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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최 Jan 16. 2024

복약안내서를 쓰는 밤의 새해다짐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내 라이프스타일을 설명하는 사자성어는 뭘까. 작심삼일? 용두사미..? 


     떠오르는 단어들의 맥락을 보건대 역시 나는 시작은 쉽지만 마무리가 잘 안 되는 인간이다. 브런치만 해도 야심 차게 시작은 해놓고 작가의 서랍에 쟁여둔 기획들이 쌓여있다. 유일한 취미인 뜨개질도 희대의 문어발로 코 늘리기나 무늬 뜨기 같은 재미있는 부분까지만 하고 중단한 프로젝트가 못해도 일곱 개는 된다. 평생의 직업도 지겨워지니 다른 전공을 기웃거리지 않았던가.


     어릴 때부터 그랬다. 시작할 때는 신나서 해놓고 중간에 심드렁해져서 흐지부지되곤 했다. 와중에 그나마 끝을 보는 일은 호흡이 짧았고 단기간에 최대의 효율로 몰아칠 때가 많았다. 학교 다닐 때에도 아마 사이사이 시험이 없었으면 그닥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 같은 마감형 인간은 외압으로 움직인다.


      '난 게을러 빠졌어 틀려먹었어'라는 자학과 '요래조래 하면 안 될 게 없을 것 같은데'라는 근자감이 수시로 뒤섞이지만 요즘은 스스로에게 너무 박하게 굴지 않으려 노력한다. 나이를 먹어서 좋은 일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제일은 스스로의 약점을 다루는 법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재미있어 보이는 것을 일단 많이 시작하자. 시작한 일을 꼭 끝내지 않아도 그 과정에서 얻는 게 있고 그중 몇 개라도 끝을 보면 나름의 성과도 챙길 수 있으니까. 잘하고 싶어서 시작도 못하는 경우가 없진 않지만 그래도 첫 발을 떼는 두려움이 적은 편이라는 것도 적극 활용한다. 시작한 일은 일단 동네방네 소문을 내서 체면을 중시하는 내일의 내가 울면서 해내도록 하는 방법도 있다. 


    문제는 이제 더 이상 무섭지도 무겁지도 않은 스스로의 약점 같은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에 적응하는 일이다. 이 나이를 먹어도 힘든 일은 늘 새롭게 다채롭고 낯선 세상은 도처에 널려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신작 애니메이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본 게 작년 10월, 개봉일이었다.


     오랜만에 극장에서 본 영화였다. 다 보고 나오면서 분명 '한번 더 봐야지!'하고 생각했는데 당연하게도 그걸로 끝이었다. 자영업을 하고 아이가 있는 세상의 모든 여자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투-두-리스트'에서 일 순위로 제치는 일이 나에게는 극장 영화 관람이다. 단 두세 시간이나마 연락을 두절한 채 현실이 아닌 다른 세계에 접속하는 일이 더없는 사치처럼 느껴진다. 세상이 내게 허락한 사치는 넷플릭스와 유튜브까지다.


     그런 만큼 별러서 간 극장이었다. 원래도 좋아했던 감독이 무려 10년 만에 내놓은 장편 신작, 어떤 사전홍보도 없이 작품으로 직행하게 한 정공법의 마케팅, 거장의 삶과 세계를 집약한 작품의 서사. 그 모든 것을 아우르며 상상력으로 층층이 쌓아 올린 거대한 세계에서 길을 잃는 기분은 황홀했다. 현실에 단단히 매인 내 존재의 욕망을 충족하기에 충분했다. 기왕 현실을 떠나 다른 세계로 접속하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지, 암.


    영화의 제목인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극 중에서 주인공에게 어머니가 시공간을 뛰어넘어 남긴 책의 제목과 같다. 실제로 미야자기 하야오의 어머니가 어린 시절 그에게 요시노 겐자부로가 쓴 동명의 청소년 소설을 선물했다고 한다. 극에서는 말미에 주인공이 하게 되는 선택이 그 질문에 대한 그 나름의 대답인 것도 같다. 신마저 포기한 세계라도, 우리는 어떻게든 살아가야만 한다.


     이 영화는 지난해 내가 본 마지막 영화였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제목에 담긴 강렬했던 그 질문은 나를 따라와 날이 가고 해가 바뀌도록 계속해서 말을 걸어왔다. 그래서, 너는 이제 어떻게 살아갈 거냐고. 그렇게 이 질문과 함께 지난 한 해가 가고, 또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었다. 




     지난 한 해 쉬지 않고 달려온 것 같은데 왜 성취보다 좌절이 더 기억에 남을까. 


     열심히 살았지만 뭔가 이뤘다기보다 그저 버텨낸 것뿐이라고 느껴서일까. 작심삼일의 캐릭터는 작심할 때, 용두사미의 화신은 용의 머리를 꿈꿀 때 신나는 법인데 엉덩이가 무거워져 뭐라도 새로 시작할 여유가 없는 한 해였다. 그저 꿋꿋이, 묵묵히, 자리를 지키기도 벅찼다. 


     자영업자의 일터에는 코로나가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불경기가 몰아닥쳤다. 안 그래도 느렸던 아이는 도통 걸음이 느려 보통의 발달을 따라잡지 못했다. '아직' 못 따라잡은 것인지 '결국' 못 따라잡을 것인지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빠르게 늙어가는 시간이었다.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기댈 수도 없었다. 가족은 각자의 힘듦이 있고 이제 나는 누군가에게 기대는 것보다 모두의 버팀목이 되어야 하는 사람이니까. 


     무엇보다 나를 괴롭혔던 것은 내가 과연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의심이었다. 최선을 다해도 충분하지 않을 때 늘 죄책감이 따라붙었고 일과 육아에 쏟아붓는 내 노력은 언제나 충분하지 않았다. 죄책감은 에너지를 빨아먹는 뱀파이어 같았다. '하던 것도 잘 못하고 있는데 내가 뭘 또 시작해, 여력이 있으면 하던 거나 잘하자.' 그래서 일을 더 했고 그 이외의 모든 생활이 조금씩 무기력해지는 걸 지켜만 보았다. 어떤 새로운 마음도 먹지 않고 남은 시간의 부스러기들을 낭비하며 보냈다.


     꼭 해야 할 일과 반드시 해야 할 일 사이에 여유는 없었지만 먼저 사라진 건 사실 절대적인 시간보다 의욕이었다. 어디 놀러 갈 의욕, 사람들을 만날 의욕, 독서모임을 시작할 의욕, 인문학 책을 펼칠 의욕, 나보다 힘든 누군가를 적극적으로 도울 의욕. 발등의 불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당장 쓸모를 증명할 길이 없는 어떤 일에도 의욕을 나누지 않았는데도 왜인지 의욕의 총량은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았다. 쓸모없는 일의 쓸모는 무엇이었을까. 세상은 완벽하지 않은 부분까지 포함해서 완벽해진다고 말했던 게 하루키의 어느 단편이었더라. 




     한 해가 가고, 새해가 왔다. 어느 나이인가부터 연말도 새해도 큰 감흥이 없었다. 크리스마스도 생일도 마찬가지인 거 보면 시간이 흘러가는 것만으로도 감동적인 나이는 이미 지나버린 건지도 모른다. 그래도 연말에 굳이 해운대 부모님 댁까지 새해 첫 일출을 보러 다녀왔다. 언제나와 똑같은 일몰과 일출이라도 지난해와 올해를 구분 짓는 의식으로는 그만한 게 없으니까. 인터넷을 뒤져 새해 토정비결도 찾아보았다. 새해 운이 나쁘지 않았다. 역시, 사주팔자는 정확하다니까.


     생각해 보면 작심삼일과 용두사미의 인간에게 새해보다 좋은 날은 없다. 묵직한 인생의 계획들을 고민하느라 하찮고 자잘한 계획들을 잊고 산 건 아닐까. 매년 올해의 매출 목표와 사업 비전, 아이 교육과 가계의 상황 같은 큰 계획에 대해서만 생각했었는데 올해는 훨씬 작은 다짐을 몇 가지 정했다. 가능하면 구체적이고 사소한 걸로, 별로 노력하지 않아도 쉽게 지킬 수 있는 걸로.


     12시가 되기 전에 자자. 일정량의 '혼자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게 필수인 파워 I형 인간에게 줄일 수 있는 건 잠뿐이라 쉽게 잠을 포기하곤 했었다. 어떤 날은 일하느라 어쩔 수 없이, 또 어떤 날은 누워 뒤척이는 시간마저 아까워 피곤해 쓰러질 때까지 부러 버티기도 했다. 올해는 그러지 말자 다짐한다. 잠이 부족한 생활은 지속가능하지 않고 체력은 한정 없지 않다.


     가방 속에 읽고 싶은 책을 넣어두자. 처음에는 '책을 읽자'였는데 못 지키는 날도 많을 것 같아서 일단 가방 속에 넣어두기라도 하자고 바꿨다. 덕분에 가방을 열 때마다 책등이 보여서 '아, 책을 읽어야겠다'라고 매번 상기하게 된다. 이번 주는 황선우 작가님이 일에 관해 쓴 책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를 넣어두었다. 일에 매몰되는 기분이 들 때마다 다시 열어보게 되는 책이다.


     하루 하나씩 무슨 일로 행복했는지 적어두자. 행복과 불행은 늘 일정한 비율로 섞여 있고 가장 힘든 시절에도 웃을 일은 항상 있다. 다만 불행은 발아래로 고이는데 행복은 가벼워 휘발되는 기분이라 행복한 순간 깨알같이 기록해 두기로 했다. 지난 연말은 일로 인해 힘들었지만 환자들로부터 고마웠다는 손편지와 선물을 그 어느 때보다 많이 받았다. 아이가 엉성한 손하트를 그리며 '사랑해'라고 말하는 순간을 처음 마주하기도 했다. 기록해 둔 행복은 날아가지 않고 오래 남아 마음을 튼튼하게 해주는 근육이 된다. 

  



     아직도 해야 할 일은 많고 시간은 여전히 없지만 

     올해는 사소한 계획들을 세우고 또 지키려고 노력하고 싶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만큼이나 '어떻게 살고 싶은가'에 대해서도 생각하면서 살고 싶다. 

     지키지 못할 계획들을 상상하고 싶고 무모한 프로젝트에 착수하고 싶다. 

     일로 인해 힘들어도 일이 주는 기쁨을 더 많이 누리고 싶다. 

     잘할 수 있는 일을 더 잘하고 싶다. 

     아이의 세계를 존중할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다.


     그렇게 올해가 가고 나면 내가 이룬 것들을 스스로 칭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새해에는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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