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어 해봐."

혼혈이면 외국어를 잘할까?

by 파드샤

어릴 적에 엄마가 대만 사람이라고 하면 듣던 말은 뻔했다.


"그래서 네가 눈이 큰가?" (같은 동북아인이다)

"그럼 너 이중국적이야?" (아니다)

"너 중국어 할 줄 알아?" (응..)

"중국어 한 번 해봐." (?? 안녕?)


어른인 지금의 난 저 질문들이 아무렇지도 않고, 오히려 맘 속에 품지 않고 직접 물어봐주는 것이 고맙기까지 하다. 그렇지만 90년대 서울특별시 송파구의 한 동네에 사는 성격이 까탈스럽고 감수성이 예민한 나란 꼬맹이는 동물원의 원숭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안 그래도 세상에서 제일 못난 미운 오리 새끼 같은 심정으로 배배 꼬인 성격의 소유자였던 당시의 나에게는 순수한 호기심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나중에서야 안 것이지만, 직접 얼굴 앞에 질문하는 사람들이 가장 악의 없고 좋은 사람들이다.

특히 '모국어(mother tongue)'인 중국어를 잘할 것이라는 선입견은 나를 힘들게 했다. 왜냐하면 난 한국에서 자라서 한국 학교에서 한국어를 사용하며 자랐기 때문이었다. 대만에 가는 것은 방학 때마다 외갓집에 들를 때 정도였고, 그때 잠시 중국어 능력이 향상되었다가 집에 돌아오면 퇴보하는 것이 반복되었다. 집에서 엄마와 사용한 중국어도 간단한 생활용어("밥 먹었니?", "잘 잤어?")였기 때문에 어디 가서 중국어 잘한다고 하기에는 민망한 수준이었다.

더 웃긴 사실은 대만에 가서도 상황이 비슷했다는 것이다. 대만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내가 자신들과 자유롭게 소통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도 무리는 아니었던 것이, 실제로 나는 다년간 엄마와 외할머니의 통화를 엿들은 덕에 중국어 듣기 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게다가 어려서부터 언어를 사용하기는 했으니 발음만큼은 그럴싸해서 언뜻 보기에는 중국어를 꽤 잘하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난 알아듣지도 못하고 뭐라고 해야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겉으로만 그럴싸하게 상황을 모면하는 임기응변 능력만 계발했을 뿐이었다. 잔꾀 부릴 시간에 진짜로 중국어 공부를 했다면 지금에라도 당당 했을 텐데, 사실은 지금도 중국어를 사용할 때마다 진짜 실력이 들킬까 봐 심장이 두근두근하다. 특히 한자 외우는 것이 너무 싫어서 평균적인 한국인보다 한자 실력이 떨어진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가 있는데, 당연히 중국어 독해와 쓰기 능력은 형편없는 수준이다. 우리 가족들 사이에서 난 이른바 '까막눈'으로 통한다. 베이징과 타이베이 잠시 살기도 했지만, 국제학교를 다니고 외국인 친구들과 어울려 다닌 탓에 영어만 사용하고 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어를 잘할 것이라는 섣부른 짐작 덕분에 이득을 본 적도 있다. 국제교류를 업으로 하고 있는 지금에도 사람들은 실제 내 능력보다 나에 대해 높게 평가하는 면도 있다. 업무상으로 영어밖에 사용하지 않았는데 혼혈임을 알면 중국어 실력 또한 영어만큼 좋을 것이라고 얼추 짐작하곤 한다. 중화권 관계자들을 만날 땐 분위기가 훨씬 부드럽게 풀리기도 한다. 대만 사람만 사용하는 표현(파이세이!)을 사용하기도 하기 때문에 그 모습이 정겹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중국어를 잘해야만 하는 입장이다 보니 잘하는 척을 하다가 진짜로 중국어가 많이 늘기도 한 것 같다. 어릴 적에는 중국어를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 나름대로 고역이었지만 지금은 그럭저럭 능글맞게 잘 넘기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요즘 내가 대만 혼혈이라고 하면 더 이상 "중국어 해봐."를 듣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대신 그 자리에 "나 중국어 할 줄 알아."가 자리 잡았다. 상대방이 열심히 아는 모든 중국어(니하오, 니츠판러마, 짜이찌엔, 하오, 따거...)를 늘어놓는 동안 인내심 있게 들어주고, "발음이 정말 좋으시네요!"하고 최대한 영원을 담아 감탄을 하는 것이 요즘의 고충이라고 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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