 괜찮아.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나 카페에서 수다를 떨었다.

어떤 주제의 대화 끝에 평소엔 언급조차 하지 않던 '부모님 건강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한 녀석의 어머니가 최근 몸이 좋지 않아 검사해 보니 암에 걸려 서울에 있는 병원에서 수술받고 지금은 회복 중이라 했다.

 어떻게 위로의 말은 건네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다른 한 녀석이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갔다.


 "사실 우리 아빠도 건강 검진 했는데 혈액암인 것 같다고 이번 주 일요일에 검사 차 병원에 입원해."


 "우리가 이제 이런 얘길 할 나이가 되었네."


 "그러게."



며칠 뒤 엄마가 새벽에 식은땀이 날 정도로 배가 아파 잠을 못 잤다며 병원에 가봐야겠다고 했다.

피검사도 하고 복부 초음파도 했는데 아무 이상이 없다 해서 위장약만 처방받아 왔길래 다행이다 싶었는데, 그 뒤로 또다시 새벽만 되면 찌르는 듯한 통증에 엄마는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친구들과 나눈 이야기들이 생각나서 그런지 엄마의 통증이 예사로 받아들여지지 않아 하루종일 신경 쓰였다.


 "대장이랑 위 내시경 예약하고 왔어. 연차 쓰기 싫은데 아무래도 안 되겠어."

일하는 게 너무 재밌다며 밤마다 빨리 날이 밝아 출근했으면 좋겠다는 엄마가 연차까지 쓰다니 괜히 더 겁이 났다.


 "나랑 같이 가. 수면 마취라 보호자 있어야 해."



간호사가 안내해 준 보호자용 소파에 앉아 엄마가 탈의실에서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환자복으로 갈아입은 엄마가 휘리릭 너무 빨리 지나가는 바람에 "검사 잘 받고 와"  인사할 타이밍을 놓쳤다.

매년 해오던 엄마의 내시경 검사인데 이날은 유난히 더 심란했다.


 "보호자 분, 어머니 내시경 시작했습니다. 앞에 모니터 보이시죠? 저거 보시면 되세요."


 간호사의 손 끝이 향하는 곳엔 작은 모니터가 있었고 엄마의 대장으로 보이는 매끈한 살색 덩어리들이 넘실대고 있었다.

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 정 자세로 고쳐 앉아 1초도 놓치지 않겠다는 심산으로 모니터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본다고 아니?'

내 안의 다른 내가 나에게 물었다.


 '봐도 모르지만 내가 지금 엄마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뿐이야.'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대답했다.



 "보시는 대로 대장은 아주 깨끗합니다. 좀 더 정밀한 검사를 위해 조직 검사를 의뢰해 놨고 결과는 다음 주에 나오면 연락드릴게요. 위는 요기 요기 보이시죠? 좀 부어있네요. 염증도 보이고... 심각한 건 아니니 위장약 챙겨드릴게요."

 촬영 사진을 보며 의사 선생님께서 조목조목 설명해 주었다.


염려했던 일이 생기지 않아 마음이 놓이는 순간 엄마가 조심스레 입을 뗐다.


 "저... 선생님, 햄버거 먹어도 되나요?"


 "엄마... 검사 끝나고 죽 먹어야 돼. 햄버거는 무슨..."

예상치 못한 질문에 당황한 듯 의사 선생님이 헛웃음을 지었고 나는 무안했다.


 "주말 내내 검사 때문에 제대로 못 먹었더니 햄버거가 너무 먹고 싶어서요."


 "자극적인 것만 피하시면 되세요. 맵거나 외엔 드셔도 되세요."


 "아이고,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행히 병원 옆에 롯데리아가 있어 일부러 찾아가지 않아도 된다. 엄마는 새우버거로 사 오라는 명령을 내리곤 은행 볼일이 있다며 롯데리아 옆 새마을금고로 갔다.

집에 오자마자 손 씻고 햄버거 봉투를 연 엄마가 원망 섞인 눈빛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감자튀김이 없잖아! 세트로 안 샀어?"


 "새우버거만 얘기해서 버거만 샀는데?"


 "감자튀김도 먹고 싶은데!"


 "콜라도 안 마시니까 당연히 버거만 사 오라는 건 줄 알았지! 그럼 진작 세트로 사 오라고 말을 해 주던가!"

 혹시라도 엄마에게 큰 병이 찾아온 건 아닌가 걱정하며 애틋했던 시간은 지나가고 다시 별 거 아닌 일로 으르렁대는 모녀 사이로 돌아왔다.



몇 번이고 새우버거 세트로 사 오지 않았다며 원망 들어도 좋으니 엄마가 아프지 않기를.

백 번 양보해서 잠시 스쳐 지나가는 감기 정도로만 아프기를.

바라고 바라고 또 바라며 내일 바리스타 수업 다녀오는 길에 새우버거 세트로 사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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