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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글이 May 09. 2024

수영장


  몽환적이고 몽글몽글한 물속을 헤엄치는 모습을 찍은 사진을 본 적이 있다. 햇빛에 따라 반짝이는 물결이 수영장 바닥에 자국을 만들고 자유로운 움직임이 기억에 남았다.      

  ‘풀장 안에 담긴 물은 빛을 받아 찬란하게 반짝거렸다. 물의 표면은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에 물결치고, 잠들어 있던 풀장 바닥은 물결에 따라 그림자를 만들어 냈다. 나는 두 눈을 살며시 감았다. 출렁이는 그림자들이 눈앞에 펼쳐지고 움직임에 따라 점점 바닥으로 빠져드는 듯했다.’     

  전시에서 본 수영장 사진을 생각하면서 2018년 ‘어항에 잠긴 일상’ 소설을 과제로 제출했다. 학점은 C+이 나왔지만, 뇌 어딘가에 남아있던 장면이 글로 해소된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직접 사진 속 인물이 되었다.      


 키리 호텔 한가운데에 직사각형의 풀장이 있었다. 치앙마이의 더운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물결과 깨끗함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 흘러가는 수영장 속을 천천히 걸어 다녔다. 굴절되어 더 커진 다리와 그에 비해 작은 발 그리고 스펙트럼처럼 오묘한 빛감들이 일렁이었다. 수영을 못해 온전히 물속에 몸을 맡기지 못했지만 뭉실뭉실한 물의 점성을 느끼며 바닥에 발을 맞닿았다. 균형에서 살짝 벗어나도 넘어지지 않는 안정감 속에서 점점 온도가 올라갔다.      


 풀장을 중심으로 둘러싸인 호텔 건물 2층에 동생이 베란다를 열고 손을 흔들었다. 같이 내려가자고 했는데 말을 전혀 듣지 않는 동생 때문에 혼자 물장구를 치고 있었다. 수십 번 생각이 바뀌고 말이 바뀌어 종잡을 수 없는 동생을 향해서 내려오라고 손짓을 했다. 망설이는 모습을 보면 답답함이 밀려와 이내 짜증으로 바뀌었지만 미지근한 물 온도 덕분에 적당한 기분으로 몇 분을 기다렸다. 수영복으로 갈아입은 동생의 두 손을 잡으며 서로가 지지대가 된 상태로 번갈아 가면서 수영을 했다.      


 우리는 잠깐의 물놀이 후 나무 밑에서 멍 때렸다. 1.2미터 풀장 바로 옆에는 앉아 있어도 몸이 물 밖으로 나오는 작은 풀장이 연결되어 있었다. 그 가운데에는 치앙마이 길거리에서 자주 보이는 하얀 꽃이 활짝 핀 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달콤한 향이 날 것 같은 나무 아래, 물이 넘쳐 배수구로 흘러가는 물소리를 들으며 잔잔한 오후 시간을 보냈다. 조금씩 배고픔이 밀려오는 4시쯤 낯선 공간에서 특별한 생각 없이 시간을 보내는 순간이 호텔을 떠나는 아침에  한 번 더 풀장에 들어가고 싶다는 아쉬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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