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치과위생사 도비 Nov 16. 2022

#2 우연에서 멈출 것인가? (3)

일본에서 노숙자가 될 뻔한 이야기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아리가또' 뿐

일본에 유학을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하면 당연히 일본어를 잘했으니까 갔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일본어를 공부했던 건 중학교 2학년 때 제2외국어로 배운 경험이 다였다. 그렇기 때문에 거의 유아기의 일본인과 비슷한 수준의 일본어를 구사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갈 수 있었던 것은 히로시마 대학원에서 수업을 대부분 영어로 진행하고 있다며 영어 성적만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물론 영어 성적도 대단한 수준은 아니지만 나름 미취학 시절부터 윤 선생, 튼튼 영어 등으로 어머니가 쌓아주신 영어교육이 어디로 증발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일을 하면서 따로 영어공부를 하는 시간을 내지 않고도 대학원 입학 요건은 충족할 수 있었다.

다만 학교 수업이 내 일본 생활의 전부가 아닐 테니까 기초적인 일본어는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은 했었다. 그렇지만 기자 업무는 퇴근 시간이 규칙적이지 않고 주말에도 취재를 가는 일이 많아 따로 일본어 공부를 할 시간은 없었다. 그래서 출퇴근 시간을 활용해 일본어를 공부했다. 일본어 공부 방법을 찾다 보니 큰돈을 들이지 않고도 외국어를 공부할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들이 많았다. 

지하철에서 일본어 회화를 공부하고 유튜브로 일본에 가기 전에 준비해야 하는 것들, 재류카드 발급받기 등 일본 유학생들이 올려둔 브이로그를 보며, 일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나의 모습을 상상하며 꿈에 부풀어, 아니 거의 취한 채로 일본으로 떠나는 날을 기다렸다.


막상 도착했는데 지낼 곳이 없다.

한국에서 일본으로 가기 전, 학교에 기숙사는 없는지 물어봤었다. 답변은 대학병원과 같이 있고 대학병원의 직원들도 함께 사용하는 기숙사라 아마 들어갈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다른 방을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하던 찰나 히로시마에서의 연수 기간 동안 친해진 인도네시아 친구가 학교 기숙사는 아니지만 히로시마시에서 운영하는 국제 기숙사가 있다고 한국인은 없으니까 신청하면 들어갈 수 있을 거라고 알려줬다. 


펼쳐질 노숙사 신세를 전혀 예상치 못하고 맘 편히 인형들과 호텔에서 지내던 시절

당연히 될 거라고 생각하고 따로 자취방을 알아보지 않고 히로시마에 도착했었다.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잠시 호텔에 머물면 된다고 간단하게 생각했었다. 그렇게 마음 편히 히로시마에서 지내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기숙사로 들어오라는 연락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인도네시아 친구와 함께 기숙사로 향했다. 

조심스럽게 기숙사 합격 여부를 물어보았지만 돌아오는 답은, 일본어를 잘하지 못하는 나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스미마셍가,,"

스미마셍이 실례합니다, 죄송합니다라는 뜻이 아니니까 안 됐다는 것이었다.


당황하고 낙담할 시간도 없었다. 히로시마의 유명한 한국인 노숙자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에 얼른 지낼 곳을 찾아봐야만 했다. 그렇게 급하게 히로시마 대학의 교수님을 찾아갔다. 거의 살려달라는 표정을 한 채.


교수님과 함께 부동산에 급하게 달려갔지만 이미 개강 시즌이 다가왔기 때문에 방이 많지는 않았다. 게다가 외국인은 신분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외국인에게 집을 내놓지 않겠다는 곳도 많았고, 외국인에게 집을 내놓는다고 하더라도 보증회사에 일정 금액을 지불해야만 계약이 가능한 경우도 많았기 때문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집이 3군데 정도밖에 없었다. 

그래도 2년 간 지낼 방인데, 치안도, 편의성도 고려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처음에 보게 된 방은 위치는 나쁘지 않았지만 방바닥이 목재여서 걸을 때마다 쿵쿵 울리는 방이었다. 내가 몸집이 크지 않지만, 그래도 이런 방에서 지낸다면 층간소음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것 같아 선택하지 않았다. 

그다음에 본 집은 바닥은 목재가 아니었는데 옆 건물과의 간격이 너무 가까운 데다가 집의 베란다가 서로 마주 보고 있는 구조여서 마음만 먹으면 옆 건물에서 우리 집으로 넘어 들어올 것만 같았다. 

내가 고를 수 있는 집은 이게 최선일까 고민하던 찰나 외국인에게 보증회사 없이 계약해주겠다는 집주인이 나타났다. 게다가 7층이라 치안도 괜찮고 건물도 깔끔했다. 1층에는 관리인 아저씨가 계셨고 엘리베이터도 있었다. 무엇보다 바닥도 울리지 않았고, 대로변을 향하고 있고 베란다에서의 전망이 산이었기 때문에 옆 건물에서 혹시 넘어오지 않을까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됐다.

"할렐루야"

역시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나 보다.

아마 교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셨다면 집이 있다고 하더라도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노숙자 신세를 면치 못했을 것이다. 

히로시마에서 지냈던 나의 마운틴뷰 자취방


매거진의 이전글 #2 우연에서 멈출 것인가?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