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촘촘한 진단, 더 효과적인 치료를 위해
(1) 주기와 기간
(2) 출혈의 상태와 양
(3) 통증과 동반 증상
(4) 진단된 질환 ◆
월경불순, 월경과다, 월경통이나 월경전 증후군 중 어느 것 하나라도 경험한 적이 있다면 일단 산부인과를 찾아가 보는 것이 좋다. 자궁과 난소의 상태를 영상진단을 통해 확인하고 내분비의 불균형을 확인할 수 있는 혈액검사를 받아보기를 권한다.
가장 간편한 초음파만으로도 자궁근종, 자궁선근증, 자궁내막 증식증, 자궁내막증으로 인한 난소의 종양, 난소의 낭종의 존재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근종이나 선근증은 월경통이나 월경과다의 직접적인 원인이고 자궁내막증은 배란통의 가장 흔한 원인 중 하나이다. 종양이나 세포의 과증식은 월경과 관련한 불편을 일으키는 수많은 원인들 중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요인 중 하나이니 먼저 배제하는 것이 마땅하다.
여기에 혈액검사가 더해지면 더 많은 정보를 파악할 수 있다. 여성호르몬과 남성호르몬의 혈중 농도를 파악하여 다낭성 난포 증후군(PCOS) 진단을 확정 지을 수도 있고, 갑상선 기능의 이상이 불규칙한 월경 주기에 영향을 미치고 있지는 않은지도 파악할 수 있다. 갑상선 기능 항진은 월경과다나 빈발월경을 일으키고 반대로 기능 저하는 무월경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난소가 얼마나 많은 난자를 배란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난소 예비력'도 AMH라는 호르몬을 검사하면 확인할 수 있다. 지금 겪는 무월경이 단순한 생리불순인지 조기폐경의 신호인지 확인하려면 이 검사가 필요할 테다.
산부인과의 진단은 구체적이다. 자궁근종이나 자궁내막종, 난소낭종 등 종양은 크기, 개수, 위치를 다각도로 파악할 수 있다. 자궁내막과 근육층의 두께가 일반적인 범주에 속하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혈액검사는 지표의 농도가 정상범위를 벗어나는가 아닌지가 확실한 수치로 제시된다. 이 결과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빠르게 취할 수 있다면 불편에 대처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도 있다.
가장 확실한 치료 중 하나는 수술이다. 특히 종양의 형태를 띠는 질환에 대해서 수술만큼 즉각적이고 확실하게 문제를 제거하는 치료는 사실 없다. 월경과다로 생활에 불편을 겪던 A 씨는 자궁근종 수술 이후 월경 양이 현저히 줄어 삶의 질이 크게 회복되었고 배란기의 하복통과 부정출혈로 오래 불편했던 B 씨는 자궁 내 폴립 제거술 이후에 눈에 띄게 증상이 호전되었다. 이들에게 수술은 '마술'이 될 수도 있다.
'피임약'이라고 통칭하는 호르몬제를 처방하여 체내의 호르몬 불균형을 해소하려는 시도도 있다. 자궁 내 직접 삽입하는 장치인 루프 시술을 권하기도 한다. 자궁과 난소에 자라는 종양이나 세포의 과증식은 여성호르몬의 영향을 받는데 이 호르몬은 배란이 정상적으로 일어난다면 반드시 분비된다. 배란을 멈추는 것은 호르몬의 지속적인 자극을 줄여서 병적인 세포가 자라는 것을 막겠다는 뜻이다.
지극히 극심한 통증과 수반된 증상으로 일상생활이 곤란한 이들에게는 배란을 중단하는 것이 가장 좋은 치료가 될 수 있다. 실제로 내가 만난 C 씨는 월경 주기마다 일주일 씩 이어지는 통증과 소화장애로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워 회사까지 그만두어야 할 정도였다. 여러 치료를 시도하였지만 하나같이 효과가 미미하였는데 그중 가장 삶의 질이 좋았다고 느낀 것은 배란을 중단하게 하는 주사를 맞은 이후의 몇 개월이었다고 했다. 그녀에게서 이 선택지를 제한할 이유는 전혀 없다. 삶의 질은 무엇보다 소중하다.
이 뛰어난 진단과 치료에도 두 가지 맹점이 있다. 한 가지는 그 효과가 환자 중 일부에게는 전혀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검사에서도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매 년 서너 번밖에 월경을 하지 않는 D 씨, 호르몬제로 월경을 중단하였는데도 출혈이 반복될 때마다 통증이 심한 E 씨, 근종 제거 수술을 반복했지만 번번이 재발했던 F 씨는 수술도 호르몬 치료도 소용이 없었다고 고백한다. 월경과 관련된 장애를 겪는 상당수의 사람들은 산부인과에서 어떤 검사를 해도 아무런 이상이 발견되지 않는다. 검사에는 이상이 없다는데 나는 왜 이렇게도 괴로울까, 여기서부터 다시 고민은 시작된다.
'검사 상 문제가 없다'는 것은 '(현재까지 기술적으로 가능한) 검사에서 발견할 수 있는 문제가 없다'는 뜻이지 몸에 정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다만 밝혀진 병인이 없어도 피임약과 진통제가 드러난 문제를 어느 정도는 덮어주기 때문에 우리는 확인되지 않은 기능적인 문제들을 묻어두고 넘어갈 수 있다. 아직은 병을 일으키지 않은 어떤 씨앗은 통증을 잊은 안락한 외면 아래 천천히 질병의 싹을 틔울 것이다.
다른 하나는 눈에 보이는 원인이 너무 확실한 나머지 병을 일으킬 수 있는 다른 가능성이 묻혀버린다는 점이다. 질병을 진단하고 원인을 찾아 나서는 과정은 범죄 사건을 수사하는 것과 비슷하다. 매력적인 단 한 명의 용의자 뒤에는 수더분하고 눈에 띄지 않는 여러 공범들이 숨어있게 마련이다. 공범을 하나하나 찾아내려면 지겹고 지난한 수사 과정이 필요하다. 숨어있던 공범들을 잡아들여 관리하지 않으면 그들은 숨죽이고 숨어 있다가 틈을 노려 다시 문제를 일으킨다.
오랜 월경과다로 빈혈이 심해진 G 씨는 산부인과를 찾아 자궁 내 폴립을 여러 개 발견하고 제거했지만 줄어드는 듯했던 출혈량은 두어 번의 주기가 지나가자 원래대로 돌아왔다. 의외로 꾸준히 철분제를 복용하면서 양질의 식사와 운동을 병행하여 컨디션이 회복되면서 조금씩 잦아들기 시작했다. 극심한 스트레스가 반복되는 일을 했던 H 씨는 일을 줄이면서, 저체중이 심했던 대학생 I 씨는 체중을 조금씩 늘렸더니, 추위를 쉽게 타고 늘 배가 차가웠던 J 씨는 몸을 따뜻하게 하기 시작하면서 지속되던 부정출혈이 멈췄다. 병원 진료에서 답을 찾지 못했다고 해서 멈추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증상은 나아졌다. 아주 느리고 완만하게.
하나의 진단은 가능성이 있는 여러 진단을 의심하고 배제하는 방식(R/O, Rule out)으로 이루어진다. 서양의학의 진단만이 아니라 한의학의 진단까지 포함된다면 증상을 파악하고 치료하기 위해 조금 더 촘촘한 그물을 만들 수 있다.
가령 '부정출혈'의 원인에 대해 서양 의학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기질적인 원인 : 정상적인 초기 임신인 경우, 유산기가 있는 경우, 자궁 외 임신 등 비정상적인 임신 약물 요인 : 경구 피임제의 복용, 에스트로겐의 활성도에 영향을 끼치는 약물의 복용
기저 질환 요인
- 스트레스
- 갑상선 기능 항진증 및 갑상선 기능 저하증, 당뇨 등의 내분비 질환
- 혈액 이상, 혈소판 수치 감소, 간 기능 장애, 응고 장애
- 자궁근종, 자궁선근증, 자궁내막의 용종, 콘딜로마, 헤르페스, 자궁내막 증식증, 자궁경부암과 자궁내막암
기능성 자궁 출혈 : 자궁이나 질의 해부학적 병변이나 문제가 없는데도 자궁내막에서 비정상적으로 출혈하는 경우. 대부분 난소 기능 이상 또는 무배란과 관련됨
(서울아산병원 홈페이지에서 발췌)
한의학에서는 부정출혈을 '붕루(崩漏)'라 부르며 원인을 이렇게 제시한다.
붕루(崩漏)의 원인은 혈열(血熱), 혈허(血虛), 기허(氣虛), 간신음허(肝腎陰虛), 혈어(血瘀), 기울(氣鬱) 등으로 충맥(衝脈)과 임맥(任脈)이 견고하지 못하여 발생한다.
(<동양의학 대사전> 기재, 한국한의학연구소 홈페이지에서 발췌)
한의학의 병인에서 '혈열'은 갑상선 기능 항진이나 당뇨 등의 내분비 질환과 겹친다. '혈허'는 혈액의 이상에 가깝다. '혈어'는 자궁근종을 비롯해 자궁의 실재하는 병변과 닿아있다. '기허', '간신음허', '기울'은 '스트레스'와 '기능성 자궁출혈'을 더 구체화한 원인에 가깝다. 서양의학이 기질적인 원인과 기저질환에 대해 상세하게 제시하고 있다면 한의학은 기능적인 원인과 몸이 허한 것('충맥과 임맥이 견고하지 못한 것')의 비중을 높게 본다는 점에서 다르다.
한의학의 병인은 그마다 각자의 치료법이 마련되어 있다. 기저질환이 있고 기질적인 문제가 있어도 서양의학의 치료에 반응하지 않는 일부 환자에게는 한의학적인 치료가 유효할 가능성이 있고, 그 이외의 기능성 출혈인 경우에 한의학의 치료가 확실한 대안이 될 수 있다. 현대의학의 주류를 이루는 서양의학은 뛰어나지만 '서양의학의 한계가 의학의 한계는 아니다'.* 누구를 위해서도 아니고 환자를 위해서 생각해 볼 문제다. 대안에는 한의학뿐 아니라 생활의 관리, 습관의 교정, 온열요법, 정신건강의 관리가 모두 포함될 수 있다.
*일본의 소화기 내과 전문의이자 한방 전문의인 호시노 에츠오가 본인의 저서에서 한 말
(1952년생으로 1979년 도쿄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 간켄아리아케 병원의 통합암진료센터에서 양한방 협진 암케어 전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