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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위 Apr 08. 2024

진짜 봄이 왔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날씨를 본다. 창밖으로 한번 보고, 인터넷으로 두 번 보고, 마지막으로 티브이 뉴스에서 또 한 번 본다. 그날 밖으로 나가야 할 일이 있든 아니든 상관없다. 그냥 습관이다. 야외로 나가있는 기상캐스터가 오늘의 날씨를 전하고 있었다. 강릉의 한낮 기온은 25도까지 오른다고 했다. 이 정도 기온이라면 '가게 언덕을 걸어서 넘어오는 손님들은 더워하겠다. 일찍 가서 에어컨을 틀어야지.' 생각을 하며 출근 준비를 시작했다.


 옷을 갈아입는데 아파트 놀이터에서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베란다 창을 열어 소리를 안으로 들였다. 친구와 술래잡기 중인지 소리 지르며 뛰어다니는 아이, 털썩 주저앉아 엄마와 흙장난을 하고 있는 아이, 미끄럼틀 위에서 친구를 부르는 아이. 겨우내 텅 비어있던 놀이터가 아이들로 가득했다. 관리사무소에서 페인트를 새로 칠했는지 알록달록한 놀이기구 색깔이 유난히 진해 보였다.


 우리 가게 앞 화단에는 벚꽃나무 두 그루가 있다. 3월 중순부터 맺힌 꽃망울이 불긋했는데, 4월이 되어서야 몇 개의 꽃이 힘겨운 개화를 시작했다. 오늘 출근하는 길에 보니 벚꽃나무 두 그루가 모두 새하얗게 만개했다. 슬쩍 불어오는 따뜻한 바람에 작은 꽃잎들이 휘날리고 있었다. 하얀 꽃이 분홍 연지곤지를 찍은 모습 같아 예뻤다. 아내에게 몇 장 보내주려고 사진을 찍었다. 나는 사진은 영 글렀다.


 날씨가 너무 좋으면 손님이 많이 오지 않는다. 배가 부르니 졸음이 왔다. 따뜻하고 조용하니 나른했다. 밖에 있던 노란 햇볕이 가게 창을 넘어올 때. 에잇! 가게 문을 닫고 나가버릴까 했었다. 경포해변에 돗자리 깔고 누워 한숨 잤으면. 경포호 한 바퀴 걸으며 콧바람을 쐬었으면. 경포대 인파에 섞여 아내와 벚꽃 놀이를 즐겼으면 얼마나 좋을까. 다행히 손님 한분이 들어와 나를 막아 주셨다. 그래. 우리 귀여운 벼리 사료값을 벌어야지.


 가게에 온 손님들의 옷이 가벼워졌다. 패딩은 이미 지난달에 사라졌는데 오늘은 얇은 잠바도 없다. 모노톤 일색이었던 옷 색깔은 오래 기다렸다는 듯이 다채로워지고 화사해졌다. 옷보다 더 달라진 건 사람들의 몸짓과 표정인데 움츠렸던 어깨가 펴지고 얼굴이 환해졌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네오는 목소리와 카운터로 걸어오는 발걸음에도 힘이 붙었다. 보는 나도 덩달아 기운이 올랐다. 세상에 봄이 왔다. 진짜 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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