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약안내서의 말 _018
초등학교 3학년이 된 미미는 어느 날 고민에 빠졌습니다. 언제부터인가 갑자기 소변을 못 참게 되었거든요.
조금 전 쉬는 시간만 해도 분명 그렇게까지 마렵지 않았는데, 방과 후 집으로 가는 길에 갑자기 소변이 마렵기 시작하면 불과 십 분여 거리의 집까지 가는 시간도 참지 못했습니다. 운이 좋은 날이면 문 앞에서 발을 동동거리며 찔끔 지리는 정도였지만 그렇지 못한 날은 줄줄 바지부터 신발까지 다 적셔버리기 일쑤였지요.
미미는 갑자기 오줌싸개가 된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이 일을 절대 아무한테도 들키면 안 돼.' 친구들은 물론 엄마나 언니에게도 결코 말하지 않았고 그런 날이면 축축한 바지부터 속옷까지 물이 적셔서 빨래통 깊숙한 곳에 몰래 파묻었습니다. 엄마는 집안일이 너무 바쁘고 가족의 빨래가 늘 산더미처럼 밀려 있어서 어딘가 수상한 막내의 속옷과 바지를 몇 주 동안이나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한 달쯤 지나자 어느샌가 오줌싸개 병은 거짓말처럼 사라졌습니다. 미미는 천만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그러나 이 오줌싸개 병은 그다음 해에도, 또 그다음 해에도 찾아와 몇 주 동안 미미를 괴롭혔습니다."
이제 막 사춘기가 시작되려는 소녀에게 별안간 찾아온 이 일은 그야말로 마른하늘의 날벼락이었습니다. 미미는 소변을 지리는 찝찝함이나 옷을 버린 당황스러움보다 친구들에게 놀림받을 것이 너무 두려워 학교에 가기 싫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이 이야기를 엄마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었다는 거예요. 더 어렸을 때 밤 사이 이불에 오줌을 싸 엄마에게 불호령을 들었던 장면이 기억 속에 어렴풋이 남아있었던 거겠지요.
소변을 참을 수 없는 게 '어디가 아픈 것'일 거라고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배가 아프거나 볼에 뭐가 났다거나 콧물이 흐르는 거였다면 분명 엄마나 선생님에게 달려가 말했겠지요. 심각하지 않지만 아픈 게 확실한 어린이들은 조퇴라든가 양호실 침대 같은 달콤 쌉싸름한 특권을 누릴 수 있었거든요. 아픈 게 아니라 실수라고만 생각했고 부끄러운 일이라 여긴 어린이는 속수무책으로 모든 증상을 견뎠습니다.
이 비극적인 이야기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어린 시절의 저입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서야 알게 된 이 봉변의 정체는 다름 아닌 방광염이었지요. 소변과 관련된 여러 증상은 여자들에게 무척 흔하지만 왠지 큰 소리를 내어 말하기 곤란한 느낌이 있습니다. 몰라서 부끄러웠던 미미 어린이와는 다르지만 어른이 되어도 쉽게 말할 수 없는 비밀은 여전히 존재하는 듯합니다.
소변과 관련해서 여자들이 겪는 문제 중 가장 흔한 두 가지는 아마 방광염과 요실금일 겁니다.
방광염은 그야말로 방광에 염증이 생기는 것입니다. 소변을 볼 때 통증이 느껴지는 배뇨통, 소변이 자주 마려운 빈뇨, 소변을 참기 어려운 절박뇨가 흔한 증상이며 급성 세균성 방광염의 경우 소변에 피가 섞여 나오는 혈뇨가 관찰되기도 합니다. 여성의 질과 방광은 외부에 노출된 부분과의 거리가 상당히 짧기 때문에 감염에 노출되기가 상대적으로 쉽고 한번 생긴 염증이 반복하여 재발하는 경우도 흔합니다. 그래서 질염과 더불어 방광염은 여자의 감기라고도 불리며 피곤하거나 면역력이 떨어지면 더 쉽게 걸리곤 하지요.
세균성 방광염과 증상은 비슷하지만 구분되는 것이 바로 '간질성 방광염'과 '과민성 방광염'입니다.
'간질성 방광염'은 '만성방광통증증후군'이라고도 불립니다. 세균 감염과 같은 명백한 원인은 없는데 방광염과 거의 똑같은 증상이 나타나지요. 방광 위쪽, 골반, 하복부 통증을 동반하여 나타나는데 증상이 악화되기 시작하면 일상생활이 매우 지장 받을 정도로 자주, 일상적으로 증상이 반복됩니다. 서양의학적으로도 정확한 발병의 원인은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대개는 진통제를 복용하거나 펜토산, 디메틸설폭시드와 같이 방광벽을 보호하는 약물을 사용해 통증과 방광 자극 증상을 완화시키거나 항우울제, 항히스타민제 등의 약물을 사용하여 증상 자체를 가라앉히는 치료를 반복해야 하지요.
그에 비해 '과민성 방광염'은 주로 소변을 참기 힘든 절박뇨, 빈뇨, 특히 야간빈뇨 등 통증보다는 소변 증상을 위주로 호소합니다. 요로 감염을 통한 감염이 없다는 것, 원인이 정확히 밝혀져 있지 않다는 것은 간질성 방광염과 공통점이지만 주로 임상에서는 주간의 빈뇨와 절박뇨뿐 아니라 '야간에 소변을 너무 자주 보는' 야간빈뇨와 그로 인한 수면 장애로 불편을 느껴 치료를 결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과민성 방광염은 간질성 방광염보다 훨씬 흔합니다. 세균성 방광염과 함께 나타나 구분이 어려울 때도 있으나 항생제를 바로 복용해도 증상의 호전이 없는 것이 특징입니다. 방광이 과도하게 민감해져 배뇨를 자꾸 일으키려 하는 것이 핵심 기전이라 치료도 항콜린제를 사용해 배뇨를 일으키는 부교감 신경을 억제하는 것을 일 순위로 삼습니다. 그래서 과민성 방광염 치료약을 지속해서 복용하다 보면 입마름, 변비 등의 부작용이 흔하게 나타나곤 합니다.
방광염과는 결이 다르지만 의외로 아주 흔한 질환이 요실금입니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소변이 나도 모르게 새어 나오는 증상으로 한의학에서는 '유뇨(流尿)'라고 하지요. 요실금은 여러 가지 이유로 발생하고 위에서 말한 각종 방광염들도 흔한 원인 중 하나이지만 그 경우는 보통 방광염을 치료하면서 좋아집니다. 문제는 출산을 경험한 여성에게 발생하는 복압성 요실금입니다. 출산 직후에 잠깐 나타났다 자연스럽게 좋아지는 증상도 있지만 한참 시간이 흐른 후에도 개선되지 않고 쭉 이어지는 경우는 치료가 필요하지요.
복압성 요실금은 주로 기침을 하거나 크게 웃을 때, 달리기를 할 때처럼 힘을 주는 순간 소변이 나도 모르게 새어 나오는 경우 진단할 수 있습니다. 불의의 경우에 갑자기 증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삶의 질이 크게 떨어지고 심하면 우울증과 같은 증상까지 경험하기도 합니다. 올해는 특히 기침을 오래 하는 감기가 유행인데 복압성 요실금이 있는 사람이 기침감기에 걸리면 기침하랴 소변에 신경 쓰랴 이중고를 겪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 증상이 나타나면 보통 복압을 높이는 상황을 피하도록 권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혹시 질염이나 요도염 같은 다른 증상으로 악화되는 경우 기저 질환을 먼저 치료하기도 하고 심각한 경우 수술을 권유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러한 대처가 삶의 질을 개선하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 생활의 범위가 제한되어 더 큰 스트레스를 받거나 수술 후에도 증상이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아 만족도가 떨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요실금은 방광염보다도 더 드러내어 치료받기 어려운 증상입니다. 요즘은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많은 여성들이 이 문제를 치료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홀로 감내하고 있지요. 달리기를 하고 싶은데 달리기를 하지 못하고, 크게 웃으면 증상이 나타날까 봐 시원스럽게 웃기를 주저하며 조심조심 생활하는 분들이 많은 것을 실제로 만나면서 그 시절 소변을 참지 못했던 어린 날의 제 모습이 겹쳐져 보입니다.
삶의 질을 크게 무너뜨리는 증상은 의외로 무시무시한 질환이 아니라 참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사소하고 반복되는 증상인 경우가 많습니다. 요실금과 방광염은 그 대표적인 경우이지요.
배뇨장애에 대한 치료에는 서양의학의 뛰어난 진단과 해법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빈틈이 있습니다. 케겔운동을 반복하고 배뇨 일지를 쓰는 행동 조절의 관리부터 수술과 같은 적극적인 대처까지 망라되어 있지만 몸에 부족한 기능을 보강한다는 개념 자체의 부재에서 비롯된 공백이지요. 체력과 면역력의 저하로부터 비롯된 기능의 저하가 실은 방광염과 요실금을 일으키는 가장 흔한 원인이자 악화요인인 점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감기도 어쩌다 한번 걸리면 바이러스 때문이지만 계속 반복해서 걸리면 면역력이 저하된 것이 원인이잖아요. 방광염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번 항생제 복용으로 씻은 듯이 낫는 경우는 별로 큰일이 아니지만 반복해서 재발하는 경우에 문제가 됩니다. 항생제를 먹어도 증상이 바로 없어지지 않고 지지부진한 느낌이 들고 항생제 복용 기간이 점점 짧아진다면 더 이상 외부로부터 침입해 온 일시적인 문제는 아니라는 뜻이지요. 병이 아니라 몸을 치료해야 하는 시점을 가늠해야 합니다.
방광도 자궁처럼 아주 튼튼한 근육의 주머니입니다. 근육에 염증이 생겨 본래의 기능이 크게 떨어지게 되는 상태가 방광염이지요. 일차적으로는 물을 많이 마시고 소변을 참지 않고 자주 보아서 요로 감염을 방지하는 것이 방법이 될 수 있지만 몸이 약해지고 피로가 심하면 근육에 적절히 혈액이나 체액이 공급되지 못해 그때그때 외부의 침입을 방어할 수 없게 됩니다.
한번 발생한 염증으로부터 빠르게 회복하려면 근육질에 체액을 공급해 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체력의 향상이 필요한 경우가 있습니다. 방광염의 흔한 악화요인이 피로나 오래 앉아있는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지요. 방광 주위의 순환이 좋지 않을 때 방광이라는 기관의 기능이 더 떨어진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항생제를 반복해서 먹어도 소용이 없을 때, 일반적인 관리와 운동으로 회복하기 어려울 때 본질적으로 순환의 활력과 체액을 보강해 피로를 개선하는 치료가 필요합니다.
올해 가을 간질성 방광염으로 진단받은 환자 두 분이 연이어 내원하였습니다. 체질은 달랐지만 증상은 전형적인 케이스였고 그 어떤 약물 치료로도 증상의 빈도가 줄어들지 않은 상태를 지속해오다 내원하셨어요. 치료를 시작한 이후로 다행히 두 분 모두 증상이 눈에 띄게 줄고 삶의 질이 크게 개선되었습니다. 각자의 체질에 맞춘 한약 처방을 중심으로 골반강 내부의 온도와 순환을 개선하는 물리치료를 병행하였지요. 일반적으로 간질성 방광염은 치료가 무척 까다롭다고 알려져 있지만 진단과 치료가 잘 어우러지면 호전이 드라마틱하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십 년 이상 지속되어 온 복압성 요실금을 거의 완치에 가깝게 치료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단지 요실금 증상만이 아니라 몸이 전체적으로 차고 기력이 떨어진 상태라 몸 전체에 체액을 공급해 혈압을 유지하고 심부체온을 확실하게 끌어올리는 치료가 유효했던 경우였지요. 이 분의 경우에는 이처럼 체질에 맞춘 치료를 진행하였지만 다른 분께는 이분께 드린 처방이 전혀 효과가 없을 수 있습니다. 한의학적인 치료란 같은 증상이라도 정해진 처방을 획일적으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인 병기를 개선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여섯 살 먹은 저의 딸도 가끔 소변을 참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평소 잘 가다가도 유난히 여러 번 속옷을 버리는 날이면 훅 화가 나려고 하다가도 문득 '혹시 나와 같은 경우는 아닐까' 잠시 멈추고 유심히 지켜보게 됩니다. 혹시 배가 아픈지, 요즘 스트레스받지는 않았는지, 속이 안 좋거나 잠을 설치지는 않는지, 소변의 상태가 평소와 다르지는 않은지 신경이 쓰입니다. 요로감염일지, 과민성 방광염은 아닌지 걱정되고 성장을 위해 보약을 지어 먹일 때에도 이 부분을 염두에 두게 되더라고요.
딸이 엄마의 체질을 닮는다는데 가끔 엄마에게서 별로 유익하지 않은 부분은 닮지 않았기를 바라게 됩니다. 그래도 혹시 증상이 나타나면 엄마가 꼭 낫게 해 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