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좋아하기로 해 봄
키가 꽤 컸었어요.
잎도 풍성했었고요.
불과 일년 전까진 말에요.
그렇게 줄 곧
싱그럽게만 살아갈 줄 알았어요.
그러던 지난 해 여름 어느 날,
그 날의 태양이 유독 버거웠나 봅니다.
오후부터 잎들이 축 쳐서 생기를 잃고
시들어 가기 시작했어요.
새 흙으로 덮어 주고, 신선한 물을 주어도
계속 매말라 가기만 하였어요.
잎들이 모두 다 떨궈져 나가고
가지들이 쪼그라들더니
이윽코 빼빼 마른 앙상한 마른 기둥만 남게 되었어요.
마른 가지들을 잘라주고,
시원한 바람을 불어주고,
가을의 따스한 햇살에 쐐어 주어도
살아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어요.
겨울은 오고, 날은 추워지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가만히 지켜만 보는 것 뿐이었어요.
그러던 찬 바람이 심하게 불던 겨울 어느 날
나는 마음을 먹었어요.
녀석을 이만 다른 곳으로 보내주기로요.
삽으로 녀석을 들어 올려
흙 속 깊이 파묻어 주었어요.
숭덩숭덩 도려내지고 부러져 초라한 녀석이 사라지면 내 마음도 홀가분할 줄 알았건만...
녀석을 드러내도 덩그러니 남은 빈 화분은
내 마음에도 구멍을 내어 차가운 바람을 들였어요.
집 안에는 여전히 차가운 바람이 드나들었지만
창 밖에선 태양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어요.
“봄이 왔어요”
나는 웅크려 있는 흙들에게도 그
소식들을 알려주려, 꽁꽁 묶어 둔 포대를 열며 말했어요.
“그만 일어나세요.
봄이 왔데요. 우리 같이 봄 햇살 좀 맞으러 나가요”
그러다 그 흙들 속에서 아직 섞이지 않고 작년 모습 그대로 간직한 녀석을 발견했어요.
“그냥 여기 계속 두어도 되나?
그냥 휴지통에 버렸어야 했나? “
그렇게 어쩌지 하고 있는데,
녀석에게서 아주 조그만한 소리가 났어요.
나는 가까이 머리를 갖다 대고 들여다 보았어요.
그랬더니 녀석이 이렇게 말하는게 아니겠어요?
“나는 아직 죽지 않았어요.
조금씩 살아나는 중이랍니다. “
나는 곧장 조심스레 들어 올려
한 쪽 손 바닥에 눕혔어요.
그리고 작은 화분으로 옮겨 심어 주었어요.
그리고 약간의 물도 먹여 주었어요.
그랬더니 시커먼 기둥 속에서
상큼한 향기를 풍기며
살그머니 초록초록한 머리를 내미는게 아니겠어요?
궁금해요.
그간 이 녀석은 힘을 주며 살았던 걸까요?
힘을 빼고 살았던 걸까요?
올 해 부턴 봄을 좋아하기로 했어요.
싹 트는 모습을 보는게 좋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