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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도 Dec 15. 2019

사회적인 해결을 시도하다

고소할 때 나는 심리적으로 벼랑에 몰려 있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시도하고 회사 내에서 도움을 요청해보기도 했고 그 가운데는 몇몇 직원들과 X까지 포함되었다. 내 선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다했다. 내가 건너뛴 단계는 회사 내 감사실뿐이었다. 나는 24시간 이 일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회복은 요원했으며 X의 사과는 내 마음을 푸는 게 아니라 자신이 빠져나가는 것이 목적이었다. 나중에는 그조차 불성실했다. 내가 어차피 이 일에서 벗어날 수 없고 X는 개인적으로 책임을 지지 못한다면 나는 그가 사회적으로라도 책임을 지는 것을 보고 싶었다. X가 사회적으로 책임을 지면, 설령 내 마음이 풀리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나는 더 이상 X에게 책임을 물을 명분이 없어진다.

X에게 사회적인 책임을 묻기로 결정하고 문제 제기하는 방법에 대해 주위에 조언을 구했을 때 감사실을 추천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내가 지금까지도 그 회사에서 믿는 소수의 사람 가운데 하나다. 그의 정확한 의중이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감사실을 통해 문제 삼기를 원하는 심리에는 대강 두 가지가 포함된다. 하나는 사건을 외부에 알리지 않은 채 회사 내에서 통제하고 컨트롤하기 위한 것, 다른 하나는 문제 직원에게 신원 조회 상의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직원을 전과자로 만드는 일을 피하려는 것이다.

나도 처음에는 회사 내 감사실에 알릴까 했다. 이즈음 벌어진 다른 사건의 주인공을 내가 알지 못했다면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당시 나와 함께 일하던 직원 한 명이 다른 직원에게 몇 달간 심각한 수준의 언어적 성희롱을 당한 일이 드러났다. 피해 직원은 회사 내 감사실에 이 사실을 알렸다. 휴대전화를 통해 그런 일이 주로 벌어졌기 때문에 증거를 완벽하게 확보해 감사실에 같이 넘겼다. 피해 직원은 감사 담당 직원을 신뢰할만한 사람으로 표현했지만 감사과정에서 이 일은 온 회사에 다 퍼졌다. 회사 구조상 어떤 일을 혼자 처리하고 그 일이 상부에 보고되지 않는 것은 불가능했다.

심지어 해당 가해 직원에게 피해를 입은 직원은 한 명이 아니었다. 하지만 다수의 피해 직원들은 각자의 이유로 피해 내용을 문제 삼지 않았다. 용기를 낸 피해 직원은 끝내 단 한 명이었다. 이 경우 피해자의 진술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거의 명확해 가해 직원으로서는 다퉈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하지만 가해 직원의 최후 변론은, 자신은 아이가 있고 집에 대출이 걸려있어 회사를 다녀야한다는 것이었다. 가해 직원은 피해 직원에게의 피해에 대한 책임감이 아니라, 자신의 처지에 대해서만 고려했다.

이런 부분이 드러났음에도 사내 여론은 가해 직원에게 기울어 있었다. 가해자를 옹호하는 논리는 죄는 미워도 밥줄까지 끊어야겠냐며 가해 직원을 선처해달라는 것이었다. 피해 직원은 이런 이야기를 하려는 사람들에게 시시때때로 불려 다니며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피해 직원이 원한 것은 가해 직원의 해임이었지만 해임시키자는 여론은 겉으로 드러나지를 않아 유기정직 선에서 마무리되었다. 이 이야기에 피해자의 입장은 아예 없다. 자신의 가해 사실로 인해 처벌을 받거나 혹은 피해를 입을지 모르는 가해자가 있을 뿐이다. 피해 직원은 현재까지도 해당 회사에서 가해자와 함께 근무하고 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사내를 넘어 이 계통에서 일하는 사람은 다 아는 일이 되어버려 사실상 둘 모두 언론에서의 직업 생명은 끝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나는 외부 기관을 찾았다. 경찰서를 찾고서도 경찰과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나는 마음의 결정을 완전히 내리지는 못했다. 감사실을 선택했을 때 무슨 일이 생기는지 알고 감사실 선택을 포기했지만 경찰 고소 이후에 무슨 일이 생길지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담당 경찰에게 대략적인 이야기를 했더니 여기까지 온 김에 고소하고 가란다. 이렇게 가볍게도 말할 수 있었나 싶어 벙쪘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조금은 이끌려가듯 고소장을 접수했다. 나는 이 일을 몇 달 동안 한시도 잊은 적이 없어서 경찰서에서 진술한다고 뭐가 달라질까 했는데, 2시간을 진술하는 것이 생각보다 힘들어 조사를 마치고서는 숨 쉬는 것이 버겁다고 느낄 정도였고 조사 후에도 한동안 편두통에 시달렸다.

조사를 받던 나는 엄청난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 당시의 심정을 기억하는데 살면서 이때보다 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적은 없었다. 하지만 되짚어보면 그걸 다 토해내지도 못했던 것 같다. 조사받으면서 사건에 대한 질문은 어떤 것이든 대답을 할 수 있었지만 전체를 완벽하게 그려냈냐고 하면 그건 아닌 것 같다. 사건에 대한 설명만으로 드러나지 않는 상처와 감정이 더해지는데 조사 과정에서 마음이 부스러지는 것까지 전부 이야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런 부분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다 전달되었냐고 한다면 잘 모르겠다.

조서 작성 과정에서 이 일을 뿌리째 드러내는 게 힘이 들어 조사 이후에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이 매우 강하게 들었다. 경찰서를 나와서 어디든 피아노가 있는 곳을 찾았다. 생각보다 적지 않은 연습실이 있다는 것을 그 때 처음 알았는데, 그렇게 그랜드 피아노 연습실에 쳐들어가 정신없이 두어 시간 피아노를 쳤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은 나의 위태위태한 상태에 대해 상당히 감지를 했었다. 여러 사람이 내가 자살할까봐 우려하기도 했고 이 이유로 고소를 취하하라고 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내가 나 자신을 보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볼 수 있었던 걸까.

고소를 결정하면서 나는 스스로 경력이 끝났음을 직감했고 그것을 포기했다. 이전까지 관련 사례를 보고 들었지만 나만큼 일을 크게 만든 케이스는 책에서나 찾을 수 있었다. 이보다 작은 일로도 내쳐지고 보호받지 못하는 일을 여럿 봤는데 직원을 공격하고도 살아남겠다는 꿈을 꾸기에는 이곳에서 현실을 너무 많이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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