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発 불안의 시대를 살며, 도쿄가 또 한 번의 오늘을 약속하는 법
코로나 때문에, 불매운동을 하느라 잊어버렸는지 모르지만, 2020년 도쿄는 좀 곤란했다. 1964년에 이어 도쿄에서의 두 번째 올림픽을 기대하던 세월이 무색하게, 코로나란 변수는 그야말로 상상 이상이었다. 이동이 불편해진 가운데 해외 선수들을 초청해 경기를 벌인다는 건, 애지감치 시작부터 걸림돌이 치이는 이야기였고, 무엇보다 코로나는 그칠 줄을 몰랐다. 두 번의 연기를 하고, 무관중 논의가 이뤄지고, 최선의 차선도 아닌, 최악을 면하는 차악의 올림픽이라도 치르려 했지만, 뭘 어쩌려고 도쿄 요요기 국립 체육관(東京代々木国立競技場) 자리엔 또 한 번의 올림픽을 한다고 국립 경기장이 새단장을 마쳐놓은 상태다. 단 한 번의 행사를 위해 수천 억이나 소요된 건축이란, 무얼 위해 문을 열어야 할까. 그 여름, 그 행사의 중심이었을 그 건축은 새삼 갈 길을 묻게한다. 무엇보다 누구도 별로 원하지 않았다는 것. 대부분의 국가들은 코로나 치닥거리를 하느라 다른 정신이 없었고, 일본에선 적지 않은 시민들이 개최 반대의 피켓을 들었다. 인류의 화합과 내일의 희망을 이야기하던 100년 역사의 그 올림픽은 그러니까 그 날, 시효를 다했는지 모른다.
그런 가운데 아마도 가장 곤혹스러웠을, 곤란했을 것 같은 건축가 쿠마 켄고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저는 올림픽이 아닌 그 후를 생각했습니다." 그는 결과적으로 누구도 원하지 않았던 2020 도쿄 올림픽의 메인 스타디움을 설계한 인물이다. 모두가 당장 내일에 목마르던 시절, 올림픽이 아닌, 그 후를 생각하며 그럼에도 다시 한 번 경기장을 만들었다. 세상이 입을 모아 실패를 말하는 가운데, 노심초사의 계절 한 복판에서 또 하나의 건축을 완성한다는 건 어떤 맘이었을까. 그런 건축을 설계한다는 건 과연 어떤 감각의 작업이었을까.
쿠마는 이전 올림픽, 1964년 단게 겐조의 건축을 최대한 흐트러뜨리지 않는 선에서 개수를 했다. ‘낮은 건축’을 지향하며 마을과 이어지는 수평의 지형을 모토로, ‘마을과 하나가 되는 스타디움’을 꿈꿨다. 바로 이게, 팬데믹 난국 쿠마가 떠올린 경기장의 콘셉트이다. 올림픽은 늘, 끝이난 후 시설의 재활용이랄지, 마을의 정체와 같이 ‘그 후’의 후유증이 불거지는데, 올림픽이 아닌 ‘그 후’를 살아가는 입장에서, 이건 어쩌면 실패가 아니었을까. 모두가 모른 척을 했지만, 보고도 못 본 척을 했지만, 쿠마 켄고에게는 다, 계획이 있었다.
"건축가는 사회의 OS를 만드는 일을 합니다. 인간의 생활, 사회의 기본적인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건축가의 역할입니다. 지금은 이전까지 좇아왔던 '상자의 OS'가 부정되고, 우리에겐 새로운 OS를 만들 의무가 있습니다. 앞으로는 여러 프로그램이 상상도 하지 못할 형태로 변화할 것이고, 그건 저의 상상도 넘어설 것이기 때문에, 그에 도전하고 싶습니다."
-그래픽 디자이너 니시자와 아키히로와 '애프터 코로나의 디자인 건축'을 말하며
건축가 쿠마 켄고는 이제는 국내에서도 알려진 이름이 되었지만, 그를 처음 알게 된 건 2020 올림픽이 아직은 설렘던, 코로나가 일상을 침투하기 이전의 일이었다. 당시의 도쿄란 100년 만의 재개발이 한창이라 도심 곳곳이 연일 공사중이었고, 거리는 변하고, 백년 노포도 문을 닫으며 시대의 교차를 느끼게 했다. 뿐만 아니라 2019년 5월엔, 연호마저 헤세이平成에서 레이와令和로 바뀌었으니, 도쿄에게 2020이란 분명 하나의 분기점, 시대가 변하고, 세대가 교차하는그야말로 ‘100년만의 타이밍’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난 그 순간 도쿄가 지금 도시가 살아가는 시간을 보여주고 있다고도 생각했다. 보이지 않는 오늘과 어제와 내일의 흐름을 마치 변화하는 거리와 시대로 가시화해 드러내고 있는 것 같다고. 그리고 이는 곧, 2020년의 도쿄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공존하고 있던 시기라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전통을 일상처럼 살고, 대대로 이어오는 노포가 수두룩한 도시의 왜인지 대대적인 재개발. 이건, 그냥 사건이었다.
당연스레 ‘뉴’스는 넘쳐났다. 공사가 많아지니 건축 현장도 늘어났다. 내가 쿠마를 마주한 건 그렇게 변화하는 일상의 어느 문턱에서이다. 마치 어느 계절의 도래처럼 매우 일상적으로, 우연한 사건과도 같이 그를 알게됐다. 무언가 새롭다 싶어 클릭해보면 거의 다 쿠마 켄고였고, 재밌겠다 싶으면, 죄다 그가 하고 있거나 이미 완성한 건축의 이야기였다. '국립경기장'을 비롯해, 야마노테센(山手線) 역사상 39년 만의 신역(新駅) '타카나와 게이트웨이 역사(高輪 ゲートウェイ 駅舎)'와 아시아에서는 세 번째인 스타벅스의 로스터리 매장 나카메구로(中目黒) 지점과 일본의 첫 상륙한 교토의 '에이스 호텔', 그리고 ‘하루키 라이브러리’란 애칭으로 더 유명해진, 그의 모교 와세다 대학에 오픈한 ‘와세다 대학 국제 번역관 무라카미 하루키 라이브러리’와 최근엔 아웃도어 브랜드 ‘스노우피크’의 대형 스파 시설까지. 이게 모두 다 쿠마 켄고의 작품이다.
1년은 365일 정해져있는데, 어떻게 이만큼의 다작이 가능할까. 코로나 문턱을 지나며 건축은 물론 일상 자체가 얼어붙었는데, 무슨 기적같은 일일까. 하지만 쿠마의 건축은 재생, 신축이 아닌 리뉴얼, 그리고 다시 일어나는 건축. 애초 실패를 머금고 있다. 그러니까 실패에 대응이 가능하다. 위기에 당황하지 않는다. 그저, 그 후를 살아간다. 그렇게 그의 건축에서 위기란, 그저 또 하나의 내일을 위한 그냥 일상인 것이다.
“정말 필요한 건 근대 건축의 ‘행복의 포지티브한 건축사'에서 벗어나 위기를 극복해온 '비극의 건축사'를 직시하는 일입니다.” 2013년 쓰여진 그의 저서 ‘작은 건축’에서 쿠마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일본에선 311 대지진 그리고 ‘그 후’가 그랬던 것처럼, 지금 우리에겐 코로나 ‘그 후’의 일상, 그리고 건축이 아마, 그럴 것이다. 실패를 경험한 인생 만큼 단단한 시간은 없고, 그건 아마 건축도 마찬가지이다. 쿠마는 그런 이유로 한 한번 만들고 나면 되돌릴 수 없는 근대 건축의 상징, '강함의 콘크리트'가 아닌, 세월에 따라 고치거나 해체할 수 있는, 그러니까 되돌릴 수 있는 '유연함의 강함', 나무를 활용한다. 코로나 이후 우린 자연의 소중함을 새삼 깨우쳤다는 이야기도 많이 했는데, 이는 또 무슨 우연의 조우일까. 다만 이야기할 수 있는 건, 그렇게 우연한 건축, 즉 ’작은 건축’이 지금 태어나고 있다는, 그나마 다행인 사실이다.
그렇다면 작은 건축, 실패를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시절의 건축이란 어떤 그림일까. 쿠마가 근래 만들어온 작품의 목록을 보면 수 십 억이 넘는 규모의 것들이 수두룩해, 당연히 여기서 ‘작은’이란 결코 크기와 규모의 단위는 아닐 것이다. 오히려 어떤 태도, 완성이 아닌 과정 혹은 시작, 건축을 이루는 최소 단위의 얼개로서의 작음을, 쿠마는 이야기한다. “작은 건축이란 커다란 건축의 축소판이 아니고, 인간의 손이 닿을 수 있는, 한 사람이 어렵지 않게 만질 수 있는 단위의 건축을 말한다.” 역시나 ‘작은 건축’ 12 페이지에 적혀있는 글귀이다. 가령 아무리 수 만 평방 미터의 대규모 건축이라 할지라도, 그를 직조하는 방식, 쌓아올리는 시작이 작음의 단위라면 그건 곧 작은 건축으로 수렴된다. 작기 때문에 고치고 개선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작음’이 건축의 시작부터 끝까지 계속 함께하는 건축을 말한다. 그는 ‘작음’의 활용해 대해서, 이렇게 설명했다.
"작다는 건 단지 스케일의 문제가 아닙니다. 디테일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상태로 나아가는 일이고, 앞으로의 건축은 보다 사람과 밀접한 것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대표적으로 2019년작 ‘국립경기장’을 말할 수 있다. 코로나 탓에 가장 많은 비난을 받은 그의 ‘국립경기장’은 주변 마을을 압도하지 않도록 낮은 높이로 설계되었다. 조금씩 하늘을 향해 뻗어가는 지붕을 통해 경기장과 마을의 이어짐을 의도했고, 그렇게 ‘일체화’를 노렸다. 이는 그간 규모의 건축들이 행해왔던 '마을을 도외시'를 지양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국내에선 거의 이야기되지 않았지만, 경기장의 관중석은 모두 일본 47개 도도부현에서 조달해온 목재를 사용해 제작되었다. 지역에서 난 재료를 사용해 지역의 건축을 만든다는 것, 그 역시 작은 건축의 조건, 쿠마 건축의 또 다른 모토이기도 하다. 더불어 수 만 석의 자리는 굳이 서로 다른 색으로 칠해졌는데, 일괄적인 단순한 도색이 아닌 내일을 고려한 다양성의 채색이었다. 고작 색깔의 문제이지만, 차이를 갖는다는 건 단색의 오늘보단 불투명한 내일에 보다 대응이 가능하다.
"올림픽 기간에는 당연히 가득 찰 거라 생각했지만 그 후엔 사람을 들이지 않는 이벤트도 있을 거고, 그럴 때에도 쓸쓸하게 느껴지지 않는 디자인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중략) 인원이 적은 행사에서 의자가 전부 파랑이거나 빨강이면 매우 쓸쓸해 보이잖아요. 국립 경기장의 경우 소수의 행사에도 흥이나 즐거움이 느껴질 수 있도록 하고싶었습니다."
이를 5만평 건축, 그 안의 작음. 경기장 관중석의 ‘그 후’를 고려한 설계라고, 이제는 말해볼 수 있을까.
실제 그 관중석은 일본 내에서 좀 화제가 되었다. 코로나로 인해 무관중 방치이 확정된 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의외로 괜찮은, ‘무관중 맞아?’ ‘쿠마는 예언가인가?와 같은 반응들이 나왔던 것이다. 말하자면 쿠마의 경기장은 올림픽 경기의 무관중 방침이 결정되었음에도, 텅 비어보이지 않았다. 관중이 허용되었던 개/폐막식을 제외하고 육상 경기가 열리던 날에도, 아무도 입장을 허락받지 않았던 관중석은 왜인지 꽥 차있는 것 같았다. 최소한 비어있는 그림이 아니었다. 물론 쿠마가 그 컬러 작업을 할 당시 무관중 방침은 정해지지 않았던 시기라, 당연히 그를 의도했을 리는 업다. 할 수가 없었다. 말할 수 있는 건코로나와 올림픽 사이, 쿠마와 올림픽 행정을 관리하던 도쿄도 사이의 어떤 작용, 그 결과라 하겠지만, 이런 걸 우린 ‘우연의 건축’이라 불러볼 수 있을까.
사람의 환시, 착각을 활용한 이 관중석의 도색 방법은 먼저 지붕이 뻥 뚫린 구조를 활용한다. 숲과 같이 천장에서 내리비치는 빛을 고려한 디자인이라고 쿠마는 이야기했다. 숲속 나뭇잎에 빛이 떨어지는 이미지를 떠올렸고, 푹신함을 연출하기 위해 그라데이션과 모자이크 식으로 색을 더하는 일본의 전통 기법을 소환했다.
“램덤함을 어떻게 만들까 고민하다 구체적으로는 먼저 다섯 가지 색을 정했고, 지면에서 가까운 곳은 바닥색에 맞추어 황토빛을, 하늘로 향하는 상부에 가까워질 수록 하양을 많이 쓰면서 그 사이 초록과 베이지 계열의 3개 색을 섞어 만들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도쿄의 올림픽 경기장은 무관중에도 외로워보이지 않았다. 내일의 건축이란 아마도 예측 불가능한 사건 또한 품어내는 가장 자연스러운 노력이 아닐지 모르겠다. 보다 자연 곁에 다가서는, 그렇게 그 안에 머무르는. 작은 건축의 강함이란, 즉 이렇게 보다 품어내는 힘에서 나온다.
In Kuma's designs for the Japan National Stadium, Taichi(쿠마의 아들이자 건축가 쿠마 타이치) points out a subtle but inventive detail: each seat is a different color so that it always makes the stadium look full. "It's under construction so it's empty but it's almost like there's a human right there, all the colors. 'Oh my God, it looks like there's a full stadium,' - exactly,"
-뉴욕 지역의 뉴스 미디어 abc7 '올림픽 스태디움 너머의 보다 깊은 의미' 중에서
2022년 6월, 코로나 쇼크도 이제는 좀 완화된 여름, 쿠마는 자신이 설계한 ‘국립경기장’에서 좀 색다른 행사를 가졌다. 바로, 근래 재택 근무가 늘어나며 수요가 증가한다는 ‘집 안의 집’, ‘코야(小屋)’ 프로젝트를 알리는 일이었다. 그는 이를 가리켜 ‘가장 큰 상자에서 가장 작은 상자를 시작한다’는 말로 표현했다. 상자(箱)는 쿠마가 건축에 있어 가장 최소의 단위로 사용하는 말이다. ‘코야, 小屋’는 말 그대로 작은 집이다.
그러고 보면 이 날의 행사는 올림픽 당시 무성하게 일었던 잡음도 조금은 수그러든 시절, 그 때는 하지 못했던 작은 건축으로서의 ‘국립 경기장’을 다시금 표명한, 자리는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세상에 어떤 이야기는 이해를 위한 타이밍을 필요로 하고, 그렇게 억울함은 해명의 기회를 갖는다. 2020년 커다란 그 상자의 건축은 그렇게 시간이 흘러, 2022년 가장 작은 상자의 건축으로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채운다. 다행이게도.
아무튼, ‘코야’는 본래 집 안의 작업실이나 창고와 같은 용도로 제작되었던 건축이다. 세월이 지나서는, 특히 코로나 이후엔 변화하는 일상에 맞춰 그 쓰임새도 달라진다. 오카야마의 ‘우에다판금점(植田板金店)’은 50년간 코야를 제작해온 전문 제작소이고, 쿠마와는 2012년부터 ‘코야’ 작업을 함께하고 있다. 말하자면 수백억짜리 ‘커다란 건축’을 하는 쿠마는 그와 정반대 자리에서 수 백 만엔 짜리 ‘작은 건축’에도 열심인 것이다.
한 예로 얼마 전에는 ‘쿠마 켄고가 설계한 집을 단돈 350만 엔에 살 수 있다’는 제목의 기사가 떴다. 세계적인 건축가가 나의 집을 지어준다는 이야기. 이게 웬 횡재냐 싶은데, 쿠마에겐 별로 그렇지가 않다. 구매자 입장에서는 더는 없을 찬스라 생각하게 되지만, 그에게 ‘코야’란 조금 저렴한 건축과 같은 의미를 갖지 않는다. 그는 ‘코야’를 건축의 시작, 일상의 원형이라 보고있기 때문이다.
“생활 스타일에 따라 이동이 가능하고 수정도 가능한 유기적 주거 공간으로서 코야는 존재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코야’는 그가 이야기하는 ‘작은 건축’의 가장 가까운 예시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쿠마 켄고'라는’ 커다란 건축’을 이해하는 가장 작은 단위로서의 건축으로 읽힌다. 참고로 쿠마는, 또 하나의 ‘코야’라 할 수 있는, ‘셰어하우스’를 도쿄 내 네 곳에서 운영하는 ‘집 주인’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규모가 큰 건축이 영향력이 있다고 이야기했지만, 실은 작은 건축이 보다 큰 영향을 가질 수 있는 부분이 많아요. 작은 것들이 세상에 많이 존재하고, 그런 게 리피트되고 움직이면서, 그런 것을 통해 세상에 큰 영향(변화)을 가져오는 게, 오히려 세상을 더 좋은 방향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큰 건축이란, 으리으리하고 보기에 멋지지만, 굳어버리면 되돌릴 수 없는 콘크리트와 같이 융통성이 부재하다. 반면 작음의 건축이란 작기 때문에 수정도, 한번의 해체와 재조립도 즉, ‘다시 시작’이 가능하다. 쿠마는 이를 데스크톱 PC가 종국엔 손바닥만한 스마트폰으로 대체한 것과 유사하다고도 이야기했다. 어쩌면 정말 미래란 크기나 규모나 성질과 역할의 범위를 망라해 ‘작음의 시대’가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세상은 점점 더 불확실성을 드러내고, 미래란 더욱 더 알 수 없는 시제가 되어가고 있으니까. 다시 시작하는 건축에 불확실성에 대응할 유연함이란, 분명 더욱 필요한 가치가 되어간다.
그리고 쿠마는 캠핑 브랜드 ‘스노우피크’와도 또 하나의 ‘코야’, ‘쥬바코(住箱)’도 제작한다. 캠핑이란 보다 특정한 용도에 맞춰 제작되는 ‘코야’이지만, 캠핑이 장소에 얽매이지 않는만큼 보다 확장하는 의미를 갖는다. 현재까지 일본 내 지금까지 모두 10개의 ‘쥬바코’가 건설되었다. 그리고 쿠마는 이를 ‘주택에 대한 실험’이라 말한다. 합판을 기본 재료로 하는 ‘쥬바코’는 간촐하고 가벼운 구조 때문에, 다양한 변형, 변주가 가능하다는 의미에서 공간의 확장, 즉 주택의 실험이다.
일견, 미국의 트레일러 하우스와 유사하게 보이기도 하는데, 실은 일본 전통의 가옥을 닮아있고, 그렇게 집의 밖, 그러니까 창밖 풍경 까지 끌어들이며, 파격적이고 동시에 실험적인 집을 완성해낸다. 대청 마루와 햇빛을 가리는 ‘히자시(日差し)’가 강조된 이 작은 주택은, 언뜻 밖과 안이 뒤집힌 설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쿠마가 말하길 '쥬바코’는 ‘가장 자유로운 집.’ 그건 곧 보다 자연 곁에 돌아가는 건축이고, “앞으로의 건축은 인간을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게 하기 위함이어야 한다"고 말했던 쿠마의 오래 전 명언이 떠오른다. 건축이 새로운 집을 찾아가는 시절, 작은 건축이란 그렇게 가장 자연스러운 건축이기도 한 것이다.
“근래엔 셰어하우스가 유행이지만, 새로운 인간 관계를 건축을 통해 만들어볼 수 있다는 점이 재밌다 느껴요. 스스로 인간 관계를 디자인 할 수 있는 부분도 좋다고 느끼죠. '스노우파크’와의 ‘쥬바코’는 (집의) 내부라는 개념을 깨뜨리고, 트레일러 주변의 풀밭까지 우리가 디자인한다는 감각으로 지어지는 집입니다. 그동안 '상자'의 안에만 몰두했던 건축은 앞으로 상자의 밖, 자연과의 관계를 보다 연구해야 할 필요가 있어요.”
2019년 쿠마 켄고가 ‘스노우 피크’와 함께 만든 ‘쥬바코’는 높이 3m의 6.6 평 크기 이동형 주택이다. 반면 같은 해 완공된 ‘도쿄국립경기장’은 건축 면적만 7만 평에 달한다. 말하자면 초고층 빌딩의 작은 사무실 하나로도 비교가 버거울 만큼, 스케일이 서로 다른 건축이다. 하지만 이 둘은, 예측 불가능한 내일을 대비한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주변과의 조화, 어우러짐을 추구한다는 면에서 동일하게 ‘작은 건축’으로 수렴한다.
애초, 쿠마가 ‘작은 건축’이란 워드에 주목하기 시작한 건, 2011년 311 동일본 대지진 ‘그 후’ 맞닥들인 처참한 현실 때문이었다. 제목부터 ‘작은 건축’이라 지은 책에서 쿠마는 이전의 근대 건축을 강렬하게 비판한다.
“311은 건축이 아무리 강하고 합리적인 크기를 완성한다 해도, 대지진과 같은 자연재해에는 대항할 수 없음을 여실히 일깨워준 사건’이다.” 나아가 콘크리트가 아무리 합리적이고 커다란 건축을 만든다 해도, 자연이라는 힘, 혹은 분노 앞에선 한움큼도 되지 못한다고 힐난한다. 당초 여기서 시작된 ‘작은 건축’이란, 그렇게 기존 콘크리트로 대변되는 모더니즘 건축을 반성하는, 자연에 맞서온 '단절의 건축'을 벗어나려는, 하나의 대안적 건축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건 곧 자연으로 대변되는 ‘변화’를 받아들이는 일로 이어진다.
최근엔 리노베이션이 많이 늘어나는 추세지만 그래도 여전히 신축이 기준이죠. 하지만 신축은 낡은 걸 부수고 다시 세우는 거잖아요. 그럼 생명이 한 번 멈춰버리는 것이에요. 건축이란 100년은 되야 (세월의) 멋이 느껴지는데, 콘크리트는 좀처럼 쉽게 ‘생물화’되지 않거든요. 그래서 앞으로는 고쳐서 쓸 수 있는 건축을 계속 멘테넌스를 해가며 사용해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쿠마의 건축엔 늘 완공, 마지막이 없다. 세월과 함께 개수를 하며 지속하는 ‘진행형’ 만이 존재한다. 변화를 받아들인다는 건 곧 변수를 살아가는 일이고, 그에 맞춰 만들어지는 유연함의 건축엔 순환의 계절이 흐른다. 311 이후 쿠마는 돌연 집을 잃어버린 이들을 위해 ‘모두의 집(みんなの家)’이란 이름의 프로젝트를 동시대 건축가 안도 타다오, 세지마 카즈요 등과 함께했다. 아직은 생소하지만 재해의 건축이란, 실패를 안고 세워지는 건물인지라, 또 한 번의 재해에 맞설 '면역'이 준비되어 있다. 마치 그가 얼마 전 완성한 또 하나의 다리처럼, 위기와 함께 살아간다.
지난 10월 17일, 야마구치현(山口県) 이와쿠니시에(岩国市)선 쿠마의 또 하나의 개수 프로젝트가 완성되었다. 2018년 서일본 호우로 붕괴되었던 쿠스기 다리(久杉橋)의 재건 이야기다. 쿠마는 무려 3년에 걸친 공사에서 무너진 그 다리를 한눈에 봐도 잊을 수 없을 정도로 인상적인, 아치형 나무를 더하고 엇대어 180m에 다하는 기다란 다리로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 그 180m나 되는 굴곡이, 무어라 형용하기 힘들 정도로 대중이 없다. 그저 확실한 건 과학적 계산에 의한 굴곡은 아니라는 점이다. 쿠마는 “마을 뒤 산의 능선을 그대로 이어가는 듯한 구조를 택했다”고 설명한다.
‘국립경기장’의 부끄럽게 하늘을 바라보는 지붕처럼, 하루키 라이브러리의 입구를 장식한 묘한 아치의 파사드처럼, 쿠마의 곡선은 늘 자연에 말을 거는, 관계하고 있다는 파장을 일으키려는 제스처에 가깝다. 맞설 수 없다면 기대는 것, 함께하는 것, 즉 '공존.' 서로 다른 곳에 분리돼 존재하는 자연과 인간이 아니라 함께 엉키고 부딪히며 관계하는 다소 어색한 '랜드 스케이프' 안에, 그의 건축은 일어난다. 유독 나무의 아치, 굴곡을 많이 보이는 건, 그렇게 자연스레 의도된 그만의 건축공법이다. 쿠마는 나무가 부러지기 직전까지 구부러뜨려 건축에 삽입한다. “기본적으로 인간의 생활이란 것도 변하기 마련이에요. 사회도 그렇고, 변하지 않는 게 도리어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합니다. 변하는 게 자연이라 느끼기 때문에 그게 싫다거나 두렵다고 생각하지 않아요.”라고 쿠마는 이야기했다. 물론 다리는 실질적 강도를 더하기 위해 강화 콘크리트 RC로 프레임을 짰지만, 그를 둘러싼 건 야마구치현(山口県) 지역에서 수렵한 8톤의 히노키 목재이다. 전통과 기술, 어제와 오늘의 융합이, 별일도 아니라는 듯, 그렇게 이뤄진다.
건축가 쿠마가 오늘도 열일을 한다. 이 다리의 개수 소식을 보고 난 어김없이 '유즈'의 '영광의 다리栄光の架け橋'가 떠오르고 말았는데, 다리의 역할이란 지금 이 곳에서 다른 한 곳을 연결해주는 것. 상징을 조금 더해보면 오늘에서 내일을 향해 걷게하는 것. 일본의 듀오 유즈(ゆず)는 쿠마의 새로 지은 '국립 경기장'에서 그 노래를 열창했고, 오늘은 그렇게 내일을 행해있다. '수많은 날들을 뛰어넘어 도착한 오늘에서 / 그러니까 망설이지 말고 / 나아가면 돼 / 영광의 다리로~'라고. 시작은 늘 작은 것, 어쩌면 이건 지극히 당연스런 진실이었을까. 쿠마의 건축은 그렇게 봄여름가을겨울 우리가 실패한 곳, 늘 그곳에 시작한다.
제가 이야기하는 ‘상자’란 하나의 시스템입니다. 상자 안에서 일하도록 설계되고, 그 전에는 똑같이 학교란 상자에서 모두 경쟁하도록 만들어지고, 학교란 상자에 모두를 밀어넣어서 성적만으로 경쟁을 시키고, 성적이 좋은 사람은 좋은 기업, 대기업에 근무하고, 그렇게 커다란 상자에 들어가게 만들어진 구조인거죠. 인생이 상자에서 상자로 이어져있을 뿐 자유가 없는 인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마지막 상자를 부수는 것만으로도 인간은 모두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생각해서, 저는 지금이 자유로워질 수 있는 찬스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공간적인 ‘상자'에 넣어져서 살았던 것이고, 인생 자체가 상자 안에 갇혀있었던 것이고, 그렇게 공간도, 시간도 상자 안에서 관리되었던 게 20세기 시스템이라고 생각합니다. -쿠마 켄고 2020. 03.02 두 번째 리모트 인터뷰를 마치고 코로나 두 번째 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