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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도 Dec 12. 2019

성폭력에 눈 감기, 내 이야기라도.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는 같은 시간에 같은 사건을 겪는다. 물론 그들의 입장은 한 쪽은 가해자로, 다른 한 쪽은 피해자로 판이하게 다르다. 이는 이후 이 일이 마음에 어떻게 남는지에 차이를 보인다. 한 쪽은 공히 강제력을 사용해 다른 사람을 제압했고, 다른 한 쪽은 타인의 강제력에 스스로를 지켜내지 못한 기억을 갖는다. 나에게는 후자의 기억이 있다.

성폭력 피해 기억은 절망감에 배신감, 두려움과 혼란을 한꺼번에 선물했다. 무력해지고 자존감이 떨어지며 지금까지의 세계관이 와르르 무너진다. 이는 사람에게 당하는 피해고 실수로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를 다치게, 혹은 억압할 고의로 벌어지는 일이다. 이제 시간이 제법 지났음에도 그 언론사나 피의자, 기타 관련자의 이름을 어쩌다 접하는 것만으로 괴롭다. 그 일은 그만큼 치명적이었다.

앞서 밝힌 사건 이후에 일어난 다른 사건이 있었다. 1박2일간의 회사 워크숍 기간 동안 일어났고 한 명의 가해자와 한 명의 피해자가 있다. 피해자는 나였고 가해자는 당시 워크숍에 참석했던 직원 중 한 명으로 언론사 간부였다. 이 역시 술을 많이 마신 후에 일어난 사건이다. 첫 사건보다 수위가 훨씬 높고, 워크숍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라 직간접적으로 개입된 사람이 많았다.

이 사건에 대한 자세한 서술은 피하려 한다. 잊은 것은 아니다. 앞서 있었던 일을 겪고는 몇 주 사이에 안정을 찾은데 반해 이 일은 수년간 24시간 내내 머릿속에서 강제로 리플레이되었다. 깨어있는 동안 이 일이 떠오르는 게 괴로워 잊어보려고 잠들면 같은 장면이 꿈에서 나왔다. 잊고 싶은 일을 다 잊을 수 있다면 편하겠지만 기억은 그 반대였다. 괴로운 기억일수록 이후의 심리적 방어를 위해 더더욱 깊이 박힌다. 지금도 얼마든지 리플레이가 가능하고 조사기록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 이야기를 접어두려는 이유는 시간이 다소 지난 지금도 공개의 부담이 내게 너무 무겁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언급하면서 이 일을 토해내는 모든 과정이 힘에 부쳤고 지금은 구체적인 피해 사실을 아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이제껏 이 내용은 수사과정 등 불가피한 상황에서만 오프더레코드 조건으로 밝혔다.

이 부분을 차마 공개하지 못한 것은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였지만 이 결정은 내게 칼이 되어 돌아왔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말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하여튼 나는 이 사건 탓에 이후 몇 년간을 암흑 속에서 보냈다. 그 동안은 이것 외의 다른 생각을 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그리고 이로 인한 나비효과는 내가 언론사 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포기한 계기가 되었다. 사건 자체보다 사후 처리에서 더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워크숍에서 두 번째 사건이 벌어진 직후에 바로 문제를 제기하는 대신 차후에 가해자를 대면해 개인적으로 문제 제기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이후로 이 두 번째 가해자를 가칭 X라 하겠다. X는 늘 차분했다. 그리고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쉽게 읽히는 글을 쓰는 사람이었고 이 일에 나름의 사명감을 갖고 있었다. 나는 일을 키우고 싶지 않아 워크숍 당시 많은 사람이 있던 곳에서 문제 제기를 하지 않으려 했다.

치명적이라고 부를만한 충격을 받고도 다소 소극적인 결정을 했던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나는 사과를 받는 선에서 일을 끝내고 싶었다. 나는 앞선 일처럼 개인적으로 사과만 받으면 된다는 순진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전에 사과를 요구해서 사과를 받고 나 역시 나아진 적이 있으니, 그로서 충분하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뭔가 미묘하게 분위기가 이상했다. 사건 이전까지 내가 그럭저럭 회사 생활을 하던 것과 달리, 그 이후부터 나는 매초 단위를 버티듯 살았는데 그에 반해 X의 행동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나치게 자연스러웠다고 할까. X의 세계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 같았다. 물론 말과 행동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담는다고 보기는 어렵다. 나로서는 괴로웠던 이 시기에 대해, 눈치 챈 사람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T와 X는 대처에서 정반대의 모습을 보였다. X는 회피와 부정으로 일관했다.

다른 이유는 입사하고 얼마 안 되어서 들은 이 조직의 성범죄 사건 처리 방식이었다. 그 중 피해자 입장에서 좋게 처리되었다고 할 만한 것은 없었다. 나는 이 회사가 성범죄 가해자를 해고 또는 파면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기껏해야 자신의 영달을 위해 회사를 떠난 사람이 유사한 일로 문제가 되었을 때, 그 사람 그럴 줄 알았다는 이야기가 전적과 함께 한 차례 돌 뿐이다. 이는 피해자가 회사에 남기 위해서는 끝까지 가해자와 동료로서 지낼 각오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 끝이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사내에서 구두 경고를 받은 가해자, 서면 경고를 받은 가해자, 정직 처분을 받은 가해자, 징계 기록 없이 소문만 무성한 가해자 등의 소문은 수시로 들었지만 그들에게 피해를 입었다는 사람들은 조직에 남아있지 않았다. 사법 처리는 시도한 사례조차 드물었다. 조직의 시선, 언제라도 상대와 마주칠 수 있다는 불안감, 이런 것들을 견디지 못하는 쪽은 조직에서 떠날 수밖에 없는데 이는 대개 피해자였다.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는 정신적인 타격을 크게 입지만 사건 해결 과정이나 그 후에 이야기가 퍼질 때 피해자의 괴로움은 대개 숨겨졌다. 이런 예에서 회사는 모든 고민을 터놓고 말해도 될 만큼 신뢰할만한 공동체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 이야기를 알리는 것은 나는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하면서 이야깃거리만 내주는 결과가 될 수 있었고 한 번 퍼진 정보는 회수가 불가능하다.

나는 가해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 X의 진솔한 사과를 받는 것이 목적이었다. 나는 X가 조직 내에서 몇 안 되는 정치적이지 않은 기자이며 괜찮은 기자라고 여겼다. 이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다만 나는 이 때 괜찮은 기자가 괜찮은 사람의 부분집합이라는 거짓 명제를 참으로 보는 오류를 범했다. 이 두 집합은 극소량의 교집합을 가진 별개의 집합이다. 어떤 기자의 기사에 기술적, 법적, 도덕적 오류가 없거나 적다는 것은 그 기자를 좋은 기자로 보는 기준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과 그 기자가 좋은 사람이냐는 따로 판단해야 한다. 나는 X가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잘못에 대한 책임감 있는 태도를 보여주기를 원했을 뿐이다. X가 어떤 처분을 받아 직장을 잃거나 하는 모습을 본다고 한들 기쁠 것 같지도 않았다. 나는 이 일을 개인 간의 문제로 이해했고 따라서 해결 역시 두 사람이 하면 된다는 꿈을 꾸고 있었다. 그래서 X와 이에 대한 개인적인 대화를 시도했다.

사건이 지나고 2주 후 X와 이야기할 기회를 얻어 나는 사건 당시의 일에 관해 대화를 시도했다.  X는 그 전후의 내용은 기억하면서도 나와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그 부분만 필름이 끊겼다는 뜻이다. 일명 블랙아웃. 술을 먹고 필름이 끊어졌다는 이야기인데 나로서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나는 사건에 대해 물적 증거도 있었고, 당시 상황에 대해서도 무엇 하나 빼놓지 않고 기억했기에 꿈에서까지 시달렸다. X의 주장 진위여부와 무관하게 어쨌든 기억을 못한다고 하니 나는 그 당시 있었던 일을 X에게 대강 설명했다.

X와의 대화를 통해 이 일이 왜 일어났는지 알고 싶기도 했다. 나로 말미암아 일어난 일이 아니었기에 이 일을 벌인 사람에게 그 내용을 물을 수밖에 없었다. 운의 탓으로 돌리고 내가 그 일을 지나 보내기는 어려웠다. 기실 피해자인 내가 그럴 필요도 없었다. 또한 사건 경위를 명료하게 이해하는 게 내 마음을 달래는 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일 자체를 기억하지 못했던 X는 당연히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했다. 단순히 설명하지 못하는 것을 넘어 예상 밖의 행동을 보였다. 그 일에 대해 어떠한 입장도 없었던 것이다. 사건을 저지른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부정을 하지도 않았다. 그저 미묘한 대답으로 계속 질문의 핵심에 대답하지 않고 회피했다. 나는 직접적인 질문을 하느라 고심했지만 어떤 질문을 해도 질문에 대한 답을 들을 수 없었다. 나중에는 대체 어디까지 도망갈 거냐고 물었는데 이 질문에 X는 회피는 고사하고 대답하지도 못했다.

이 상황은 나로서는 미칠 노릇이었다. 나에게만 괴로운 기억이 있고, 상대는 기억에조차 없는 일이라고 한다. 나는 겪어서 마음이 까맣게 타들어가는 일이, 상대에게는 열쇠 없는 판도라의 상자라고 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회피가 X의 고유한 대화 방식이 아니라 자신의 모습을 직면하기를 철저히 거부하면서 나온 자연스러운 행동이라는 것을 아는 데까지 두 달 정도 걸렸다. 블랙아웃 역시 믿을 수 없었지만 몇 차례 이야기를 나눠보고는, 만약 블랙아웃이 거짓말이라면 X는 기자가 아니라 배우를 했어야 했다는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다. 두 달간 몇 차례 대화를 시도하면서 가해자로서의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에, 화가 나는 한편 안쓰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이 과정에서 X가 사건에 대해서 어떤 언급을 하는 것조차 힘들어하고 조금만 건드리면 부서질 것처럼 보여 연민을 느꼈다. 그래서 문제 제기를 포기하고 그 문제를 접기로 마음먹고 이를 X에게 알렸다. 나만 불편한 감정을 참으면 될 줄 알았다. X와 답 없는 대화를 더 할 자신도 없었고 스스로 납득할 이유가 있었기 때문에 이 일로 내가 그렇게 고통 받지 않을 줄 알았다.

어쨌든 그 일은 일어났고 X가 어떤 처분을 받는다고 해도 나는 그 일을 겪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내가 사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처벌을 포기하는 것. 이게 가해자 위주의 사고방식이며, 피해자에게 얼마나 가혹한 생각인지를 알게 된 것은 좀 더 나중이었다. 아무리 상상의 자유를 부르짖더라도 하지 말아야할 위험한 발상이다. 나는 다른 곳의 부정비리를 세상에 알리는 조직에서 일하며 나를 향한 명백한 폭력에 눈을 감으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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