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것에 대하여...
어제의 비바람이 무색하게 맑고 개인 오늘.
나는 아무렇지 않게 반팔을 꺼내 들었지만
맨살에 닿는 온도가 달라짐을 느끼고 얇은 겉옷을 하나 챙겨 집을 나섰다.
쨍쨍한 햇살도 차갑게 식은 바람을 어찌할 수 없는
이제야 비로소 가을이 온 게로구나 싶었다.
쇼핑몰에 가서 이런 옷, 저런 옷 훑어보았지만 딱히 꽂히는 게 없었다.
이전 같으면 딱히 꽂히지 않아도 호기심에라도 한두 벌은 입어 봤을 텐데
내 주머니 사정을 직시해서인지,
빈곤하기 짝이 없는 내면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인지, 아님 집에 걸려있는 수많은 옷들이 눈에 밟혀서인지
아무튼 이젠 새 옷을 가져다 몸에 대고 거울을 보는 것조차 쓸모없는 짓 같단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그냥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도착해서 내 옷장에 걸린 두꺼운 외투들을 스캔하였다.
그러다 얇고 따뜻해 보이는 코트 하나를 빼 입었는데,
소매깃에 있던 단추가 사라진 걸 발견했다.
단추를 모아 둔 유리병을 들여다보았다.
다행히도 어렵지 않게 코트에 달려있던 단추를 찾을 수 있었다.
오랜만에 반짇고리를 열어 실과 바늘을 집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이 반짇고리의 실과 바늘, 바늘쿠션은 내가 대학에 갓 입학했을 때 샀던 거다.
-당시 나는 패션디자인과 학생이었다-
이 코트는 그 보다 더 전에 동생이 고등학교 입학 할 무렵에 선물 받았던 것이 아니던가?
당시 꽤나 비싼 코트. 동생의 부심은 대단했다.
나는 그냥 무난하고 평범하기 짝이 없는 코트가 뭐 그렇게 비싸냐 물었다.
동생은 가볍고 부드러운 백 프로 천연 소재에 허리라인을 감싸서 날씬해 보이는 라인에
스탠더드 하고 무난하면서도 카라가 매우 독특해서 어디서도 흔하게 볼 수 없어,
백 년 만 년 질리지 않고 입을 수 있다고 했다.
동생이 그 코트를 얼마나 좋아했던지,
나는 그 코트 근처도 가지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동생은 몇 년의 혹한 겨울들을 그 코트 하나로만 줄기차게 버티더니
어느 날 갑자기 너무 질려서 이젠 입기 싫다며 내게 입으려면 입으라며 내게 건네주었다.
그 시기,
엄마도 그간 과거를 잊고 싶다며 집을 팔았고,
나도 가능한 한 과거와 멀어지고 싶어 발버둥을 치고 있었으니,
동생이 과거의 살가죽 같은 코트를 버리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당시, 노멀 한 옷을 돈 주고 사는 게 너무 아까웠던 나는 혹시나 싶어 그 코트를 간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한 번을 입지도 버리지도 못하고 간직만 하게 되었다.
매년 옷장정리를 할 때마다 젤 먼저 버려야겠다 하면서도 막상 버리려 하면
동생의 코트 자랑이 생각나 버릴 수가 없었다.
"진짜 가볍고 느낌이 좋네...", "진짜 이거랑 똑같은 코트 디자인 본 적이 없는 것 같아"
"진짜 비싼 건 좀 다르네..." 등등...
그러더니 해가 지날 때마다 어쩐지 점점 더 이쁘게 보이는 게 아닌가?
그래서 지난해부터 세탁하고 보풀들을 떼어내며 매무새를 만지기 시작했는데,
당시 남자 친구는 그런 날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그냥 하나 사라고 말했었다.
그러고 보면 과거 나의 옛 연인들 모두로부터 그런 눈빛을 받았다.
구질구질하단..
한 옛 남자 친구는 영화 속 부랑자를 볼 때면 내 스타일 같다며 비교를 하질 않나,
한 번은 내게 진지하게 말했다. “난 너처럼 살기 싫어.”
당시 나는 일명 모리걸룩, 보헤미안 스타일 같은 내추럴하고 아티스틱한 패션스타일을 선호했고,
외관뿐 아니라 정신또한 자연적이고 친환경적인 것에 관심이 많았다.
패션이고 물건이고 나는 스티븐잡스가 검정티를 고집하는 것 같은 어떤 까탈스러운 면과 어떤 고집스러운 철학이 있었다. 때문에 내 취향에 맞는 물건을 만나기 어려웠고
그러다 만나게 되면 운명적이란 느낌까지 받아, “죽을 때까지 함께 할 거야!”란 식이었다.
때문에 또 물건을 버리고 새로 사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깨달았다.
꽃무늬 치마도 아오이유우가 입으면
스타일이지만 가난한 자가 입으면 그저 거지같은 구린게 되는거고,
검정티에 청바지도 스티븐 잡스가 하면 철학되는거지만, 가난한 자가 하면 구질구질한 개똥고집이 된 단 걸...
날 세상에서 가장 사랑한다는 남자들에게 조차 인정받지 못한 내 취향을
과연 누구에게 인정받을 수 있을까?
취향이냐 사랑이냐 하면
사랑이 취향보다 중요하지 않겠느냐 싶어
내 취향을 걷어내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과거의 나를 비워낸 것 같다고 생각이 들었을 때,
나는 전보다 사람들과 잘 섞이게 되고, 전보다 이해받을 만한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참 가벼워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였을까?
위태위태 걷던 나의 두발이
이제는 아예 땅에 붙이지도 못하고 둥둥 공기 속에 떠다는 느낌으로 살게 된 것이...
그런데, 오늘 오래된 낡은 코트에 단추를 다는데 공기 중에 떠돌던 심장이 살포시 단추와 실과 내 손끝을 타고 가슴에 안착한 느낌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아무리 구질구질하고 구려 보이는 짓일지 몰라도,
어쩔 수 없다.
새 옷을 사는 것 보다도
낡고 오래되고 그런 것을 고쳐 쓰는 것에서 삶의
의미를 느끼는 게 나인걸...
“동생에게 이 코트 다시 입겠냐고 물어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