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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운 Oct 28. 2017

이방인

도심의 카페에 노트북을 켜놓고 앉아 있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루 종일 여기 있어도 아는 사람을 절대 만나지 않겠구나. 아는 이가 지나다 "어, 다운아!" 말을 건네는 일 같은 건 일어나지 않겠구나.'


조금 낯선 기분이 들어 노트북을 덮고 고개를 들었다. 곧장 쓸쓸해져야 할 것 같은데 묘하게 안심이 되었다. 게다가 나는 약간 웃고 있다. 그날부터 내내 '이 마음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하던 중이었다. 아는 사람이 없는 낯선 도시에서 비로소 마음이 편안해지는 이 마음은 어떻게 시작된 걸까.

아무도 만나지 않고 집에서만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생각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기원을 알 수 없는 의무감이 있었고, 세상의 기준에서 벗어나 뒤처지는 것처럼 보이기 싫었다. 회사에서 인정받고 싶었으며 친구들을 잃기 싫었고 모임에서 제외될까 불안했다. 그래서 꼬박꼬박 회사에 출근을 했고, 정기적으로 부모님 댁을 방문했으며, 친구들을 만나고 경조사를 챙기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모임에도 나갔다. 그 외에도 집 밖에 나가서 해야 할 일은 너무나 많았다.

집 밖에서 시달리다 세상만사 귀찮아지면 집에만 틀어박혀 며칠이고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이 또 때때로 들었지만 그럴 때 주변에서 쏟아질 걱정과 염려는 생각만 해도 부담스러웠다. 그것을 감당하기보다는 차라리 밖으로 나가는 편이 나았다. 모든 날에 나는 꾸역꾸역 밖으로 나와 내가 괜찮음을 알렸다. 그러는 동안 좀 지쳤던 것도 같다.

외국에서 사는 일은 어쩌면 '집 안'에 있는 것과 비슷하다. 부모님 댁에 정기적으로 인사를 가지 않아도 되며 친구들을 만날 필요도 없고 모임에 나가지 않아도 된다. 나를 지치게 했던 모든 것들에서 자유롭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죽은 듯이 지내도 아무도 나를 걱정하거나 탓하지 않는다. 이럴 수가. 심지어 나는 바르셀로나, 쾌청한 하늘 아래 있다. 아니, 이렇게 좋을 수가. 아무 죄책감 없이 혼자 있을 수 있다니. 발길 닿는 모든 곳, 모든 순간에 나만 생각해도 된다니. 나 외에 다른 사람을 먼저 고려하지 않아도 되다니.


물론 가끔은, 고개를 들면 친구가 내 앞에 앉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보고 싶은 친구와 가볍게 약속을 잡고 햇볕 아래 테이블에 앉아 타파스에 맥주 한잔하고 싶어지면 있지도 않을 그날이 그리워 한동안 마음이 울렁거리기도 한다. 거리에서 나를 제외한 사람들이 모두 친구 같을 때, 늘 걷던 길이 낯설게 느껴지며 걸음을 멈추고 멍하니 서 있게 될 때도 있다.

그래도 대부분은 아는 사람을 만날 일이 거의 없는 이곳에서의 생활이 좋다. 나와 남편, 그리고 제제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 다시 없을 시간.

한국에 있는 것도 아니고, 온전히 스페인에 있는 것도 아닌 경계에 있는 아슬아슬한 시간들. 이방인으로서의 홀가분한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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