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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경 Aug 08. 2021

고장 난 시계로 살아가는 법

열 번째 이야기

여느 때처럼 무더운 여름밤. 어두운 달빛에 기대며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오니 느닷없이 벽에 붙어있던 포스터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양면테이프가 더위에 녹아 접착력이 약해지면서 이내 떨어진듯하다. 새삼 이 여의 더위에 손끝이 턱 하고 막혔다.


두어 번 다시 붙여볼 시도를 하다, 어차피 떨어질 것 같기에 가을 즈음에 다시 붙여야겠다 하며 책상 위 모니터에 걸어두었다.


모니터 아래엔 큼지막한 LED 시계가 놓여있다.

핸드폰을 제외한다면 우리 집에서 유일한 시계이다. 두어 달 전 새집으로 이사를 온 이후, 그 시계는 이 집에서 나름 상징적인 존재였다.


출근을 준비할 땐 5분 단위로 시간을 알려주는 알림이었으며, 핸드폰마저 덮어둔 모두가 잠든 새벽 즈음에는 내 방 침대에서도 선명히 보이는 유일한 빛이 되었다.


모니터에 걸어둔 그 커다란 포스터는 시계마저 가려버렸다.

갑자기 시계가 보이지 않으니 생각보다 불편했다. 하지만 딱히 둘 곳도 없고 어차피 핸드폰이 있으니 괜찮겠지 치우지 않았다.


오롯이 나를 채우기 위해 잠시 off를 눌렀던 일요일, 되돌아보니 제법 신기한 일이 있었다. 내가 오늘 한 번도 시계를 보지 않았던 것이다.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휴일, 나는 빛 한점 새어 들어오지 않는 어둠 속에서 잠에 들었다가 보고 싶던 책도 두 권이나 읽었다. 창밖으로 비치는 구름을 따라 산책을 나가고, 스벅에 들려 커피 한잔을 사들고 올라와 좋아하는 노래를 들었다. 아, 영화는 자기 전에 볼 듯하다.


조만간 다시 포스터를 붙이겠지만 시계는 왠지 오래간 가려둬야 할 듯하다. 하루 24시간을 사는 게 아니라 그냥 지금을 사는 사람, 아침 10시와 저녁 8시가 아니라 유독 구름이 맑은 날, 별빛 하나 없는 고요한 밤을 사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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