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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껏 비를 맞으리!!!

양재천을 걸으며 < Life 레시피 >

by 이숙재

미용실에서 펌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양재천에서 한가롭게 산책을 하고 있는 청둥오리들을 보면서 펌도 새로 했겠다 한껏 기분이 좋아 콧노래도 부를 참이었다.

그런데 왠 걸 ㅠ.

갑자기 파란 하늘이 날벼락이라도 맞았는지 소낙비가 우두둑우두둑 심술궂게 내리는 게 아닌가!

피할 새도 없이(피하지도 못하지만 ㅠ) 비는 세차게 내 머리와 내 어깨를 치고 내 온몸을 적시기 시작했다.

집에서 나갈 때는 분명 비가 올 것 같지 않아 우산을 챙기지 않았는데 ㅠㅠㅠ. 분명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까지 두둥실 떠다니는 예쁜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우산은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내 잘못이니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ㅠㅠㅠ.




몇 년 전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피하지 못하고 그냥 속수무책으로 비를 쫄딱 맞으며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정도로 울면서 집으로 돌아온 적이 있다.

그날도 우산 없이 양재천을 걷고 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세찬 비가 우두둑 우두둑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선 몸부터 피하기 위해 둘레둘레 둘러보았다.

저 멀리 정자가 하나 눈에 띄었다.

‘저곳으로 피하자!’라고 생각하며 두 다리를 재빠르게 움직여 뛰려고 했다.

그런데 두 다리가 아니 두 무릎이 마음처럼 움직여 주질 않았다.

순간 당황스러웠다.

‘어, 왜 안 뛰어지지!’라는 생각과 ‘빨리 뛰어!’라고 내 두 다리를 채찍질하듯이 재빠르게 움직여 보았다.

중고등학교 시절 달리기를 하도 잘해 체육 선생님에게 칭찬까지 받았던 내 두 다리가 이제는 뛰어지지를 않는다.

‘어? 안 뛰어지네 ……’

‘내 다리가 뛰지를 못해 ㅠㅠㅠ ……’라는 생각과 다시는 뛰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과 절망감에 그만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싶었다.


세찬 비를 맞으며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그대로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뛰지 못하는 두 다리를 원망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교통사고 난 그날을 원망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내 인생에서 내 잘못도 아닌 다른 사람의 잘못으로 인해 두 다리가 망가진 것을 그때는 나 자신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눈물을 주룩주룩 쏟아내었다.




나는 6년 전에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

나도 모를 내 인생이 다 무너지는 줄만 알았다.

한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었고, 퇴원해서도 집안에서 휠체어 생활을 했다. 그때는 영원히 휠체어 생활을 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에 온통 내 마음과 내 온 세포가 잠식당하고 있었다. 가족들에게 짐이 될까 봐 두려운 나머지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했고, 내 고통으로 날마다 가족들에게 온갖 짜증과 신경질을 부렸다. 그래도 묵묵히 내 옆에서 기도하며 지켜준 사랑하는 나의 남편과 우리 딸에게 지금도 한없이 고맙다.

시간이 지나며 휠체어에서 벗어나 목발을 짚고 일어서게 되었고 차츰차츰 걷게 되었다. 아직은 정상적인 걸음걸이도 아니고 계단이나 비탈길 또한 내게는 낯설고 험난한 길이다. 쪼그리고 앉는 거며 뛰는 것 모두 이제 내게는 불가능한 일 중에 하나가 되었다.




그날과 똑같은 상황 –우산은 없고 비는 세차게 내리쏟고- 에서 그날과 똑같이 울고 싶지가 않았다. 그때보다는 내 마음이 단단해지기도 했지만, 나 스스로 자존감을 떨어뜨리고 싶지 않은 강한 자존심이 나를 울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그때 순간 대학 시절 친구랑 갑자기 세차게 쏟아지는 비를 흠뻑 맞으며 이문세의 노래를 미친 듯이 부르던 기억이 났다. 그날도 마침 둘이 학교 근처에서 펌을 하고 학교로 돌아가는데 비가 갑자기 세차게 쏟아졌고 곱게 드라이된 머리카락이 비에 젖어 다시 뽀글대던 서로의 모습을 보면서 깔깔대던 일이 기억났다.


‘그래! 그때처럼 비를 맞으며 걸어보는 거야!’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 벌써 타임머신을 타고 대학 시절의 내가 되어 콧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고, 두 팔을 벌려 세차게 내리는 비를 시원하게 맞아주었다.

‘이 나이에 나처럼 비 맞는 사람 있으면 나와봐!’라는 웃픈 생각과 동시에 남들이야 나를 미친○ 취급한다 해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똑같은 양재천 길을, 똑같은 상황에서 전혀 다른 생각을 하는 나를 바라보면서 왠지 모를 흐뭇함과 대견함이 나를 하루 종일 행복하게 해 주었다.


뛰지 못하는 내 두 다리를, 교통사고 난 그날을 탓하기보다는,

뛰지 못하는 그 한계점에서 “나는 뛸 수 없다!”는 나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

“뛰지 못하면 안 뛰면 되지, 뭐!”라고 스스로 위로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 내가 행복해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것.


그러면 되는 것 아닐까!

그래도 어느 누구의 도움 없이 걸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행복하다, 그러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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