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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개 Apr 23. 2020

[아메리칸 셰프 (2014)]

《Chef》 좋아하는 걸 할 수만 있다면

사람의 자존심을 긁는데 가장 쉬운 방법이 있다. 지금 그 사람이 하고 있는 것을 비난하라. 신랄하게 혹은 은근하게, 어떤 식으로든 그 사람의 기분은 상해있을 것이다. 무엇이든 지금 하고 있는 일이라면 결국은 '나'의 일부일 테니. 그런데 그게 '좋아하는 일'이라면 더 자존심 상한다. "네가 뭔데 나를 평가해"라고 말하는 제시가 이해되는 경우랄까. 더 나아가 본인이 묻어나는 일이라면 절망까지 이어질 수 있다. 결국은 소소한 비평이 나를 싫어한다는 극단적 논리.

아메리칸 셰프 (2014) ⓒ movie.naver.com

이후의 내용은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이혼은 했지만 아들과 종종 만나는 저명한 셰프, 칼 캐스퍼 (존 파브로)는 요리 비평가 램지 미첼 (올리버 플랫)의 혹평에 기분이 상해 있었다. 화난 속에 기름을 붓는 건 지배인 리바 (더스틴 호프만)의 '자본주의적' 조언. 잘 팔리는 게 성공이냐니 요리보다 중요한 건 원래 해왔던 것에 대한 기대니 뭐니, 하여간 기분만 더 상했다. 거기에 이어지는 트윗, 홧김에 달은 욕 섞인 답글 폭발한 캐스퍼는 미첼에게 도전을 신청하지만 리바의 통제로 인해 원하던 요리를 선보이지 못한다. 캐스퍼는 결국 직장 대신 폭발하는 영상의 유튜버가 되는 사고를 친다.


 전 부인 이네즈 (소피아 베르가라)는 어디에 얽매이지 말고 요리할 수 있는 푸드트럭이 어떠냐고 말한다. 처음에는 나름 큰 레스토랑의 메인 셰프였기에 자존심 긁는 또 다른 소리이겠거니 싶었지만 직장을 잃은 이후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쁘지 않은 아이디어였다. 게다가 아들 퍼시 (엠제이 안소니)와 뉴올리언스에 가겠다는 약속도 지키면서 떳떳하게 아빠 노릇 할 수도 있겠고, 하고 싶은 요리도 맘껏 할 수 있겠다 싶었다. 거기에 이네즈는 같이 마이애미에 가서 장인어른을 보자고 말한다. 고민하던 캐스퍼는 떠난다, 본인이 셰프가 되었던 마이애미로.

'엘 제페' 두목 푸드트럭 ⓒ imdb.com

 전 부인의 전 남편이었던 복잡한 관계의 마빈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투자 속에 빈털터리 었던 캐스퍼는 푸드트럭으로 재기에 도전한다. 고맙게도 같이 일했던 마틴 (존 레귀자모)가 합류하면서 힘을 더 내본다. 쿠바 샌드위치, 아로즈 콘 폴로 등 직원들이 좋아했던 라틴음식들을 메뉴로 삼고 아들 퍼시와 함께 미국의 이곳저곳을 여행하며 요리해본다. 반응이 뜨겁다. 퍼시는 트위터로 바이럴 마케팅도 한다. 역시 어느 SNS든 공인 마크가 있으면 '핫'해진다.


 결국은 미첼이 푸드트럭의 새 메뉴들을 맛보면서 트럭이 레스토랑으로 변한다. 혹평했던 그가 팬이 되어 투자하게 된 것이다. 캐스퍼는 좋은 아빠와 훌륭한 셰프, 그리고 어쩌면 전 아내와의 새로운 시작까지도 이루게 되었다.


- 이 일이 따분해?

- 아니, 좋아.

- 난 사랑해.

- 내 인생에 좋은 일들은 다 이 일 덕에 생겼어. 내가 뭐든지 잘하는 건 아냐. 난 완벽하지 않아 최고의 남편도 아니고, 미안하지만 최고의 아빠도 아니었어. 하지만 이건 잘해. 그래서 이걸 너와 나누고 싶고, 내가 깨달은 걸 가르치고 싶어. 요리로 사람들의 삶을 위로하고 나도 거기서 힘을 얻어. 너도 해보면 빠지게 될 거야.


 단순히 이 영화를 평가하기 어렵다. 독립영화이지만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들이 섞여있다. 가장 주목되는 건 화려한 배우진과 연기력보다는 '요리' 그 자체다. 셰프가 하는 맛뿐만 아니라 눈도 즐겁다. 이중 영화로 누릴 수 있는 건 단지 눈밖에 없지만, 감독이자 주인공인 존 파브로는 이점을 그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 어떻게든 눈을 뗄 수 없게 '맛있게' 보여준다.


 이 영화는 2014년도에 개봉했다. 《아이언맨 3》 (2013)과 《어벤저스 : 에이지 오브 울트론》 (2015) 사이에 개봉한 영화다. 아이언맨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블랙 위도우 스칼렛 요한슨, 그리고 해피 존 파브로는 마블 스튜디오에서도 볼 수 있는 조합이지만 감독 존 파브로는 대형 영화사에서의 정해진 틀에 질려서 본인만의 작품을 만들고자 했다. 열정을 좇는 내용으로 본인의 열정을 담았다. 그래서 탄생한 게 《아메리칸 셰프》였다.


 파브로는 한국식 타코를 만드는 푸드트럭 고기(KOKI)로 유명해진 로이 최 (Roy Choi)에게 영감을 받아 각본을 짠다. 로이 최는 실제로 트위터로 본인의 행선지를 알리는 마케팅으로 흥한 셰프다. 김치, 불고기 등을 넣은 한국식 타코는 미국인들에게 위생적이고 깔끔한 맛이라는 평을 받았고 이 둘의 인연은 이후로도 이어져 넷플릭스 시리즈인 《더 셰프 쇼》 (2019)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로이 최에게 직접 전수받았다는 치즈 토스트 ⓒ https://www.youtube.com/watch?v=5BTfctEmg5w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파브로는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템과 주제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고 영화 속 캐스퍼는 본인이 열정적으로 하는 일을 다시 할 수 있음에 집중한다. 큰돈을 벌고 있든, 나락으로 떨어졌든 말이다. 그게 행복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하게 되는 과정이 까다롭고 불편하더라도 막상 하게 되면 행복해진다. 그게 이 영화가 전달해주는 위로다.


 생각보다 오지랖 넓은 사람은 많다. 반도의 나라에서 각국의 간섭을 받다 보니 한국인들은 더 많은 오지랖을 뽐내는 경우도 있다. 넘지말아야 할 선이 각자가 있는 것을, 누가 전통놀이 아니랄까 봐 유소년 교육이 된 줄넘기놀이로 가끔씩 왔다 갔다 한다. 자존감 챙기기가 내 잇속 챙기기보다 어렵다. 그래서 이 영화가 위로해준다. 좋아하는 걸 할 수만 있다면 주변이 뭐가 중요해. 인정도 평판도 중요하지만 그래도 일단은 좋아하는 걸 하는 게 중요하잖아- 하면서 말이다.


 맛있는 걸 떠올릴 때 보는 영화이기도 하지만 심심찮게 흘러나오는 라틴음악과 스페인어, 그리고 이국적인 음식의 요리 장면들은 심적으로 위로가 된다. 단순 푸드 포르노같은 영화가 아니다. 나에게 열정과 행복, 그 사이에 좋아하는 것들이 있다는 걸 다시금 말해주는 영화다. 무언가 주변에서 끊임없이 괴롭히고 낙담시키면 잠시 멈추고 생각해보자. 그래도 좋아하는가, 좋아하는 걸 할 수만 있다면 행복한가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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