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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병장수 Jan 15. 2024

긴긴밤_루리

긴긴밤을 버텨내기

해가 짧은 겨울은 특히 우울해지기 쉽다. 해가 뜨기 전 출근해서 창이 없는 검사실에 앉아 죽음이

다가오거나 혹은 자신의 의지로 죽음을 향해가는 환자와 보호자를 하루 종일 만나고, 해가 졌을 때가 돼서야 퇴근 후 집으로 돌아와 지친 몸을 잠시 현관 앞에 눕히면 마치 하루 종일 긴긴밤이 지속되는 것 같이 느껴진다.


제21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긴긴밤은 결국 살아가는 것이 죽는 것보다 어렵고 힘들지만 서로의 삶이 촘촘히 연결되어 연대와 사랑을 하면서 ‘우리’는 삶은 살아갈 가치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소설 속 코뿔소 노든의 삶은 어찌 보면 가혹할 정도로 평탄하지 않다. 자신이 코뿔소인지도 모른 채 코끼리 고아원에서 성장해, 두려움을 무릅쓰고 세상으로 나와 겨우 꾸린 가정에서 행복은 잠시 아내와 자녀가 사냥꾼에게 처참하게 죽임을 당하고 자신은 동물원에 전시된다. 분노감에 휩싸인 상태로 동물원에서 만난 유일한 친구의 위로로 동물원을 탈출하고자 하는 목표가 생기지만 친구가 허무하게 죽어버리자 더 이상 무언가를 할 의자조차 없이 무기력해져 버렸을 때 갑자기 난 전쟁으로 세상 밖으로 또다시 던져져 난데없이 나타난 알을 든 펭귄과 함께 바다를 향한 로드트립을 하다가 죽는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가혹하게 세상에 던져지지만 그들은 서로의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주고 서로 소통을 통해 위로받으며 연대하고 사랑하며 살아낸다. 긴긴밤이 지속되는 것만 같은 하루하루가 지속되는 것만 같다고 불평했던 나의 하루를 다시 되돌아본다.


나보다 훨씬 이른 아침을 시작했을 버스 기사님께 인사를 건네며 버스를 탔다면 적어도 나와 기사님은 찰나라도 미소를 지을 수 있지 않았을까? 따뜻한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향긋한 차를 내려 좋은 향기와 따뜻한 온기로 몸을 데우며 하루 업무를 시작했으면 좀 더 힘이 나지 않았을까? 바쁘다는 핑계로 사무실에만 앉아있는 것이 아니라, 점심 식사 후 잠시 밖으로 나와 빛나는 태양 빛을 받아보았다면 어땠을까? 퇴근길에는 차가워진 밤공기에 나의 깊은 한숨을 한번 내쉬어보고, 뽀얗게 나의 숨을 머금은 연기가 가시화되었다가 순식간에 흩어지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면 하루 동안 크고 작게 받은 상처와 스트레스가 흩어지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그래도 해결되지 않는 날에는 허물없는 친구를 만나 실없는 이야기를 하며 까르르 웃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면 좀 풀리겠지. 긴긴밤이 지속되더라도 긴긴밤 속에서 지지 않고 살아낼 수 있는 전략을 찾아내 우리는 살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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