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8 침공
아이젠하워
1960년 3월 두 번째 임기도 얼마 남지 않은 아이젠하워가 CIA의 계획을 승인했다. CIA가 복종을 거부하는 쿠바에 무력 침공해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한다는 계획이었다. 미국은 60년 동안 쿠바의 경제와 정치에 막대한 영향력을 휘둘러왔다. 중남미는 이미 사실상 미국의 식민지로 떨어져 미국의 힘의 원천이 되었다. ‘또 하나의 아메리카’ 전체를 사실상 손에 넣은 ‘유일한 아메리카’ 미국이 식료품과 의료용품을 제외한 모든 물품을 금수조치해 압박했지만, 피델은 오히려 소련 공산당 흐루쇼프 정부와 조약을 맺으며 관계를 강화했다. 미국의 턱밑에 있는 섬이 미국의 최대 적 소련과 조약을 맺은 일은 쿠바가 미국에 심각한 근심거리이자 골칫거리임을 입증했다. 이제 쿠바는 미소 냉전 시대에서 아주 중요한 플레이어가 되었다. CIA는 이미 쿠바 혁명 이후 바티스타와 함께 미국으로 망명한 쿠바인들을 모아 혁명 정부를 전복한 뒤 미국에 우호적인 비공산주의 정부를 수립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2506여단을 창설했고 1,300만 달러를 들여 군대를 1,400여 명까지 늘렸다. 필리부스테로들을 투입해 소요 사태를 벌인 후 미국인의 안전과 이익을 지킨다는 명분을 내밀고 미군을 상륙시켜 미군정을 수립해 꼭두각시 정권을 세워 통치하는 수법은 미국이 오랫동안 사용해 온 전통적인 수법이었다. CIA는 과테말라에 훈련 캠프를 세워 이들을 강습 상륙과 게릴라전을 훈련하고 작전을 조직하기 시작했다. 이 여단에는 약 60명의 미 공군 조종사들과 전투기도 파견되었다. 이 반혁명위원회를 호세 카르도나가 이끌었다. CIA의 작전이었으므로 모든 문서마다 ‘극비’ 직인이 찍혔다.
1960년 11월 당선자 신분의 존 F. 케네디는 쿠바 망명자들을 쿠바 침공을 위해 훈련하고 있다는 CIA의 계획을 보고받았다. 취임식을 준비하고 있던 그도 아이젠하워와 마찬가지로 피델 카스트로는 소련의 하수인으로 라틴아메리카 전역의 안보를 위협하는 존재라고 결론지었다. 쿠바는 라틴아메리카 국가들로부터 고립되어야 했고 이 국가들이 쿠바와 외교관계를 단절하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었다. 미국은 또 모든 NATO 국가가 미국의 쿠바에 대한 무역 금지 조치를 따르도록 요구하고 있었고 그럼으로써 쿠바에 대한 지원 부담을 소련에 전적으로 떠안게 할 셈이었다. 케네디 정부는 피델 정권이 전복되기 전까지 미국은 쿠바에 아무런 안전도 보장해 주지 않을 것이고 미국 내 쿠바 이민자들을 주축으로 과테말라, 파나마 등에서 계속해서 ‘자유 투사들’로 이루어진 군사 조직을 창설해 쿠바 정부를 전복할 방법을 선택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상황에 따라서는 쿠바에서 반혁명 반란을 조직할 수도 있고, 이에 호응해 플로리다에서 쿠바 이민자들이 배를 타고 쿠바에 상륙하여 그들이 ‘자유 정부’ 구성을 뒷받침할 수도 있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쿠바 혁명 정부에 타협할 제안도 하지 않을 것이고 쿠바와 미국의 관계를 개선할 방안을 모색할 의사도 없다고 말했다. 취임식을 마치고 집무실에 돌아온 케네디가 아이젠하워의 CIA 작전을 승인했다. 아이젠하워의 작전을 물려받기는 했지만, 그는 작전의 개념을 약간 수정했다. 미국이 쿠바에 확실히 드러나게 개입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미국이 쿠바를 침공했다는 것이 확실한 사실로 드러나면 소련은 전쟁 행위로 간주해 미국에 보복 공격할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었다. CIA는 케네디에게 이 작전은 쿠바에서 혁명을 반대하는 대규모 봉기를 일으킨 다음 혁명군이 했던 것처럼 2506 여단 대원들이 산속으로 들어가 장기적인 게릴라전을 벌여 정권을 전복할 것이므로 미국의 개입을 비밀로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갓 취임한 존 F. 케네디의 고문들과 미 국무부의 일부는 카스트로가 미국에 실질적인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온건파도 있었다. 그러나 젊은 신임 대통령은 쿠바 지도자를 제거하는 작전을 지휘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소련과 중국에, 또 자신을 미덥지 않게 여기는 미국인들에게 자신이 냉전에서 승리할 수 있는 대통령이라는 면모를 보여주고자 했다. 스스로 강경 매파가 된 케네디가 취임 직후인 1961년 2월 침공 계획을 승인했다.
공수 1개 대대와 보병 5개 대대로 구성된 2506 여단이 쿠바섬에 상륙한 뒤 곧장 섬을 가로질러 아바나 인근 미국인들의 거점도시 마탄사스로 진격해 방어 진지를 구축한 뒤 플로리다에서 출발한 임시 정부 지도자들이 합류해 임시 정부를 세운다는 것이 계획의 뼈대였다. 복어의 바다라는 피그만이 CIA가 선택한 상륙지점이었다. 대도시에서 떨어져 사람도 마을도 없는 외딴 늪지대이니 1,400명의 침략군이 달빛마저도 없는 밤에 침투하면 아무런 저항 없이 해안에 상륙할 수 있을 것이었다. 조용히 상륙하고 나서 곧장 산으로 들어가 게릴라로 위장하면 미국의 지문은 남지 않을 것이었다. 케네디 국가안보실에서 카스트로 정부를 전복한 뒤 친미 정권을 내세우는 계획의 성공 여부는 침투 작전의 성공 여부가 결정할 것은 아니었다. 침투 단계에서 걱정될 것은 없었고, 산속에 꽈리를 튼 침략자들에게 얼마나 많은 쿠바인을 합류시키느냐에 이 계획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 판단했다. 케네디의 회의실에서는 침투 작전부터 실패해 미국의 개입이 명백하게 드러나리라 의심하는 참석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피그만에서 침략군들이 게릴라로 위장해 작전을 전개할 근거지가 될 큰 산까지는 자그마치 130km나 떨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