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조금 더 작은 집으로 오게 됐다. 전보다 공간은 줄었고, 물건들은 조금 더 가까워졌고, 동선은 서로를 더 자주 스치게 만들었다. 나는 아이에게 말했다. 나중에 우리 다시 큰 집으로 이사가자고. 아이가 불편하지 않게, 더 넓게 뛰어놀 수 있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아이도 내게 작은 집이 싫다고 했다. 나는 왜 싫냐고 물었다.
아이는 잠깐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꼭꼭 숨어라를 할 수가 없어서 싫어.”
나는 그 말을 듣고 웃음이 났다. 집의 크기를 방 개수나 평수가 아니라, 숨을 수 있는 자리의 개수로 설명하는 그 마음이 귀여워서.
아이에게 집은 사는 곳이기 전에 노는 곳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말해줬다. 그럼 나중에 큰 집 가서 꼭꼭 숨어라 하자고. 아이는 금방 기뻐할 줄 알았다. 그런데 아이는 잠시 나를 가만히 보더니, 생각보다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가 이 집이 좋으면 이사 가지 않아도 괜찮아.”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잠시 멈췄다. 아이의 말은 짧았지만, 그 안에는 자기 불편보다 엄마 마음을 먼저 헤아리는 마음이 들어 있었다. 꼭꼭 숨어라를 못 하는 아쉬움보다, 엄마가 이 집을 좋아하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뜻이었다.
나는 그날 알았다. 아이는 집의 크기를 놀이로 말하지만, 사랑의 크기는 이미 알고 있다는 걸. 그리고 집이라는 건, 얼마나 넓은지가 아니라 누구의 마음이 머무는지로 정해진다는 것도.
이 작은 집 안에는 이전보다 더 많은 것들이 들어왔다. 서로의 목소리가 더 또렷하게 닿고, 웃음이 더 쉽게 번지고, 발소리 하나에도 서로를 금방 알아챈다. 공간은 줄었지만, 마음이 오가는 길은 오히려 넓어진 것 같았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는, 이미 생각보다 넓은 집에 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꼭꼭 숨어라를 할 수 있는 방은 부족할지 몰라도, 서로를 찾으면 반드시 만날 수 있는 집. 그리고 그 안에서, 아이는 여전히 나를 먼저 생각해 주고, 나는 그 마음에 다시 한 번 머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