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를 보다 보면 웃음이 먼저 나온다. 진지하게 보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는데도 자꾸 피식하게 된다.
호랑이는 무섭기보다 멍해 보이고, 까치는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고, 일부러 웃기려고 그린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고 완전히 장난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그래서 민화의 웃음은 좀 애매하다. 크게 웃기지도 않는데, 웃지 않기도 어려운 상태. 배꼽을 잡게 만들지는 않지만,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 있는 채로 오래 남는다. 민화 속 웃음은 늘 그 중간쯤에 걸려 있다.
민화가 웃긴 이유는 조형이 서툴러서도, 현실을 못 그려서도 아니다. 그 웃음은 해학에 가깝다. 해학은 비웃음이 아니다. 대상을 깎아내리지 않고, 그렇다고 떠받들지도 않는 태도다. 너무 심각해지지 않기 위해 한 발 물러선 시선, 다 아는 척하지 않기 위해 일부러 힘을 빼놓은 얼굴.
민화 속 호랑이가 웃긴 이유도 거기에 있다. 힘은 센데 표정이 풀려 있고, 위엄은 있는데 자세가 영 어색하다. 무섭게 굴 수 있는데 굳이 그러지 않는 느낌. 권위를 박살 내기보다는, 살짝 느슨하게 풀어 놓은 상태다. 생각해보면 그 시대 사람들에게 웃음은 여유의 산물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크다. 삶이 넉넉해서 웃은 게 아니라, 너무 팍팍해서 웃지 않으면 버티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민화의 웃음은 즐거워서 터지는 웃음이라기보다, 이렇게라도 웃어야 하루가 넘어가는 웃음에 가깝다. 그래서 민화의 웃음은 조금 눌려 있고, 조금 비틀려 있다. 크지는 않지만 질기고, 가볍지는 않지만 오래 간다. 누군가를 조롱하지도 않고, 세상을 정면으로 비난하지도 않는다. 대신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이게 쉽지는 않지. 그래도 너무 심각해지지는 말자고.
민화 속 인물들과 동물들은 그걸 알고 있는 얼굴이다. 눈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고, 입은 완전히 닫혀 있지도, 활짝 웃고 있지도 않다. 완벽하게 행복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무너지지도 않은 표정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민화를 보며 웃다가, 문득 그 웃음의 출처를 생각하게 된다. 내가 지금 웃고 있는 건 정말 즐거워서일까, 아니면 그냥 오늘을 넘기고 있어서일까.
민화는 그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 대신 웃음 하나를 슬쩍 놓고, 알아서 생각해보라는 얼굴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게 꽤 위로가 된다. 웃음이 꼭 기쁨에서만 나오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민화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가끔은 버티고 있다는 증거로도 웃을 수 있다는 걸. 그래서 민화의 웃음은 우리를 가볍게 만들지는 않지만, 무너지지 않게는 해준다. 오늘도 별일 없이 웃고 있는 나 자신을, 너무 나쁘게 보지 않게 만들어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