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로 Jun 16. 2024

당신의 전남친(들)에 대해서

과거의 아픔은 건들지 않을게요

당신이 사랑에 빠졌을 때  


앞선 1화에서 언급했듯이 '혼란형 애착 유형'은 사랑을 향한 깊은 허기가 있다.


그래서 매번 어떤 것으로든 채워보고자 하지만 결과적으로 마음속의 빈 공간은 채워지지 않아

스스로를 '외롭고 쓸쓸한 존재'라고 정의 내리며 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사랑을 향한 깊은 허기가 깊어도 너무 깊어 이 생각마저도 어떻게든 밀어낸다.

외롭고 쓸쓸한 존재임을 스스로 알면서도 계속 사랑을 갈구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혼란형 애착 유형은 사랑에 있어서 철저히 모순적이다.

사랑이 공포스럽게 느껴지면 재빨리 도망가고 싶어 하고,

사랑이 부족하게 느껴지면 강하게 달려가고 싶어 진다.

그래서 혼란형은 불안형 & 회피형, 두 가지의 모습을 모두 갖고 있는 것이다.


아래는 혼란형이 사랑할 때, 나타나는 특징이다.

<혼란형이 '불안형'이 될 때>
 
- 상대의 유형: 나르시시스트, 회피형 애착
- 초반 회피형처럼 태세를 취하다 상대가 자신에게 확신을 주지 않는다 느껴지면 불안형으로 돌변한다.

1) 마음을 여는 순간 연인에게 집착한다.
2) 나를 버리고 떠나지 않을까 두려워하며 사랑을 확인받고자 한다
3) 연인이 사랑한다 말해도 의심이 된다.
4) 연인의 사소한 행동 변화를 애정과 연결시켜 부정적인 생각에 빠진다.
5) 연인에게 자신의 마음을 보여주면 나를 떠날 것이라 생각한다.
6) 연인에게 마음을 열면 상대 또한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7) 수용되지 않을 무리한 요구 조건을 제시한 후 거절당하면 상대의 상황 고려하지 않고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라면 관계를 종결한다.

<혼란형이 '회피형'이 될 때>

- 상대의 유형: 자신에게 빠르게 관계의 발전을 원하며 접근하는 상대
- 사랑=공포이기 때문에 회피형 특징은 덜 나타난다. 트라우마가 자극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혼란형은  불안형이 되는 경우가 더 많다.

1) 연인이 심리적으로 가까워질 때, 마음과 반대로 밀어낸다.
2) 이성이 자신을 좋아하는 것을 알면서도 아닐 것이라며 스스로 외면하려고 한다.
3) 내가 말하지 않아도 연인이 자신의 마음을 모두 알아차려서 순응적으로 해결해 주길 원한다.
4) 진정한 운명이 있을 것이란 역기능적 믿음에 사로 잡혀 있다.


비일관적인 양육 환경의 혼란 속에서 어른이 된 혼란형은

결국 자신이 그토록 괴로워하며 도망치고 싶었던 비일관적인 사랑을 주고 있는 것이다.


마음이 아닌 '머리'로 사랑을 하고,

서로의 관계와 상대에게 미칠 영향을 고려하지 않고 온통 '나'의 상황과 상태에 대해 관심이 쏠려있다.

쉽게 상처 받고, 쉽게 울컥하고, 지나친 고민을 하며, 갑자기 단호한 결정을 내리며

사랑 앞에서 무기력하게 '평온한 나'를 잃어버리고,  텅빈 마음 속으로 스스로를 서서히 침몰시킨다.

 

당신의 사랑엔 '아주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내 과거의 연애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연애를 하며 느꼈던 괴로움의 근원은 모두 내게 있었다.


당신의 연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계속 말하지만 혼란형에게 '사랑 = 공포'다.

혼란형에게 사랑은 '공포와 불안이 자극된 상태'를 의미하기도 한다.


저기 먼 나라의 살면서 한 번도 듣도 보지 못한 음식의 사진을 보여주며

'맛있겠죠?' 물어보는 사람에게 '아주 맛있겠다'며 군침을 흘리는 사람은 세상에 없을 것이다.

내가 먹어 본 음식, 그 맛을 아는 음식을 보며 사람들은 군침을 흘린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당신 자신도 모르게 건강한 관계도 당신에게 익숙한 '불안과 공포'의 관계로 관계를 몰아 넣었을 수 있다.

혹은 당신 자신도 모르게 당신에게 익숙했던 '불안한 상대'에게 이끌렸을 수도 있다.

당신의 트라우마를 자꾸만 자극하는 상대 (예컨대, 회피형 혹은 나르시시스트)는 아니었나?

어느 것이든 아름다운 추억을 차치하고 헤어지는 그 순간까지 상대와의 만남은 불안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여전히 놓지 못한 과거의 사랑이 있다면 이제 놓아주길 바란다.


이제 그 사랑은 당신에게 과거의 추억이자 '건강한 사랑'을 배우고 다시 시작할 계기가 된 것 뿐이다.

더이상의 집착을 그만두고, 이별을 의연하게 수용하고, 나아갈 시점이다.


그리고 지금부터 당신이 그토록 바라던 '건강한 사랑'을 위해 아래 세 가지 사실에만 집중하길 바란다.  

1 - 당신이 채워야 하는 마음속 깊은 구멍이 무엇이고,

2 - 당신에게 익숙한 사랑의 모습이 아닌 당신이 추구해야하는 사랑의 모습이 무엇이고,

3 - 당신이 단단히 오해하고 있는 사랑의 편견과 고정관념은 무엇인지 말이다.

 

과거의 연애로부터 당신이 알아차려야 하는 것


에리히 프롬의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에 이런 구절이 있다.

삶을 사랑하건, 다른 사람이나 동물, 꽃을 사랑하건 모든 종류의 사랑에 적용되는 기본 원칙이 있다.
내 사랑이 적절하고 상대의 욕망과 본성에 맞을 때만 나는 사랑할 수 있다.
적은 물을 필요로 하는 식물이라면 그 식물에 대한 사랑은 필요한 만큼만 물을 주는 것으로 표현된다.

'식물에 무엇이 좋은지'에 관련된 선입견이 있다면, 가령 최대한 물을 많이 주는 것이
모든 식물에 좋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식물을 해칠 것이고 죽일 것이다.
나에게는 식물이 사랑받아야 할 방식대로 식물을 사랑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단순히 사랑만 하는 것으로는, 다른 생명체가 '잘되기를 바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식물이, 동물이, 아이가, 남편이, 아내가 뭘 필요로 하는지 모르고
무엇이 상대에게 최선인지 정한 내 선입견과 상대를 통제하려는 욕망을 버릴 수 없다면
내 사랑은 파괴적이다. 내 사랑은 죽음의 키스인 것이다.


이 글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은, 먼저 '사랑하면 [     ] 한다'는 선입견과 편견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에리히 프롬이 지적하는 사랑의 실패 혹은 환상이라고 보는 상황은 아래와 같다.


1. "드디어 찾은 내 반쪽" 숭배적 사랑 : 흔히 상상하는 상대를 우상화하며, 자기 자신 안의 힘을 찾는 대신, 상대에게서 생산적인 힘을 찾는다. 그러나 대체로 우상시하는 자의 기대에 맞춰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에 결국은 실망하기 마련이고 따라서 그 사랑은 실패하고 만다.


2. "그게 바로 저게 진짜 사랑이지" 감상적 사랑 : 현실이 아닌 영화, 드라마, 사랑이야기, 사랑 노래 등을 통해 대리 만족하며 사랑을 꿈꾸는 상태다. (아마 숭배적 사랑 와 이어지는 상태라고 생각하다)


3. "상대는 도대체 왜 그러는걸까? " 투사적 사랑 : 자기 자신의 문제를 회피하고 그 대신에 상대의 결함이나 결점에 관여하려는 '투사적 사랑'이다. 어떻게든 상대방을 개조하려고 하고, 있는 그대로의 상대를 존중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잣대로 상대와 관계를 평가하는 사랑이다. 그러다 어떠한 문제도 각자 스스로의 힘으로서만 해결될 수 있고 남이 대신 해결해 줄 수 없기 때문에, 자기 자신의 문제는 내면에서 풀리지 않은 채로 남게 되고, 그의 사랑은 결국 실패로 끝나게 된다.


혼란형은 앞서 말했듯이 사랑에 대한 '올바른 경계와 기준'이 없다.

오히려 잘못된 편견과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경우가 많다.


사랑이 공포였던 혼란형에게, 사랑을 믿는 일이 제일 어렵다.

오히려 '내게 상처주지 않을지, 변하지 않을지'에 대해서만 신경이 곤두서 있기 때문에

본인이 생각했을 때 사랑이 식었다고 느껴지면 상대를 자꾸 흔들고 시험해보려 한다.


그리고 '그 사랑이 식었고 안식었고, 사랑이 맞고 틀리고'를 판단하기 위해  

지금껏 자신이 보고 듣고 안다고 생각하는 '사랑의 기준'을 판단의 근거와 기준으로 사용한다.

자신 안에 그 기준이 없기 때문에 외부에서 그 기준을 찾는 것이다.


혼란형에게 그 과정이 상대를 신뢰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자 생존의 전략일지 몰라도

'사랑을 향한 강한 의심과 경계'는 상대에게도, 서로의 관계에게도 참으로 가혹한 과정이 아닐수없다.


그 가혹한 과정 끝에 결국 틀린 사랑, 식어버린 사랑이 결론나고

상대는 이제 객관적으론 나쁜 상대든, 주관적으론 맞지 않는 상대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역시 내가 맞았어' 했다면, 당신은 이기적이었고 아주 단단히 틀렸을지 모른다.


혼란형은 우선 건강한 사랑을 위해서 강한 긴장감과 경계심을 풀어야 한다.

더불어 축적된 사랑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반드시 해소해야 한다.


그리고 다음의 세 가지를 꼭 기억했으면 한다.


첫 번째, 사랑만으로 당신의 '빈 마음'을 채울 수 없다는 점

: 사랑하면 당신이 늘 외롭고, 섭섭하고, 서운하다면 그것은 당신의 빈 마음을 상대로 채우려 했기 때문이다. 당신의 빈 마음은 당신만이 채울 수 있으며, 그것이야말로 당신에게 필요한 진짜 사랑이다.


두 번째, 사랑은 '배우고 훈련'이 필요한 과정이라는 점

: 사랑은 단지 사랑받을 올바른 상대를 만나면 저절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혼란형에게 있어서는 더더욱 사랑을 배우고 훈련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당신이 지켜보고 관찰했던 '사랑의 모습'을 흉내 낸다고 저절로 당신의 빈 마음이 채워지면서 성숙한 사랑에 도달하지 않는다. 지금의 사랑은 당신의 불안한 마음과 닮았다.


세 번째, '성숙한 사랑'은 분명 있다는 점

: 세 번째 명제는 매우 개인적인 주장일지 모른다. 다음 화에서 더 자세히 다룰 예정이지만, 지금에서야 비로소 나를 지키며 관계를 지킬 수 있는 '사랑 방식'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정하기 부끄러워도 내 과거의 사랑 방식에는 자기 반성이 필요했다는 점을 인정한다.




사랑할 때 왜 그렇게 텅 빈 마음이 명확히 느껴졌는지,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먼저 사랑하라고 강조했는지,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제대로 '사랑'을 배우면서 그 이유를 알게 됐다.


평생 사랑을 못할 것이라고,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아갈 것이라고

평생 남의 연애를 부러워하며 늙어갈 것이라고, 스스로 위축되고 실망해왔던

내가 비로소 깨달은 '성숙한 사랑'에 대해 최대한 공유 해보고자 한다.


참고로, 정답이 아닐지 모르지만 난 앞으로 그게 정답이라고 믿고 살 계획이다.

텅빈 마음을 채우면서도, 타인과 건강한 관계 맺기를 하는 방법에 대해

당신에게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 참고 자료 >

-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 <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 박상미 교수(심리상담가/문화심리학자) 심리학 관련 영상 다수 참고  

-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aver?volumeNo=34142917&memberNo=3498055

이전 01화 사랑할 때 불행한 '혼란형 애착 유형'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