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예술종합학교신문 381호 기고
Korea Mational University of Arts News
서울의 지형도 Topography of Seoul 정기연재
5 도시에 머물고 도시를 방문하기
서울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큰 규모의 도시이고, 수 개의 장소들의 집합이며, 한편으로는 경로다. 한국의 많은 것들이 서울을 중심으로 계획되고 발생한다. 짧은 기간 동안 급속도로 도심지 개발이 진행된 만큼 대한민국의 정부는 각각의 때와 장소에 따라 다른 도시의 안案을 요구하며 동네마다 서로 다른 속도를 가진 풍경을 만들어냈다. 도시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각각의 곳에서 요구하고 기대했던 바 역시 달랐으므로, 이 두 가지의 요구들 사이에서 지금의 서울을 빽빽하게 채우고 있는 많은 것들이 나타났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넓고 수많은 것들이 이렇게 땅을 채우고 있는 곳에서 갈 곳 없다는 말이 계속 들려온다. 줄지어 거리를 메우고 있는 모던한 카페들은 분명 수많은 서울의 ‘갈 만한 곳’들이며, 설령 자리가 없다고 하더라도 다른 카페를 쉽게 찾아볼 수 있음에도. 그렇다면 우리가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우리는 정말 그곳들에 머물고 있을까? 만약 두세 시간 이후에도 한 자리를 꿰차고 있다면 영업 효율에 손해를 끼치는 진상 고객이라 여겨지는 것, 한 자리에서 내가 지불한 값만큼의 시간을 보냈다면 그만 일어서야 하는 눈치. 다음 공간도 마찬가지다. 영화를 보러 갔으면 영화를 본 뒤에는 자리를 떠야 하고, 커피를 다 마셨다면 다른 손님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서울에서 우리가 머물 곳이 없다. 이 도시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은 너무 많은데, 만약 아무것도, 달리 말해 별 하고자 하는 것이 없다면 우리가 갈 곳이 마땅치 않다. 공원에도 벤치를 찾기 어렵고, 광장이 없으며, 길가에 앉아 있다가는 어느새 <사유지 침범>을 하거나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린다. 모여 앉을 곳, 머물 곳도 없는 곳. 사람들은 걸어 걸어 돌아다닌다. 이동하는 사람들의 도시.
‘삭막한 서울에서 이리저리 차이는 우리’를 말하며 버티는 마음을 언급하면 이 도시는 참 끝도 없이 삭막한 공간처럼 느껴진다. 물질적인 면에만 천착하는 현대인의 모습은 서울에 쉽게 적용해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군사독재기 이 모든 것이 한 가족의 3세대가 채 지나기 전에 이루어졌고 지금 2024년 서울이 세계적인 도시로 거듭나고 있는 상황을 생각한다면 이 도시의 각박함과 속도, 끝없는 이동이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한국, 서울은 과거로부터 이동해야 했고, 새로움을 위해 갖추어야 할 태도와 각오가 있었다. 100여 년의 시간 동안 서울이라는 도시가 이 시간을 머금었을 뿐이다.
수많은 이동과 속도, 변화, 이를 따라가는 사람들. 이제 서울은 또 다른 변화의 국면에 있는 것 같다. 발전을 위한 변화와 갱신의 시기가 지나고 과거와 현재를 함께 살피고자 하는 목소리가 올라오기 시작한다. 지난 연재 동안 살펴본 서울의 지형과 건축물들을 통해 남산 힐튼과 유진맨션으로부터 도시의 시작점과 윤곽을 살피고, 근현대를 아우르는 삶과 주거 양식으로부터 그간의 발전을 톺아보았다면, 서울이 도시로서 자신만의 자생력을 갖추기 시작했음 역시 확인할 수 있었다. 한 번 생명력을 갖춘 대상은 자신만의 순환계를 이루기 시작한다. 한국건축의 가치를 고려해 건물의 존속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논의와 대중과의 소통을 시도하는 움직임, 과거와의 공존을 모색하는 리노베이션의 시도들은 서울이 자신의 생애 주기 중 한 분기를 끝냈음을 보여주는 징후라 여길 수 있을까. 서울에 느끼는 삭막함이 이 도시의 전부가 아니도록 하는 목소리들이 어떤 순환의 계를 완성할지 이다음 분기가 진행되기를 두고 보는 기다림이 필요할지 모르겠다. 서울의, 한국의 빠른 속도가 영영 지속될 것이 아니라는 믿음을 열어두고, 현재의 상태를 바탕으로 과거와 미래의 공간을 가늠하며 변화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따져보는 것. 지도 위의 어트랙션 포인트가 아니라 공간, 도시 일반에 대한 전망을 그리며 어떤 실천을 놓아볼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일. 이 고민에는 현재를 조금 더 뚜렷이 살펴보고, 분명히 없을 리 없는 서울의 다정한 면모를 찾는 일도 포함된다. 관광만이 아니라 서울에 정말 살아가는 사람들만이 말해줄 수 있는 이 도시의 양식들 말이다. 현재의 상태를 중심으로 서울을 바라보았을 때 우리가 찾을 수 있는 것들은 사실 전혀 적지 않다.
서울이 이동하는 사람들의 도시가 되어왔다면, 이곳에 머물고자 하는 고민은 어떻게 이루어져 왔을까? 서울 곳곳의 도시건축을 조망하는 오픈하우스서울OPENHOUSE SEOUL은 매년 10월, 서울과 인근 곳곳의 한국을 대표하는 근현대 건축물을 소개하는 행사로, “평소 방문하기 힘든 장소를 개방해 한시적이나마 도시의 문턱을 낮추고, 도시를 관광이 아니라 일상의 체험으로 누릴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자” 하며, “또한 도시의 장소를 재발견함으로써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발견하고 우수한 건축물, 디자인, 예술을 경험하는 기회를 제공해 그 이해를 돕기 위한 건축 축제”로 건축 전문기자, 기획자 등 8명의 오거나이저와 함께 운영되는 비영리단체로 운영되고 있다. 2014년부터 개최된 오픈하우스서울은 “도시를 둘러싼 환경, 건축, 장소와 예술을 담은 공간을 개방하고 발견”하여 시민들에게 도시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오픈스튜디오와 오픈하우스 두 카테고리로 나누어 공간을 소개하고, 각각의 공간에 현장 탐색 프로그램을 실시하여 공간에 담긴 이야기와 건축적 가치 및 배경을 소개한다. 관람객은 오픈하우스 프로그램을 통해서 평시 개방되지 않고 일반인이 접근할 수 없는 사옥 및 고택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 오픈스튜디오에서는 서울에 위치한 여러 건축사무소의 실내를 방문하여 각각의 건축소가 가진 성격과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기회를 제공한다. 2023년도 오픈하우스서울은 제4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와 함께 연계하여 개최되었으며 동대문 디자인플라자(이하 DDP) 100주년 기념으로 DDP 공간 탐색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쉽게 알지 못하는 공간을 일반 시민들에게 개방해 일상의 체험으로 제공한다는 점에서도 행사의 의의를 찾을 수 있지만, 오픈하우스서울이 사람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몇 개의 건축물을 넘어 이들이 자리한 도시라는 장 자체라는 점에서 더욱 뜻깊다. 일반이 접근하기 어려운, 혹은 일부 소수 계층만이 향유할 수 있는 ‘우수한’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흐르고 있는 시간 안에서 한 자리를 점유하는, 점유하고자 하는 도시 곳곳의 고민을 공유하고자 하는 것이다. 버티는 것이 아니라 자리를 잡아보는 것. 한 공간에 머물고, 시간을 보내고, 지나온 시간을 되새겨보고, ‘이곳’의 ‘한’ 자리를 기억할 수 있게 구성된 오픈하우스서울의 프로그램은 “도시와 소통”하고 “건축을 만나며” “이야기를 발견”하기를 소원한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한 공간을 방문하고 공간에 대한 기억을 나누는 것은 ‘우리’의 감각을, 공공의 감각을 되새기게 한다. 현대 도시의 속도에 겹쳐 코로나 시기를 보내는 동안 여럿과 공유하는 일상의 감각, 공간의 감각이 사라지고 여러 측면에서 단절과 고립이 생겨났다. 한 번의 경험 이후로 타인과 자신 사이의 단절을 요구하거나 만들어 내는 일이 빈번해졌고, 그만큼 공공에 대한 인식도 옅어졌다. 그러나 도시에서의 머무름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함께 향유하고 공존하는 공공시설을 지울 수 없다. 공동의 공간이 도시의 기반 시설로 자리하고 공적 자산으로 보호되지 않는다면 도시는 도시로서 유지되기 어려울 것이다. 도시란 완결의 공간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유동하는 흐름 내에 계속해서 변화하며 발생하는 상태와도 같기 때문에, 그 내부에 변화를 만들어내는 사람들, 변화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자리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도시와 변화는 둘 다 서로 상태의 일부로서 존속한다.
오픈하우스서울의 시도가 개인이 도시에 머무는 순간들을 포착하고, 이들을 공공의 기억으로 전유하며 ‘우리의’ 도시라는 감각을 만들어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더불어 시민들이 하나의 공간을, 도시를 누릴 수 있게끔 환경을 조성하는 일로 확장되기를 기대한다. 서울의 새로운 국면은 이미 진행되고 있다. 국내외로 서울을 조망하는 이야기가 들려오고 서울에서 다년간 거주한 경험을 회고하는 외국인의 저서도 다수 출간되고 있는 지금, 여러 변화가 서울을 관통하고 있는 것 같다.
1고 2024.05.15
1.5고 2024.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