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길과 뛰는 길 중에, 나는 걷는 길을 택했다.
그것은 뜻한 바 있어 결정한 삶의 방식이었다. 예를 들면 ‘고잉 그레이(going gray)’ 하기로 마음먹고 더 이상 미용실에서 염색을 하지 않은 것, ‘비혼’을 결심한 후 계속 그리 살기로 마음 정리한 것. 인생은 어차피 B(birth)와 D(death) 사이 무수히 많은 C(chance)로 이루어지지 않나. 걷는 길을 선택하며 뛰는 길 쪽으론 곁눈질도 않은 채 잘 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변수가 기어이 나타나고야 만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인생! 어쩌다 보니 나의 걷는 길이 조금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이 길도 어떤 속도로, 무슨 의지로, 혹은 누구와 함께 걷느냐에 따라 제각각 다른 공기의 길이 될 수 있다. 지금 이 길 위에서 온갖 통제 불가능한 에너지가 넘실대고 있다. 팔과 다리가 제멋대로인 순간도 오고, 정답이라 생각했던 게 어느 때에는 오답이 돼버린다. 이제 나는 누구와 손을 잡을 것인가, 그와 얼만큼 갈 것인가.
내가 선택하고 펼쳐낼 일들이 걷는 길 위에서 조금 느려져도 괜찮다 생각했었다. 하지만 덧없이 흘러간 2020을 보낸 후 마음에 조바심이 나기 시작한다. 이렇게 산책하듯 걷는 게 맞는가 의심이 든다. 잡았던 손을 아주 놓아버릴지, 그와 오래오래 갈지 고민은 깊숙이 흘러들었다. 지금 이 길은 고요할 수가 없다. 밀물과 썰물처럼 오락가락하며, 지워진 페인트 위에 글자를 덧입히듯 난장판이다. 어디가 시작이고 끝인지도 모르게 됐다.
그럼에도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그저 걷는 것, 걷고 싶다 말하고 생각하는 것, 걷고야 말겠다고 다짐을 덧칠하는 것뿐.
걷는 길 위에 걷는 길을, 오늘도 나는 걷고 있다.
+ 이 글이 나오기 오래전에 썼던 글입니다.
https://brunch.co.kr/@danceadaywriter/125
*매거진 [ 쑥떡을 씹으며 ]
쑤욱 떠오른 기억 -> 쑤-욱 떠ㅡ억 -> 쑥떡
쫄깃 오묘한 쑥떡의 식감과 향내 같은 일상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