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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도 Dec 14. 2019

사적인 해결의 어려움

나는 이 일이 처음부터 범죄라고 의식했지만, 이 일을 대외적으로 문제 삼겠다는 결정을 하기까지 또 몇 달이 걸렸다. 아무렇지 않게 회사를 다니려고 노력하다가도 X를 지나쳐 가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다운되었다. 어찌할 바를 몰랐고 회복은 요원하게만 보였다. 이 문제를 접고 넘어가겠다고 X에게 말하고 네 달여가 지났다. 그 기간은 내가 이 사건을 꿈에서 숱하게 리플레이하며 과연 지옥의 끝이 있는지 탐색하는 기간이기도 했다. 결론은 출구가 없다는 것이었다. 어차피 나 혼자서 해결이 되지 않는다면 어떻게든 가해자 X의 사과를 받기로 했다.

나는 X에게 그 일에 대해 더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제안했지만 한동안 연락이 없었다. X와 이야기를 하려고 할 때면 나는 계속 얘기하자고 하고, X는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피해 다녔다. 이해는 간다. 자신이 가해자라는 것도 인정하지 못하는데 피해자가 이에 대한 대화를 요구하는 게 두려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일이 반복되다보니 나중에는 내가 가해자인지 X가 가해자인지 헷갈릴 지경에 이르렀다. 내가 책임이라는 빚을 받아내려고 계속 X를 따라다니는 상황. 나중에는 내 쪽에서 매달리고 구걸하는 느낌까지 들어 비참했다.

견디다 못해 나는 X의 상급자 D에게 이 일을 털어놓고 도움을 청했다. 그 상급자 D는 즉시로 X를 불러 나에게 사과하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자 곧 X로부터 연락이 왔다. 내가 도움을 청한 데 대해 상급자 D가 나를 도와준 셈이지만 사실 이는 충분히 기분 나쁜 상황이었다. 내가 어렵게 시도해도 안 풀리던 일들이 D의 말 한마디에 급속히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X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었는데 처음에 그 일에 대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던 입장은 변함이 없었다. 기억이 나지 않는 일에 대해 사과할 수는 없고 만약 자신이 실수한 것이 있다면 미안하다고 했다. 이 이야기에 기분이 나아질 리 만무했다. 분명히 겪은 일에 돌아온 것은 조건부 사과였다.

X도 혼란을 겪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X의 말 가운데 모순되는 말이 너무나 많았다. 자신이 그럴 수 있다고 하면서도 그럴 것 같으면 뭐 하러 그렇게 다른 사람들이 드나드는 것이 가능했을 공간에서 그랬겠냐고 하고, 술에 대한 태도도 술에 취해서 있었던 일은 보통 술김에 일어난 일이니 잊는다고 했다가 술김에 사람이 더 솔직해진다고 하는 식이었다.

어쨌든 X는 자신이 당시의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주장을 유지했다. 그래서 나는 필름이 끊겼다는 사람에게 무엇에 대해 사과를 받고자 하는지는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겪은 일의 자세한 상황과 그 기억이 얼마나 끔찍하게 남아있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이 이야기를 어렵게 마치고 나니 X는 한 시간여를 아무 말도 못하다가 마지막에는 자신이 예상했던 것보다 심했던 모양이라고, 미안하다고, 자신이 했던 말을 왜 했는지 모르겠으며 왜 그랬는지 모르겠고, 자신이 이런 상황에 처해있는 것이나 현재 자신이나 둘 다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며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자고 했다.

물론 이후의 처리 과정을 보면 이 역시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나는 이 일이 법적 분쟁으로 번지면 사건 전체를 알려준 것이 X의 변론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이 일을 철저히 개인적으로 풀 생각이었기 때문에 이를 알고도 진행했다. 내가 한 이 호의적으로 한 이야기가 칼이 되어 돌아오는 데는 세 달이면 충분했다. X는 자신이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물어왔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더 이상 이 일로 악몽에 시달리지 않고 별 일 없이 지내는 것이었다.

내 생각에 X는 이때까지는 내게 사과할 의도가 있었다. 그러나 나로서는 미흡하다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었다. 사과를 받고도 이 일로 인한 기억과 감정에서 전혀 자유로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X의 모호한 태도에 지쳐 처벌을 원했지만 여전히 그 과정에서 내가 겪을 일들과 그로 인한 엄청난 시간소모를 감수할 자신이 없었다.

나는 나나 X 모두 이 일로부터 치유되고 편해졌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상급자 D의 연락 이후로 X의 비협조적이었던 태도가 약간 협조적으로 변했다. 나나 X는 둘 다 혼란을 겪고 있었다. 나는 총체적인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X는 자신이 그런 행동을 했다는 것을 차마 스스로 인정하기 어려워했다. 다른 사람이 말하는 자신의 모습이 스스로의 기준에 맞지 않았던 셈이다. 그리고 내가 직접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었어도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지속적으로 상황을 풀어나갈 것을 제안하는 것도 특이한 상황이었다.

침잠한 채 하루하루를 버티는 상황에서 나는 X의 진솔한 사과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깨진 내 세상을 복원하는데도, X가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데도 필요하다고 믿었기 때문에 여기에 매달려 많은 대화를 하려고 애썼다. 이 일이 몇 차례 반복되면서 제대로 된 사과를 받지 못한 나도 지쳐갔고 X 역시 이 상황이 내가 옭아매려는 것처럼 느껴졌을 수 있다.

나는 이 조직 내에서 성범죄 피해자가 얼마나 조용히 사라졌는지를 꾸준히 들었고 처리 규정을 알아보기도 했다. 심지어 다른 사람이 겪는 성폭력 피해와 수습 사례를 직접 목격하기도 했다. 가해자뿐 아니라 피해자 역시 직업적 생명이 끝나버린 이야기. 피해자만 그만둔 이야기. 적어도 피해자만 남은 케이스는 하나도 접하지 못했다. 이런 이야기 속에서 나는 내 경우는 문제를 제기하면 어떻게 될지, 나와 다를 것 없는 다른 피해자들이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를 생각했다. 아직 공론화가 되지 않은 단계에서도 나는 내가 이후 취하는 결정 하나하나가 이 분야에서 더 일하는 것을 막아 버릴까봐 걱정했다. 물론 걱정을 하고 불안을 느꼈다고 결정을 접거나 이후의 행동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나는 이런 일들도 봤고 해서 참고 참다가 그냥 용서하고 넘어가자는 생각을 했다. 명시적으로 이 메시지를 전달해야 나도 스스로 한 말에 대해 책임감이 남을 것이라고 생각해 X가 있던 사무실로 찾아가 따로 불러내려 했다. 그런데 X는 퇴근해야하니 할 말이 있으면 지금하고 그렇지 않으면 가겠다며 회피했다. 그 전에도 이와 유사한 일이 여러 차례 있었고 처음부터 내가 더는 아무렇지 않아 용서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다. 나는 X가 개인적인 선에서 이 일에 대해 전혀 책임지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X의 의지와 무관하게 사회적인 책임을 지게 하기로 마음을 바꿔먹었다. 어떻게든 문제 제기를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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