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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최 Nov 21. 2023

다이어트가 진짜 안될 때.

복약안내서의 말 _015

     가끔 진료를 하다 보면 세상 모든 사람이 다이어트 중인가 싶은 순간이 있습니다. 체중 감량을 적극적으로 시도하고 있거나, 열심히 하다 잠깐 쉬는 중이거나, 해야 하는데 생각만 하고 아직 못하고 있거나 셋 중 하나가 아닐까요? 각자의 목표는 다를 수 있겠지요. 누군가는 결혼을 앞두고, 누군가는 입던 옷이 맞지 않아서, 누군가는 높아진 혈중지질농도와 혈당을 조절하기 위해, 또 누군가는 체력이 떨어져서.


     다이어트에 관한 모든 것이 과포화된 세상입니다. 다이어트 정보는 도처에 넘쳐나고 다이어트를 위한 운동법, 보조식품, 다이어트 방법, 식단과 치료법은 더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게 알려져 있습니다. 검색 포털에서 상위에 노출되기 위해 가장 비싸게 팔리는 키워드 중 하나가 아마 다이어트일 겁니다. 방법을 몰라서 다이어트를 못하는 사람은 없다는 얘기도 되겠지요. 


     어떤 치료든 몸을 바꾸려고 할 때 제가 자주 하는 생각 중 하나는 '몸이라는 블랙박스'에 어떤 입력값을 넣어야 원하는 출력값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연구를 통해 많은 것이 규명되어 있지만 아직도 다 파악하지 못한 것이 인체라는 복잡계니까요. 때로는 어떤 결과를 예상하고 입력한 치료가 전혀 반응이 없거나 원했던 것이 아닌 다른 결론을 도출하기도 합니다. 이 생각을 가장 많이 할 때가 다이어트 치료를 할 때입니다. 


     세상에 알려진 다이어트에 관한 거의 모든 조언은 블랙박스의 결괏값을 예측 가능할 때 유효합니다. 심지어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면 빠진다'는 것은 다이어트 성전이 있다면 일장일절에 기록될 절대적인 계시와 같은 문구도 먹히지 않을 때는 먹히지 않습니다. 물만 마셔도 찐다는 것은 명백한 거짓말이지만 많이 먹지 않는데도 계속 찐다는 것은 가끔 진실일 때도 있습니다. 


     아무리 해도 다이어트가 잘 안 될 때가 있었나요? 블랙박스의 어딘가에서 신호가 오작동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입력값으로부터 예측한 출력값을 얻을 수 없을 때는 블랙박스를 점검하는 게 먼저겠지요.




     몸속 에너지 공장이 가동을 중단했다면


     적게 먹고 많이 움직여도 살이 찌는 대표적인 경우가 대사율이 저하되었을 때입니다. 이 경우는 먹는 것 이상으로 저장될 뿐 아니라 일단 기운이 없어 많이 움직이지도 못합니다. 이 경우에 환자분들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선생님, 저는 별로 먹지도 않는데 계속 체중이 늘어요. 근데 너무 기운이 없고 피곤해서 운동 가려다가 주저앉을 때가 많아요."

     "저는 피곤해 죽겠는데 살은 자꾸 찌니까 죽겠어요. 어떤 사람들은 힘들면 살이 빠진다는데 저는 점점 더 찌는 건 왜일까요? 남편이 나가서 운동이라도 좀 하라고 하는데 그럴 기운이 없으니 짜증만 나요."


     우리 몸은 음식을 섭취해 일부는 에너지로 만들고 일부는 저장하며 필요 없는 것은 내보내는 역할을 하는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이 과정에 직접 참여하거나 혹은 시스템의 효율을 더해주는 역할을 하는 호르몬은 인체의 에너지 공장이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게 되지요. 탄수화물을 처리하고 혈당을 조절하는 인슐린이나 에너지 대사를 촉진하는 갑상선 호르몬이 대표적입니다. 


     대사 증후군을 바라보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인 '인슐린저항성'은 블랙박스의 대표적인 오작동 가운데 하나입니다. 혈당을 낮추는 호르몬인 인슐린에 반응하는 민감도가 떨어져서 근육 및 지방세포가 포도당을 잘 섭취하지 못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더 많은 인슐린이 분비되면서 복부 비만과 체중 증가, 고지혈증, 고혈압 등을 특징으로 하는 대사 증후군으로 귀결된다는 것이지요.


     대사증후군으로 진단받은 사람들은 백이면 백 체중을 감량하라는 권고를 받지만 내 몸속의 인슐린이 말을 듣지 않아 식단을 조절하기가 어렵고 조절해도 살이 잘 안 빠집니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체중을 줄여도 고지혈증이나 혈당 조절이 잘 안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 경우 체중을 감량하는 데에만 너무 집중하면 신체 기능이 점차 떨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췌장과 같은 내분비 기관을 포함해 신체 기능을 회복하는 치료를 체중감량과 병행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이어트는 결말이 없는 도돌이표 안에 갇히게 되지요. 


    갑상선 기능저하는 우리 몸속의 모든 화학반응을 촉진하고 대사율을 높이는 데 기여하는 갑상선 호르몬의 분비가 저하되면서 나타납니다. 여성에게 비만을 일으키는 가장 대표적인 대분비 장애 중 하나이기도 하지요. 갑상선 호르몬 분비가 줄어들면 몸은 마치 보일러가 꺼진 집처럼 서서히 식어갑니다. 살만 찌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일체의 활력이 감소하고 순환, 분비, 배설 등 대부분의 기능이 잦아들지요. 체중의 증가가 심각한 피로와 부종, 추위를 타는 상태에 동반해서 온다면 반드시 대사율의 저하를 의심해야 합니다. 


     인체 대사율의 저하는 갑상선 기능저하일 때에만 오는 것이 아닙니다. 갑상선 기능의 이상을 진단받지 못했다 하더라도 비슷한 양상의 증상이 동반해서 나타난다면 단순히 살을 빼는 것에 집중할 일이 아니고 대사율을 높이는 치료를 병행해야 합니다. 대사율이 크게 떨어지면 '몸이 뭔가 맛이 갔다'는 느낌이 옵니다. 그렇지 않아도 에너지가 만들어지지 않아 몸이 총체적인 난국일 때에 다이어트를 한다고 굶으면 더 크게 나락에 빠지게 되겠지요.




     몸이 위기에 처했다고 느낄 때


     다이어트 치료를 해보면 의외로 살이 잘 안 빠질 때가 먹는 양과 무관하게 식습관이 불규칙할 때입니다. 실제로 과로로 인해 피로가 쌓였을 때, 또는 신경 쓰는 일이 너무 많아 스트레스가 심할 때에도 체중이 감량되는 속도가 현저히 줄어드는 것을 많이 봅니다. 요는 에너지가 공급되는 일이 불규칙하거나 에너지를 쓰는 패턴이 불규칙할 때지요.


     체지방을 무찔러야 할 공적처럼 생각하지만 사실 과도할 때가 문제일 뿐 체지방도 없어서는 안 될 우리 몸의 중요한 일부입니다. 먹은 음식이 벌어온 돈이라고 할 때 당장 에너지로 써야 할 부분이 주머닛돈 쌈짓돈이라면 저장된 형태는 나중에 쓰기 위해 부어놓은 적금이나 부동산쯤 될 겁니다. 자산운용의 관점에서 체지방은 사실 나중을 위해 예비해 둔 에너지의 저장고가 될 수 있지요. 


    우리가 매달 꼬박꼬박 안정적으로 돈을 벌어온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러면 사실 그렇게까지 돈을 열심히 모아놓지 않아도 됩니다. 기다리면 또 벌어올 거니까요. 그러나 돈을 꼬박꼬박 갖다 주지 않으면 자금의 흐름이 불안해지기 때문에 우리는 돈을 조금이라도 모아두어 미래에 대비하고 싶어 집니다. 


     몸도 똑같습니다. 안정적으로 들어오고 나가면 필요한 만큼만 저장하고 나머지는 버려도 되지만 불안정할 때는 필요 이상으로 저장하고 싶어지는 거지요.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는 것과 상관없이 몸이 위기라고 생각하면 몸은 체지방을 잘 쓰려고 하지 않습니다. 살이 잘 빠지는 때에는 편안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할 때, 여분의 에너지를 쓰지 않아도 되는 건강한 때입니다. 




     여성 호르몬의 불안정한 상태에 대처할 때


     여자의 몸은 여성 호르몬에 몹시 민감하게 반응하지요. 생리 전에 체중이 늘어나는 것은 부종과 변비의 영향도 있지만 실제로 식욕이 늘고 체중이 느는 경우도 있어 다이어트로 식단을 관리할 때 큰 영향을 미칩니다. 갱년기는 어떤가요? 여성호르몬이 줄어드는 이 시기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1년에 평균 1.2kg가 늘어난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요즘은 위 두 가지 경우 말고도 여성 호르몬의 불균형에 노출되는 경우가 정말 많아졌습니다. 호르몬 투여를 통해 배란을 중단하는 것을 치료로 택하는 경우가 늘었기 때문인데요. 생리통이나 월경 전증후군을 조절하려는 치료적인 목표로 피임약을 복용하거나 자궁 내 루프를 삽입하는 경우도 많아졌지요. 자궁근종이나 난소의 낭종이 늘어난 것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근종이나 선근증 수술 후에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목표로 수년간 피임약을 복용하는 경우가 늘었지요. 


     배란 후 분비되는 여성 호르몬은 우리 몸에서 매우 다양한 일을 수행하기 위해 일정량의 체지방을 확실히 소진합니다. 호르몬이 줄면 이 역할만 중단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하기 위해 소진되는 에너지도 여분으로 남게 되지요. 그만큼을 의식해서 매번 다른 활동으로 소진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남는 에너지만큼 체중이 늘게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체중이 늘까 봐 목표로 삼은 치료를 포기하는 건 우선순위에서 바람직한 일이 아니지만 피임약을 복용하는 상태에서 일어나는 몸의 반응은 체중의 증가뿐만은 아닙니다. 흔한 증상으로는 부정출혈이 관찰되기 쉽고 복부팽창과 변비가 생기거나 여드름과 같은 트러블이 올라오기도 합니다. 피로가 두드러지고 우울감이 심해지기도 하지요. 피임약의 가장 알려진 부작용 중 하나는 혈전의 증가입니다. 근종이나 월경통이 개선되려면 순환이 개선되어야 하는데 피임약을 복용하면 체중이 늘고 혈전이 증가할 위험이 높아져 순환이 오히려 떨어지기 쉽다는 것은 아이러니하지요. 




     저도 이십 대 때는 제가 먹어도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체질인 줄 알고 살았습니다. 야근을 밥먹듯이 했고 야식이 영혼의 위로였던 시절이 있었지요. "너는 그렇게 먹어도 살이 안 찌니 부럽다"는 선배들의 말에 조금은 우쭐하기도 했던 저 자신을 반성하며 그때 그렇게 먹은 야식은 모두 어디로 간 걸까 생각해 볼 때가 있습니다. 조금은 남아있었던 성장호르몬..?


     때로는 타이트하게, 때로는 느슨하게 저 역시 매일 다이어트 중입니다. 잠시 쉬기도 하고 쉬는 날이 길어질 때도 있지만 식단을 관리하는 일은 건강하고 싶은 마음과 더불어 아마도 평생 계속되겠지요. 


     그래도 만약 다이어트가 어느 날 지독히 안된다면 스스로를 자책하거나 채찍질하기 전에 꼭 몸에 이상이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 보기를 바랍니다. 살아있는 몸의 블랙박스는 쉼 없이 스스로의 오류를 점검하고 있지만 때로 자가복구가 어려운 순간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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