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약안내서의 말_ 014
어릴 때는 별로 와닿지 않았던 얘기가 문득 실감 나는 때가 있습니다. 최근 들어 자주 생각하는 말은 '시간이 나이만큼의 시속으로 흘러간다'는 겁니다. 20대의 시간은 시속 20km로 가지만 40대는 시속 40km, 60대는 시속 60km로 간다는 건 나이가 들면서 시간이 점점 빠르게 흘러간다는 의미겠지요.
정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올해가 벌써 두 달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어머님과 티타임 중에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어요.
"어머니, 올해가 벌써 끝나가네요! 정신을 차려보니 저도 벌써 마흔이 한참 지났어요."
어머니가 후후 웃으시며 말씀하셨어요.
"얘야, 네가 벌써 그렇게 됐니? 그런데 살다 보니 예순도 일흔도 금방이더라."
나이가 들긴 들었구나 싶은 순간이 있습니다. 요 몇 주 부쩍 야근이 늘었는데 잠이 모자라고 식사가 불규칙해지니 이십 대 이후로 자취를 감추었던 여드름이 후두둑 올라옵니다. 여유가 없어 미용실에 못 간 지 몇 달째, 뿌염으로 숨겨왔던 새치가 그새 자라 폭발적으로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흰머리는 대체 왜 검은 머리보다 굵고 튼튼한 걸까요?? 새벽녘에 퇴근해 터덜터덜 집에 가다가 아파트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헉, 저 칙칙한 중년의 여자는 대체 누구람!!"
여성 호르몬 분비의 분기점이 되는 서른다섯 이후로 몸은 착실히 다음 단계를 향해 나아갑니다. 호르몬의 분비는 줄고 생활에서 오는 피로도는 반비례해서 높아지는 마흔은 생애주기에서 사춘기보다 갱년기가 더 가깝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는 첫 나이입니다. 마흔에서 쉰 사이, 사십 대는 여자의 건강에서 단 하루도 허투루 보낼 수 없는 시기지요.
마흔을 넘긴 어느 시점 이후로 전에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증상들을 겪는 일이 많아집니다. 이전부터 달라지고는 있었지만 알듯 말듯 미미했던 변화들이 뚜렷한 형태를 띠고 불쑥 고개를 내밉니다. 요즘 들어 자꾸만 '전에는 안 그랬는데'라는 말을 반복하게 되었나요? 체질이 바뀌었다고 느껴지나요? 갱년기가 아닐까 의심하게 되는 순간이 있나요? 만약 그렇다면 우리 몸에 이미 격변의 시대가 휘몰아치고 있다는 뜻입니다.
스물네 살에 기자로 취직했을 때 당시 편집장님의 나이가 마흔둘이었어요. 엄청난 카리스마형 리더여서 선배들도 어려워하는 분이었고 저는 거의 학주 앞에 고딩 수준으로 쭈글 해질 때가 많았지요. 당시에는 마흔둘이 '어른, 리더, 카리스마'가 어울리는 나이라고 여겼는데 지금 저희 한의원 치료실 막내 샘 눈에 제가 그 정도 나이로 비칠 거라 생각하면 그때보다 더 쭈글 해집니다. 선생님들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나이가 들면 나이에 대한 생각이 달라집니다. 스무 살에 바라보는 마흔은 그 사이에 흘러야 할 시간만큼의 거리감이 있지만 막상 마흔이 되고 보니 스물두 살 일 때나 서른다섯 일 때나 지금이나 비슷합니다. 나 자체는 달라진 게 별로 없는데 시간만 흘렀다 느껴지지요. 막연히 마흔에 대해 가졌던 여러 고정관념도 막상 되어보니 와르르 무너집니다. 마흔은 중년? 마흔이 불혹? 마흔에는 경제적으로 안정?? 그런 거 하나도 없습니다. 여전히 철없고 불안하고 내 꿈이 뭔지 모르겠고 여기저기 혹하는 나이일 뿐이지요.
그래도 마흔은 사회에서는 앞으로 나아가는 시기일 가능성이 큽니다. 진로를 정했을 것이고, 경력이 쌓였을 것이고, 연봉도 올랐을 겁니다. 그러나 다른 모든 상황이 나아지더라도 건강에 관해서만큼은 '노화' 이외의 다른 키워드를 생각하기 어려웠던 게 사실이지요. 한의사로서 떠올리게 되는 마흔에 관한 주제들도 다음과 같은 것들 뿐이었습니다. "여성 호르몬의 감소에 대처하는 법", "갱년기를 대비하기 위해 노력하자", "조금 덜 빠르게 나이들 수 있도록 생체 나이를 늦추자!"
마흔을 넘기고 나서는 몸에 무슨 변화만 생겨도 '마흔이라 그런가' 하고 생각하곤 했지요. 그렇게 몇 년이 흐르고 마흔으로 좀 살아보니 "역시!" 하고 확인하게 된 것도 있고 "어라?" 하고 달라진 생각들도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답하고 싶은 질문은 이겁니다.
"그래서 막상 되고 보니, 마흔이 된다는 건 그렇게 칙칙한 일이기만 한가요?"
이십 대에 뒤늦은 사춘기로 두문불출했던 저는 얼른 서른이 넘기를 고대했습니다. 실제로 삼십 대가 되어보니 훨씬 좋아서 마흔이 되면 더 좋지 않을까, 나이 들수록 더 나아지는 부분이 있을 거라고 기대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서른보다 마흔이 더 기다려진다고 자신 있게 말하지 못했던 건 마흔의 건강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흔은 좋을까, 아니면 나쁠까? 확신은 없었습니다. 이론과 실제는 다르고, 저도 마흔은 처음이라서요.
마흔을 넘긴 후에 생기는 몸의 변화가 모두 나이 탓만은 아닐 겁니다. 저의 경우만 해도 분명 예전 같지 않다고 느끼는 부분도 있지만 의외로 좋아진 부분도 있습니다. 운동을 시작하면서 며칠 잠을 터무니없이 못 자도 일상을 버틸 힘이 생겼습니다. 이삼십 대를 관통했던 생리통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출산 이후로 턱없이 줄었던 머리숱이 최근에 오히려 전보다 늘었습니다. 흰머리는 나지만 잔머리도 늘어서 전에 없던 볼륨이 생겼습니다. 샴푸와 두피관리용 트리트먼트를 바꾸는 정도의 하찮은 노력을 했을 뿐인데요.
마흔 이후에 친구나 언니들과 통화를 끝낼 때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사십 대는 관리! 관리의 사십 대!"
이십 대나 삼십 대는 딱히 관리하지 않아도 나이로 유지되는 어떤 부분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큽니다. 사십 대가 되면 압도적으로 늙는 것은 아니지만 관리가 없어도 유지되는 부분의 비중이 줄어드는 느낌이지요. 이걸 거꾸로 생각해 보면 관리를 잘하면 줄어드는 영역이 티가 덜 날뿐더러 관리를 전혀 안 한 삼십 대보다 오히려 더 건강해지기도 한다는 겁니다. 사십 대는 그래서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사람의 비중이 아마 가장 높은 연령대일 겁니다.
이 말을 저의 환자분들께도 자주 해드리는데 모두 폭풍 공감하시더라고요. 사십 대에 접어든 우리들은 만나고 헤어질 때마다 지하조직처럼 은밀한 슬로건을 공유하곤 합니다. '아시죠? 사십 대는 관리!'
마흔을 넘겨 몇 년을 살아보니 마흔이 압도적으로 좋은 점들이 있습니다. '마흔도 괜찮아'수준이 아니라 '마흔이라서 다행이야!'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 어떤 건지 짐작이 가시나요?
생리가 곧 끝난다! 완경이라는 축제
마흔을 넘기고 가장 좋은 점은 생리를 해야 하는 날들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겁니다! 유후!! 여기에는 거의 사십 년에 육박하는 시간 동안 매달 생리를 해온 사람들만 알 수 있는 해방감이 있습니다. 생리통에 시달릴 날도, 등록해 놓은 수영강습을 빠져야 될 일도, 때마다 심한 감정기복으로 우울증인가 고민했던 순간도 모두 끝입니다. 완경이 어떻게 축제가 아닐 수 있을까요?
잘 모를 때에는 갱년기에 대한 두려움이 컸습니다. 영화나 소설에서 거의 정신분열처럼 묘사되는 갱년기 증후군을 오래 지켜본 탓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두려움은 완경의 실체를 알아서라기보다 문화와 관습이 만든 공포에 더 가깝습니다. 이를테면 사춘기도 만만치 않게 힘든 통과의례임에도 오히려 문학적이고 낭만적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지요. 완경은 커다란 변화의 장이긴 하지만 인생의 한 챕터를 무사히 넘긴 이들이 맞이할 수 있는 중요한 분기점입니다. 두려워할 일이 아니라 축하할 일이지요.
'관리의 사십 대'를 살아온 우리들은 그 시기를 대비할 수 있습니다. 두려움은 상대를 잘 모를 때 얘기고 충분히 이해하고 준비하면 생애주기의 한 흐름으로 슬기롭게 넘기는 것도 가능하지요. 마흔이여, 함께 축배를 듭시다. 더 이상 생리하지 않아도 되는 날들, 그 평화로운 시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외모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는 시기
어릴 때는 제 얼굴이 싫었습니다. 외까풀의 눈은 답답했고 뚜렷한 선이 없는 얼굴은 밋밋했고 볼살은 아무리 꼬집어도 빠지지 않았지요. 시간이 흘러 헤어스타일도 이래저래 바꿔보고 못하는 화장이지만 조금은 그릴 줄 알게 되면서 어떻게 하면 단점을 가릴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고민했지요.
서른을 넘기고부터는 그런 노력이 슬그머니 줄었습니다. 패션계에서 일했던 몇 년을 통틀어 '스타일링에서는 단점을 가리려 하지 말고 장점을 부각하라'는 건 기억에 남은 가장 강력한 조언이어서 삼십 대에는 내 장점을 연구하는 시기였거든요. 그러다 마흔이 되니 장점이고 단점이고 간에 그냥 제 얼굴이 좀 마음에 듭니다. 어떤 한 사람과 40년간 같이 살았다면 밉든 곱든 정들기에 충분한 시간이지요.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표정과 몸에 맞는 스타일을 갖고 있는 사람을 보면 외모는 비주얼이 아니라 분위기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됩니다. 외모를 가꾸는 건 나의 취향과 삶에 대한 태도를 드러내는 방식 중 하나거든요. 내가 나라는 사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나니 같은 눈으로 타인도 바라보게 됩니다. 마흔은 세상에는 예쁜 사람이 참 많고 스스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아름다움이 점점 더 눈에 띄게 되는 나이입니다.
엄마가 되기 좋은 나이, 마흔
서른일곱에 임신해서 서른여덞이 되는 해 1월에 엄마가 되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노산 중에 상노산이었고 산부인과 선생님들의 걱정근심을 한 몸에 받았지요. 출산도 산후조리도 쉽지 않았고 체력이 완전히 회복되기까지 시간도 오래 걸렸습니다. 그때만 해도 저도 생각했습니다. "왜 다들 어린 나이에 출산해야 좋다고 하는지 알겠다. 이러다 죽겠다!!"
마흔은 임신과 출산을 하기에 좋은 나이는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건, '엄마'가 되기에는 스물이나 서른보다 좋은 나이입니다. 가끔 난임과 관련해 상담을 하다 보면 임신과 출산 그 자체를 치료의 완성이자 목표로 생각하는 분들을 만나는데 임신과 출산은 끝이 아니라 거대한 과정의 시작이지요. 임신 출산은 왕성한 호르몬과 체력의 문제이지만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된다는 건 평생에 걸친 관계의 형성이니까요. 잘 모를 때 어쩌다 시작하지 않으면 사실 엄두도 안 날 정도의 거대한 프로젝트입니다.
저는 스무 살 때 질풍노도의 사춘기였고 서른을 넘기고도 사회에서 자리잡지 못한 학생이었습니다. 뭘 하고 싶은지 뭘 잘하는 지도 잘 몰랐고 무엇보다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어린 나이였던 그때 아이를 낳아 엄마가 되었으면 어땠을까, 나도 아이에게도 좋은 것보다 나쁜 것이 더 많았을 것 같습니다. 마흔이 된 지금 많은 것이 안정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두 가지 면에서 좋아졌습니다. 내가 스스로를 이해하는 폭이 훨씬 넓어졌고, 아이를 대하는 심리적인 거리가 너무 가깝지 않습니다. '아이를 손주 보듯 대하라'는 육아의 조언까지는 아니더라도 오래 기다려 귀하게 얻은 아이를 바라보는 마음은 큰 욕심이 없고 뭘 해도 예쁘긴 합니다.
스물보다 서른이, 서른보다 마흔이 좋다면 쉰, 예순은 더 좋지 않을까. 나이 드는 것에 대해 기대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누군가는 체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누군가는 돈이 있어야 한다고도 하지요. 저도 친구들과 말하곤 합니다. "나이 들어 여행 다니면서 맛있는 거 사 먹으려면 건강한 위와 튼튼한 무릎이 있어야 해!"
그리고 저는 모든 것에 우선하는 것이 '기대'라고 생각합니다. 마흔이 된다는 두려움, 갱년기에 대한 불안, 늙어간다는 것에 대한 걱정 대신 나이 들면 뭐가 더 좋을까 기대하는 마음. 마흔이 되고 보니 제 삶은 훨씬 더 좋더라고요. 좋은 순간을 더 누리려면 운동도 열심히 하고 일도 부지런히 해야겠습니다. 부정적인 부분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좋은 점을 부각하고 강조하는 게 훨씬 유리한 건 스타일링의 법칙만은 아닌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