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미최 Nov 07. 2023

건강하지 않은 게 죄는 아니잖아.

복약안내서의 말 _013

     숱한 밈과 짤을 양산한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도 가장 유명한 장면은 아마도 '사·빠·죄·아'가 아닐까 싶습니다. 바람피운 이태오가 모든 걸 알게 된 아내를 쫓아가 변명이랍시고 부르짖는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는 지금까지도 여러 가지 의미로 잊히지 않는 명대사지요.

(출처: 왓챠플레이)


그래서 저도 한 번 패러디해봤습니다. '병에 걸린 게 죄는 아니잖아!' 자매품으로는 '아픈 게 죄는 아니잖아!'도 있습니다.


     한의사는 건강이라는 키워드에 대해 절대적인 관심이 있습니다. 아픈 사람을 치료하고  체력을 올려주어 건강하지 않은 사람을 건강하게 하는 것이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에는 건강이 지고의 가치라는 사실에 일말의 의심도 없었습니다. "건강하세요!"가 최고의 덕담이라고 생각했고 당연히 모든 사람이 건강해지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굳게 믿었지요.


     지금도 일면은 그 생각에 동의합니다. 나의 삶의 질을 위해서, 내 일상을 더 활기차게 운영하기 위해서, 꿈을 이루거나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라면요. 요는 그 기준이 나 스스로에게 있을 때입니다. 진료를 하다 보면 건강을 추구하는 게 나인지 사회인지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건강한 신체가 경쟁력이 되는 사회에서 건강에 대한 추구가 건강을 향한 강박이 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강박은 더 나아가 아픈 사람들에 대한 차별이 되기도 합니다.




     건강한 몸을 추구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건강하지 않다고 해서 스스로 자책하거나 위축될 필요는 없습니다. 건강하지 않은 몸이 건강을 위해 노력하지 않은 게으름의 산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해서 나를 단련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다른 사람도 그런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러다 보면 오래 같은 증상으로 아프거나 비슷한 호소를 반복하는 사람들을 보면 '자기 관리가 저렇게 안되나'라고 한심하게 여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요즘의 병은 거의 대부분 생활습관에서 오는 만성 질환이지요. '병!'이라고 따로 떼어 생각하기 어려운 내 몸의 일부로, 후천적으로 발생한 어떤 불편한 특징으로 받아들여 관리하는 것이 더 합리적입니다. 오늘날 몸이 겪는 여러 증상은 나아치워 버려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체질이나 성격처럼 나를 이루는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잘 관리하여 좀 덜 괴로울 수 있으면 좋고, 각고의 노력을 경주해서 완치에 가깝게 개선하면 최고겠지만 생활 속에서 대부분은 더 나빠지지 않게 노력하며 데리고 살아가는 거죠.


     건강을 위해 노력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사람들이 가진 몸의 불편을 그렇게 바라본다면 함께 생활할 때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병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지요. 당 수치가 잘 조절되지 않는 내당능 장애 환자에게 달달한 디저트 카페에 가자고 하지 않고 허리디스크가 있어 오래 앉아있기 어려운 친구와는 산책하기 좋은 곳에서 만나자고 청하는 것과 같습니다. 필요한 건 그저 작은 배려입니다.


     특히 눈에 잘 보이지 않고 검사로 증명하기도 어려운 정신적인 장애나 여성 혹은 남성에게만 일어나는 어떤 문제에 관해서는 더 이해도가 낮을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병을 숨기거나 그들 스스로 숨지 않도록 하려면 그 문제에 대해 더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지요. 긴 우울증 끝에 자살을 시도하는 이들을 의지의 문제로 여기는 댓글이나, 검사에도 나오지 않는 자궁내막증으로 지난하고 반복적인 만성 통증과 경련을 경험하는 여성 동료를 피곤하게 여기는 직장 내 분위기는 지금도 어딘가에 분명히 존재하니까요.




     건강은 유니콘 같은 존재입니다. 정의하면 정의할수록 건강이란 진짜 어딘가에 실존하는 게 아니고 그저 이상적인 기준으로서의 관념에 가깝지 않나 생각합니다. 고대 그리스 조각가가 인체의 지고한 아름다움을 상상하며 조각에 골몰했던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요? 예술도 의술도 하나같이 천상의 아름다움이나 완벽한 건강 같은 건 사실 실체는 없다는 가설이지요.


     세상에 진짜 건강한 사람은 없습니다. 상대적으로 더 건강하거나 덜 건강한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때로 건강하다고 느낄 때도 있지만 부단한 노력이 없다면 그 순간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몸의 균형은 늘 조금씩 깨어져 있고 생활의 스트레스는 착실하게 쌓입니다. 심지어 암을 유발하는 세포가 끊임없이 암을 만들지만 킬러 세포 역시 쉬지 않고 활동하기 때문에 암이 생기지 않을 뿐이라는 연구도 있지요. 우리 모두는 어딘가 조금씩 아프거나 더 나빠지지 않기 위해 회복하는 중입니다.


     건강함에 대한 기준도 사람마다 다릅니다. 그래서 치료를 시작하려 할 때에도 함께 목표를 설정하는 게 중요하더라고요. 저는 의욕이 넘쳐서 '이 환자가 가진 체질의 약점을 완벽하게 보완하고 몸의 불편이 전혀 신경 쓰이지 않을 정도의 베스트 컨디션을 만들 때까지' 치료하고 싶지만 어떤 환자의 목표는 "그냥 어떤 일을 할 때 체력 때문에 포기하지 않아도 되었으면 좋겠어요" 정도일 수 있습니다. '더 나은 곳을 향해' 나아가자고 설득하는 게 제 일이기도 하지만 각자의 목표가 삶의 방향성과 에너지의 분배에 맞물려 있다면 그 목표는 분명 존중받아 마땅합니다.


     가끔은 진료하면서 건강에 관해 조언하는 저의 말이 혹시 이 사람에게 핍박이나 비난으로 느껴지진 않는지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사람마다 생활의 관리가 어디까지 가능한지 체크해 보고 가능한 작은 것부터 하나씩 변화를 시도해 보자고 합니다. 보통의 환자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못하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좋은 습관과 관리가 중요한 것을 당연히 알지만 생활에 치였거나 우선순위에 밀렸거나 정신적인 여유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그런 상태에서 당연한 생활의 지침들을 우수수 내려준다고 해서 실천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한 사람의 삶은 삼사십 분의 대화에서 다 파악할 수 없고, 알면서도 행동하지 못한다고 해서 비난할 수 없는 복잡한 맥락이 존재합니다.




     건강을 추구하는 일을 하다 보면 건강이 지상최대의 가치로 굳어질 줄 알았는데, 아픈 사람들을 계속 만나다 보니 세상에 아픈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를 오히려 실감하게 됩니다. 어쩌면 우리는 건강하게 사는 순간보다 어딘가 아픈 상태로 살아가는 시간이 인생에서 훨씬 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진단의 이름이 같아도 각자의 질병이 뿌리내리고 있는 각자의 삶은 모두 달라서 한 가지 맥락의 치료와 납작한 조언으로 관리할 수 없다는 사실 역시 매일 깨닫습니다.


     아파도 삶, 건강해도 삶입니다. 조금 아프고 약간 불편한 것부터 되게 아프고 더럽게 불편한 것까지 누구든 겪을 수 있는 삶의 한 단면일 뿐입니다. 아픈 건 죄가 아니고 건강한 건 권력이 아닙니다. 몸이 좋지 않아도 장애가 있어도 통증에 시달려도 우리는 꿈을 이룰 수 있고 더 나은 삶을 추구할 수 있고 사회에 기여할 수도 있고 무엇보다 서로를 배려할 수 있습니다.






이전 13화 생리 전이라는 재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