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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최 Dec 06. 2023

붓는 이유는 너무 많아서요.

복약안내서의 말 _017

     어린 시절 막내였던 저는 엄마의 안마요정이었습니다. 똑똑한 언니들 사이에 기죽어 뭐든 칭찬에 고팠던 어린이는 "아이고 우리 막내 손맛이 제일 낫네, 아주 손끝이 야물딱지네!" 같은 엄마의 추임새에 춤추는 고래가 되어 저녁마다 손아귀가 아프도록 엄마의 어깨며 다리, 두피 마사지를 전담했지요.


     기억 속에 선명히 남아있는 몇 개의 장면 중 하나는 엄마의 다리를 주무를 때 정강이 앞쪽에 손자국이 남으면 잘 사라지지 않았다는 겁니다. 마치 굳지 않은 점토를 누른 것처럼 꾹 누른 자국이 오래 없어지지 않고 계속 눌려진 상태로 남아있어 시기해하며 종아리 뼈를 따라 꾹꾹 눌러 자국을 만들곤 했습니다. 다리가 퉁퉁 부어 무겁다던 엄마의 말씀에 마음 아플 만큼 철든 나이가 아니어서, 그저 '엄마 다리는 참 신기하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문득 제 다리에서 그 시절의 엄마를 보게 된 건 출산 이후였습니다. 원래도 잘 붓는 편이었지만 만삭 때 특히 다리가 무시무시하게 부었었고 급기야 코끼리가 언니 하고 말 걸지 싶은 수준까지 굵어졌었거든요. 출산하고 분명 부기는 쫙 빠졌는데 그러고 나서 언젠가부터 제 다리에도 점토에 자국이 남듯이 말랑한 부종이 들러붙었습니다. 어릴 때는 다리를 모아 쪼그리고 앉는 자세가 세상 편해서 어디서든 몸을 공처럼 동그랗게 말고 쉬었는데 다리를 접기도 버거운 상태가지 붓기도 했어요.


     처음 이 증상을 인지했을 때는 참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전자의 힘은 무서운 거구나. 생각해 보니 그 시절의 엄마보다 내가 더 나이가 들었구나. 신기하게도 엄마와 나는 몸이 나빠지는 방식이 닮았구나. 근데 왜 이렇게까지 붓는 거지?!




     정강이 뼈 위를 손으로 꾹 눌렀을 때 자국이 뚜렷하게 남는 것은 알고 보니 '함요부종(pittind edema)'의 진단 포인트였습니다. 세포 바깥에 존재하는 '간질액'이라는 체액이 2~3리터 이상 쌓여 있다는 증거라 하더군요. 이 글을 읽고 나니 꽉 찬 2리터짜리 생수통 한두 개를 하루종일 이고 지고 생활하는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몸이 무겁고 피곤한 데는 다 이유가 있었어요. 


    엄마의 부종을 보고 자란 저는 저의 체질을 덤덤하게 받아들였지만 한편으로는 붓는 이유에 대해 늘 생각했습니다. 부종을 검색해 보면 주르륵 쏟아지는 원인 질환의 이름들은 하나같이 치명적이고 엄청나서 약간 뒷걸음질 치게 되는데요. 질병관리청에서 제공하는 국가건강정보포털에 '부종'을 검색했을 때 나오는 원인 열두 가지 중 1번부터 6번까지는 아래와 같습니다. 부종이 문제가 될 때 가장 먼저 배제해야 하는 질환이겠지요.


     1) 울혈성 심부전 

: 심장의 펌프 기능이 약해져서 전신 부종이 발생하게 되는 심장성 부종의 가장 흔한 원인 질환

     2) 간경변증

: 간문맥 경화로 발생한 고혈압, 간기능 장애로 저알부민혈증이 동반되어 부종과 복수가 발생하게 됨

     3) 콩팥증후군

: 단백뇨, 저알부민혈증, 고지질혈증을 특징으로 하며 부종을 일으키는 원인 중 드문 편

     4) 갑상선기능저하증

: 점액부종이라는 특수한 형태로 히알루론산이 많은 단백질이 간질에 쌓여 단단한 비함요부종이 특징

     5) 저알부민혈증

: 혈관 내 삼투압이 약해져 수분을 붙잡아둘 수가 없게 되면서 간질액이 상승하게 되어 발생

     6) 약물에 의한 부종

: 일부 약물이 신장 혈관을 수축시키고 나트륨 재흡수를 촉진, 진통소염제, 스테로이드, 혈압약이 대표적


그리고 나머지는 특발성 부종, 월경 전 부종, 정맥 부전증, 지방부종, 노인성 하지부종입니다. 건강검진을 통해 1번부터 6번까지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였으니 저와 엄마가 잘 붓는 이유는 아마 나머지 여섯 가지 중 하나일 겁니다.


     전체 열두 가지 부종의 원인 중 가장 설명이 짧은 것이 바로 '특발성 부종'입니다. 이름만 보면 뭔가 특별한 원인 때문에 일어나는 부종인가 싶지만 실은 원인을 알 수 없는 부종을 의미합니다. '... 그 외 기타 등등' 같은 느낌입니다. 특발성 부종의 설명은 다음 두 문장이 전부입니다. 


     '특발성 부종이란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부종을 말합니다. 대부분 여자에게 많고, 월경주기와 상관없이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부종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아마도 제 부종의 정체일 겁니다. 이름을 알았지만 원인을 알았다고는 할 수 없어 뭔가 시원하다 만 기분이군요. 




     부종은 몸에 여분의 체액이 돌아다녀서 생깁니다. 원인을 파악할 수만 있다면 관련하여 대처하는 것이 우선이겠지만 만약 서양의학적인 진단을 명쾌하게 밝혀낼 수 없더라도 확실한 건 체액이 남아도는 현상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거지요. 분명 뭔가 관련된 기능이 스멀스멀 떨어지고 있다는 뜻이고 저 무서운 원인 질환의 목록은 몸에서 체액을 처리하는 데에 관여하는 곳이 어디인가를 짐작할 수 있는 단서가 됩니다. 


    서양의학에서 '원인이라고 밝혀졌다'는 것은 누구에게 일어나든 같은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말하지만 사람의 개인차를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명확하다는 뜻이지요. 어떤 사람에게는 분명한 인과관계를 가지고 반복해서 일어나는 일도 다른 사람에게 그대로 재현되지 않는다면 진짜 원인이라고 인정되지 않습니다. 부종의 원인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이 거대한 룰 아래 수렴되지 못하고 버려진 수많은 상황들이 '특발성 부종'이라는 이름으로 묶이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되는 이유이지요. 


    명확히 원인이 밝혀진 부종을 경험하는 모든 사람을 다 합친 것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특발성 부종을 겪습니다. 부종의 원인을 나열한 목록의 최말단에 붙어있어서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정확히 규명된 것 이외의 모두가 발을 담그고 있는 셈이지요.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은 아니지만 실제로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질에 영향을 주는 것이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특발성 부종입니다. 


     요즘시대에 의료가 갖는 의미는 생사의 기로에 섰을 때 당연히 절대적이지만 동시에 보다 건강한 삶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중요합니다. 부종의 세계에서 원인을 알 수 없다는 이유로 조금은 홀대받는 '특발성 부종'을 바라보며 분명 어떤 증상으로 고통받지만 생명에 지장이 없어서, 혹은 원인을 알 수 없어서 '별것 아니라고' 되돌려 보내지는 어떤 환자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특발성 부종은 원인이 밝혀져 있지 않아 치료법도 알려진 게 없습니다. 다만 부종 자체를 줄이기 위해 압박스타킹이나 다리를 심장보다 높게 올리고 자라는 정도의 권고가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만약 부종에 관여하는 몸의 기능이 상대적으로 약한 체질의 소유자라면 그에 맞춘 생활의 관리가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흔히들 몸이 붓는다고 하면 신장이 문제인가 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생각보다 관여도가 큰 기관이 심장입니다. 심장은 전신의 순환을 담당하는 펌프인데 기능이 떨어지면 혈관 속에 혈액의 양이 줄어들고 혈압이 떨어지게 되지요. 위기를 느낀 몸이 신장을 통해 수분과 나트륨을 더 많이 흡수하게 되고 계속 흡수된 수분이 세포 바깥으로 빠져나가 쌓이게 되면 몸이 점차 붓게 되는 겁니다. 


     심부전까진 아니지만 체질적으로 심장 기능이 약한 사람은 같은 기전으로 부종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잘 붓는 분 중에 혈압은 떨어져서 체력은 기진맥진 저질이고, 몸에 여분의 체액은 자꾸 쌓여 체중은 늘어나고, 폐에도 물이 고여 부종 때문에 숨은 차고... 실제로 임상에서 치료를 하다 보면 이런 환자가 아주 많습니다. 치료를 통해 혈관 안에서 체액이 빠져나오지 않도록 보강하면서 심장 기능을 강화하고 몸속의 수분을 빠르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면 부종뿐 아니라 체력이 놀랄 정도로 좋아지는 경우도 많지요. 


     배설의 기능이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변이나 소변이 개운하게 나오지 않고 정체되면서 붓는 경우에는 대소변을 배설하는 기관의 기능을 회복함으로써 부종이 줄고 몸이 가벼워지지요. 특히 소변이 배출되는 과정에 문제가 있으면서 체액의 저류로 인한 여러 증상이 함께 관찰된다면 배뇨에 관계된 여러 기관의 기능을 회복함으로써 소변을 더 시원하게 보게 하는 것이 부종의 해소로 이어지게 됩니다. 보통 붓는 것뿐 아니라 숨차고 어지럽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증상이 함께 관찰되고 때로 불안하거나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말초 순환을 개선하고 적체된 수분이 원활하게 배설될 수 있게 도와줌으로써 제반 증상이 개선될 때가 많지요. 


     짜게 먹지 않고 근육을 키우는 것은 부종을 후기 단계에서 줄일 수 있는 관리입니다. 부종의 프로세스가 1에서부터 10단계까지 있다면  한 6~8단계 정도 될 겁니다. 압박스타킹을 신는 게 9단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붓기 진전에 물리적으로 공간을 줄여버리는 것이라 붓지는 않지만 부종을 일으키는 원인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하지요. 그러나 계속 하지로 체액이 고이면 혈관이 늘어져 정맥류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상황을 예방하는 의미는 있습니다. 




     몸이 붓는다는 건 단순히 양말 자국이 나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체액을 처리하는 모든 기능에 과부하가 걸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처리되지 않은 체액은 몸 어디든지 돌아다니면서 어지럼증이나 두통, 근육의 경직을 일으키고 관절 곳곳에도 멈춰서 염증을 악화시키거나 관절을 뻣뻣하게 만들기도 하지요. 아니나 다를까, 아직 그리 많이 쓰지도 않은 저의 무릎 관절도 벌써 내리막길을 걸을 때 삐그덕 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별다른 진단도 치료법도 없고 병원에서 주목하지 않는 부종이라 그냥 방치하고 있지는 않나요? 그냥 살이 쪘다보다, 어제 짜게 먹었나 보다, 생리하려나보다 하고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넘기고 있지는 않은가요? 


     남들보다 잘 붓는다면 꾸준히 심폐활량을 올리기 위해 운동하고 사지 말단의 근육량을 늘리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대소변과 땀이 배설되는 데에 문제가 없는지 점검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PMS가 심하다면 PMS를 치료하고 스트레스 때문에 붓는다면 스트레스 관리가 필수입니다. 관리만으로 잘 되지 않는다면 한의학적인 진단과 치료도 고려해 봅시다. 타고난 체질은 바꿀 수 없지만 체질 안에서 가장 건강해질 수는 있습니다. 노력은 언제나 배신하지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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