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한 마리를 잡았을 때, 그러니까 입질을 느꼈을 때. 나는 오직 이 순간만을 위해, 살아왔는가 싶은 정도의 희열을 느꼈다. 낚시를 시작한 지는 1개월, 입문용으로 산 저렴한 원투 낚싯대를 들고 주말마다 바다를 찾았다. 친구와 같이 시작했는데, 친구는 벌써 낚싯대를 두 개를 더 장만했다.(사실 총 네 개였는데, 두 개는 부러졌다.) 친구는 한 달 동안 망둥어 두 마리를 잡았고, 나는 한 마리도 못 잡은 상태였다. 나는 채비하는 것도 익숙하지 않았고, 갯지렁이를 바늘에 꿰는 것도 능숙하지 않았던 터라 입질부터 바라는 것은 욕심이라 여겼다.
그러다 어젯밤에 처음 입질을 느꼈다. 오늘도 허탕이겠거니 하며 밤하늘에 박힌 별을 하나 둘 세어보는데 손가락에 걸친 낚싯줄에서 작은 떨림이 느껴졌다. 나는 낚시 유튜버가 알려준 대로 낚싯대를 내 머리 뒤쪽으로 강하게 당겼고, 무언가 바다 밑에서 툭하고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 드디어 잡혔구나 하는 기쁨과 낚시가 내 일상의 한 부분을 차지하게 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당신과의 첫 만남도 그러했다. 그날의 만남이 내게 얼마나 강렬했는지, 내 일상의 아니 인생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타이밍이었음을 당신은 아마도 모를 거다. 표현에 인색한 나는 에둘러 표현할 뿐이었으니까. 당신은 카페에 먼저 가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일이 끝나자마자 약속 장소로 갔다. 논현역 근처의 카페인데, 나는 논현역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던 터라, 당신을 만나러 가는 길이 낯설면서도 묘하게 긴장됐다. 길을 못 찾으면 어떡하나 하는 것과 당신을 만나면 무슨 얘길 먼저 꺼내야햐나 고민했으니까. 그날은 비가 막 그친 뒤였는데, 날씨가 좋죠?라고 하기엔 아직 날이 개지 않았으니까, 비가 많이 왔네요라고 하기엔 우산이 별 쓸모가 없을 정도로 아주 조금만 내렸으니까.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당신이 내게 연락을 해왔기에 나는 오랜만이네요라던가, 많이 예뻐졌네요라고 할 수도 없었으니까. 당신은 나의 선배였으니, 나는 그럼 만나자마자 안녕하세요, 선배님이라고 해야 하나까지 생각했다. 아냐 그건 너무 심심하고, 하찮은 인사였다. 그러나 우리가 만나기 전까지 메신저로 나눴던 대화는 조금 남달랐으니까. 우린 서로의 존재를 거의 모르는 형식적인 선후배 사이였지만, 우리의 대화는 정말이지 깊었느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당신에게 했던 첫 인사말부터 고치고 싶다. 나는 당신에게 "안녕하세요."라며, 괴상하고 심심 하 인사를 건넸으니까. 그런 이도저도 아닌 인사를 건넬 바엔 그냥 가만히 웃기만할 걸,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당신은 마치 내가 그런 어설프고, 어색하고, 심심한 인사를 건질 것을 미리 알기라도 한 듯 너그럽게 웃어줬으니까. 나는 다행히도 속내를 숨길 수 있었다. 아주 자연스러운 인사였다고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였던 거다.
나는 묵직한 무게를 느껴가며 릴을 감았다. 당기는 힘으로 봐 선 대어는 아니지만, 힘 깨나 쓰는 녀석이었다. 반신반의하던 친구도 이내 잡은 것 같다고 소리쳤고, 허탕만 치던 주변 낚시꾼들이 삼삼오오 모여 도무지 아무 입질도 없는 이 곳에서 어떤 물고기를 낚아내는지 궁금해했다. 드디어 낚시 추가 수면 위로 오르고, 흰 물체가 점점 갯바위로 올라올 때 나는 그것이 물고기가 아니라는 것을 서서히 알게 되었는데, 그럼 이게 도대체 뭐지? 하는 생각을 갖고 점점 더 힘차게 당겼다.
“갯가재, 가재야 가재. 아니 가재 입질을 어떻게 느꼈어요?”
사랑의 문을 여는 순간을 입질이라는 단어로 비유해도 될까.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당신과 나의 눈길이 얼마나 오래 허공에 오래 머무르는지. 당신이 아니었다면, 나는 테이블에 한 상 차려진 이 음식을 얼마나 게걸스럽게 먹었을지. 당신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나 역시 당신이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아무것도 모른 채. 우린 그렇게 이상한 공기를 만들어냈다. 그러니까 누군가 사랑의 정의를 묻는다면, 나는 장황할 수밖에 없는 거다. 당신과 나는 서로의 마음에게 난데없이 날아온 이 날카로운 낚싯바늘에 어찌할 바 없이 견고했던 마음을 기꺼이 내어줄 수밖에 없다. 그렇게 시간이 한 참 흘러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이 오면, 자연스레 알게 된다. 그러니까 당신과 내가 이제는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순간이 온 것을. 낚시가 세월을 낚는다고 했던가, 만남도 그러함을 우리는 안다. 잡힐 때까지, 일어설 수 없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