닝보(宁波) 지역연구 1일차 (1)
우여곡절 잔뜩 겪은 혼자만의 7박 8일 지역연구가 끝났다. 마지막까지 엄청난 연착으로 나를 반겨준 뤄양 공항 덕에, 상하이에는 예정보다 늦은 저녁 6시 10분에나 착륙했다. 오랜만에 돌아온 상하이는 예상대로 푹푹 찌는 날씨와 습한 공기로 가득. 지역연구를 떠나기 전 옷장에 넣어둔 제습제는 분명 물을 잔뜩 머금어 무거워져 있을 터였다.
짐 찾고 집에 도착하니 이미 저녁 시간. 게다가 월말에 떠난 지역연구로 인해 6월 영수증을 아직 정리하지 못했다. 늦은 저녁부터 지역연구 사진 정리 및 영수증 정리를 마치고 회사에 보내고 나니 새벽이 다 되었다. 다음날 아침부터 중국어 수업이 있었기에 약 3시간 반 밖에 자질 못하고 오랜만에 상하이에서 아침을 맞았다.
다음 지역연구 목적지는 뤄양에 있을 때 이미 정해뒀다. 저장성 닝보(宁波, 영파). 뤄양을 떠나기 전날이었나, 숙소 침대에 누워 기차표 예매 어플 속 도시 목록을 살펴보며 어떤 도시를 갈지 고민한 결과였다. 중국에 그렇게 많은 도시가 있는지 그날 뼈저리게 깨달았다.
닝보가 특별히 가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7박 8일의 지역연구 후, 다음 장기 지역연구는 10일 뒤 시안(西安)으로 예정되어 있었는데, 그 10일이란 시간을 허투루 보내기가 싫어서 고민하다가 상하이에서 가까운 편이라서 우선순위를 미뤄뒀지만 당일치기로 가기는 좀 아깝고 애매한 곳들을 가보기로 했고, 닝보가 그 조건에 맞는 도시였을 뿐이었다. (곧이어 나올 쩐쟝镇江도 그렇다)
저장성이라면 항저우와 우쩐(乌镇)을 보통들 가는데, 항저우는 기차역에서 시내까지가 멀고 도로가 막힌다는 이야기를 듣고 바로 마음을 바꿨다. 예~전에 한 번 가본 적이 있었다는 것도 가지 않기로 한 이유 중 하나였다. 우쩐은 딱 봐도 상업화된 레저타운의 느낌이고 수향마을은 워낙 많아서 패스. 닝보에 가기로 마음먹고 찾아보니 기차로 샤오싱(绍兴)에 있는 안창고진(安昌古镇)도 가볼 수가 있을 것 같아 일정에 반영했다.
이틀만 쉬면 바로 상하이를 떠나야 하는 상황. 나는 좋아하는 마라샹궈 집에서 시킨 마라샹궈로 배를 가득 채우고, 좋아하는 상성 극단의 4주년 기념공연을 보러 인민대무대(人民大舞台)로 향했다. 오래간만에 서법 숙제도 좀 하고, 친구를 만나 좋아하는 궈티에(锅贴)와 따훈툰(大馄饨)도 먹고, 오랜만에 수다도 좀 떨었다. 자, 상하이 충전 완료. 이제 닝보로 떠나보자.
일정표에 이미 샤오싱을 가기로 정해놔서 홍챠오 기차역에서 아예 닝보에서 샤오싱을 왕복하는 표까지 다 발권을 해버렸다. 닝보역에서 또 매표소를 찾아 줄을 서는 번거로움을 면하기 위해서였는데, 날씨가 궂어 생각보다 샤오싱에 머무르는 시간이 짧아져서 어플로 기차 시간을 바꿔버려서 다 소용없게 되었다는 슬픈 사실.
닝보에 도착해 우선 숙소에 체크인을 한 뒤, 지체 없이 목적지인 난탕라오졔(南塘老街)로 향했다. 닝보는 기차역에서 시내까지가 그렇게 멀지 않아 금방 이동이 가능했다.
난탕라오졔는 옛 닝보 고성의 남문 밖에 위치해 있던 남문삼시(南门三市) 자리를 재개발하여 조성한 '옛 거리'다. 난탕허(南塘河)를 사이에 두고 시민들의 실제 주거지와 마주한 이 거리는 강변을 따라 길게 뻗은 모양을 하고 있다. 안에는 음식점도 있고, 소품샵도 있고, 심지어 객잔도 있다. 아, 어디서 많이 본 구성이네. 뤄양에서 봤던 낙읍고성(洛邑古城)이 갑자기 생각나는 이유는 뭘까.
멋스럽게 생긴 대문을 지나면, 위 사진처럼 고풍스러운 느낌의 건물들이 잔뜩 나온다. 개중엔 에스테틱 같은 곳도 있어서 '아니 이곳에 관리를 받으러 오는 사람이 있단 말이야?' 하는 의문이 생기기도 했다. 일단 배가 좀 출출하니 점심부터 먹기로 했다. 탕런찬팅(塘人餐厅)이라는 음식점이었는데, 그다지 특별할 것은 없는 강남(江南) 지방의 요리가 나왔던 것 같다. 주변에서는 평이 나쁘지 않은 가게여서 손님이 꽤 많았다.
배를 채우고 본격적으로 거리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귀여운 소품집을 발견해 이것저것 구경하기도 하고, 강변 쪽으로 걸어가 구경해보기도 했다.
거리의 바깥쪽으로 걸음을 옮기면, 이렇게 난탕허가 나오고, 그 맞은편에는 저층의 주택 단지가 있다. 강변 뷰라면 강변 뷰인 셈인데, 주거 환경이 그다지 좋아 보이진 않았다. 아무래도 강 바로 앞이다 보니 빨래도 잘 안 마를 것 같고, 굉장히 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물론 물냄새도. 멋진 풍경을 앞에 두고 너무 칙칙한 생각을 했나..? 또 모를 일이다. 사실 이 아파트 집값이 무지 비싸다든가, 재건축을 앞두고 있다든가 하는 상상을 해본다.
돌아다니다 보니 사람들이 줄을 잔뜩 선 간식가게가 나온다. 요우짠즈(油赞子)라는 것을 팔고 있었는데, 닝보의 전통 주전부리라고 한다. 청 광서제 때부터 시작된 먹거리라고 하는데, 사실은 마화(麻花), 즉 꽈배기 과자의 한 종류라고 보면 된다. 중국 곳곳에 각종 마화가 있는데, 매거진에서는 충칭의 그것과 톈진의 그것을 소개한 적이 있다.
닝보 난탕 요우짠즈(南塘油赞子)는 충칭의 것보다는 두껍고 톈진의 그것보다는 작았다. 맛은 뭐, 다 비슷비슷하다. 충칭의 것이 한입에 딱 들어가는 크기긴 하다. 닝보에는 난탕과 구러우에 요우짠즈 파는 곳이 있는데 두 곳 모두 줄을 엄청 선다고 한다. 충칭에는 마라맛 마화가 있었는데, 닝보는 해안가 도시라 그런지 김을 넣은 요우짠즈가 특색이다. 내가 갔던 가게에는 단맛과 김맛(짠맛)만 있었고, 인당 구매수량도 한정되어 있었다. 장사 엄청 잘 되나 보다. 이곳만의 간식거리라고 하니 일단 줄을 선다.
장사가 잘 되는 곳이라 그런가? 직원들 표정이 싱글벙글이다. 잘 보면 주방에서 바로바로 만들어내고 있다. 김맛과 단맛을 하나씩 샀는데, 예상한 맛이었지만 그래도 심심풀이로 괜찮은 주전부리였다. 하지만 역시 나는 충칭 마화가 좋아. 요우짠즈를 먹고 돌아다니다가 너무 덥고 다리도 아파서 들어간 짜오찌촨청(赵记传承). 여긴 체인점인데 특별할 것은 없는 광동 디저트 판매점이다. 망고 디저트와 이곳의 시그니처인 생강 푸딩(姜撞奶)을 시켰다. 생강 푸딩은 뜸을 들여야 한다고 저렇게 모래시계를 같이 준다. 달달하고 맛있다.
일단 거리 구경은 마쳤는데, 생각해 보면 여기가 상하이인가 닝보인가 싶은 생각이 든다. 상하이 톈즈팡과 신톈디를 합쳐놓은 것 같은 느낌도 들고, 그냥 그야말로 인터넷에 자주 오르내리는 힙한 장소, 왕홍(网红) 스팟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 같은 느낌. 사실 이런 곳은 중국 도시마다 있기도 하고. 상하이는 물론이고 톈진 고문화 거리나 충칭 츠치커우, 뤄양 낙읍고성이나 청두 콴자이샹즈 같은 곳들이 다 이런 분위기가 아닌가. 특히 전통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에 들어와 있는 스타벅스를 본 순간, 내가 발을 딛고 서 있는 곳이 닝보인가 상하이인가 잠깐 의심했다.
아쉽게도 상하이보단 좀 작위적인 느낌이 들긴 한다. 특정 도시의 인기를 올리기 위해 시정부에서 생각해 낼 수 있는 아이디어가 한정적이고, 특별한 주제 없이 그냥 옛 번화가를 개조만 해서 거리만 조성해 놓고 가게를 유치하면 딱 이런 모양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물론 다른 후기에 따르면 이곳은 밤에 가는 게 더 예쁘다고도 하고, 내가 갔을 때가 2019년이니 그 사이 엄청나게 바뀌어있을 수도 있는데, 19년 당시 나의 감상은 그랬다. 그리고 그 감상은 닝보에 대한 감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음이 곧 밝혀진다. 다소 아쉬웠던 난탕라오졔,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