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名醫)와 용의(用醫)
몇 년 전에 명의록(名醫錄)을 만드는 회사라며 진료 중에 영업사원이 찾아온 적이 있다. 명의의 기준이 무엇인가 물으니 한 지역에서 20년 이상 진료하고 환자가 많으면 해당된다고 한다. 지역에서 유명한 의사들을 소개하는 책자를 만든다며 등재하는 비용이 광고비에 비해 저렴해서 (?) 몇백만 원 밖에 안 든다고 안내를 한다.
사실 이름난 의사, 명의 되기는 모든 의사들의 꿈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의사로 오래 활동을 하다 보면 생각이 조금 바뀐다. 다른 의사들이 치료 못하는 병들을 잘 고치는 용한 의사가 되고픈 욕심이 생긴다. 사실 용한 의사가 된다고 환자들이 알아주는 것도 아니다. 환자입장에서는 그저 병에 걸려와서 나아서 가면 되니까. 여러 의료기관을 전전하다가 못 고친 병을 고쳐주면 환자입장에서 비교 가능하므로 실력을 알게 되지만, 초진환자는 난치병이든 쉬운 병이든 그게 그거다. 하지만 의사의 입장에서는 다른 의사가 잘 못 고치는 병을 고심 끝에 고쳤을 때 그 희열이 만만치 않다.
이렇듯 욕심이 돈이나 명예보다도 직업적인 욕심으로 바뀌고 치료에 어느 정도 자신이 생기면 환자는 늘 보고 싶은 만큼 볼 수 있다. 환자를 많이 보려는 욕심은 줄고 관심이 있는 병을 가진 환자를 골라서 보려 한다.
이쯤 되면 진료가 취미로 둔갑하게 되는데, 가끔 환자를 보다 보면 평범한 동네 의사인데도
실력이 남다른 숨은 대가의 치료를 접하고 감탄하곤 한다.
또 대학병원에도 명성이 크지 않은 교수인데도 간혹 이런 용한 의사들을 본다.
치료 성공사례를 논문에 자기 이름 석자라도 남겨놓으면 좋을 텐데 , 희한하게도 이런 의사들
통상 성격이 괴팍한 경우가 많다. 명의들이 논문이나 학회활동에 열심이고 돈도 잘 버는 것과 비교하면
이런 의사들이 기업화한 경우 빼고는 경제적으로 큰돈을 벌은 사례는 별로 못 보았다.
의사 인생의 진정한 성공은 명의가 되고 경제적으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의사들이 인정하는 정도가 되면 직업인으로서 의사 인생은 성공한 거라 생각된다.
참고로 옛날 얘기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 나온 명의 화타의 얘기이다. 조조가 두통이 심해 화타의 의술이 뛰어나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불러들인다. 화타는 도끼로 두개골을 가르는 개두술을 권했고 이에 자신을 해치려 한다고 의심을 품은 조조는 그를 감옥에 가두고. 그만 옥중에서 죽었다고 한다. 내용 중에 조조와의 대화가 기록되어 있는데, 화타는 3형제 중에 막내였는데 위로도 의술을 하는 두 형이 있었다고 한다.
조조가 화타에게 물었다.
"그대가 세상에서 병을 가장 잘 치료하는가?"
화타가 답하길
“ 아닙니다. 저는 환자의 병이 심해지면 그제야 알고 진기한 약을 먹이고 때론 수술도 합니다.
사람들은 제가 자신의 큰 병을 고쳐 주었다고 믿지만 제 둘째 형님이 저보다 더 낫습니다.
"그럼 그대의 둘째 형이 세상에서 병을 가장 잘 치료하는가?"
"아닙니다. 둘째 형님은 병세가 미미할 때 벌써 알고 치료해줍니다. 병세가 미미할 때 치료해주다 보니 환자는 큰 고마움을 모릅니다. 저나 둘째보다 가장 의술이 뛰어난 사람은 큰 형님입니다. 큰 형님은 병이 생기기도
전에 치료하므로 환자는 병에 걸렸었다는 것도 모르고 의술이 가장 훌륭한데도 불구하고
소문이 나지 않았습니다."
*사전에서 찾아보면 원래 명의란 말은 있지만 치료를 잘한다는 뜻의 용한 의사란 뜻으로 쓸만한 의사, 용의(用醫)란 말은 원래 없었는데 내가 만든 신조어다. 사전에 있는 다른 한자말로 용의(庸醫)라 함은 의술이 변변치 못한 의사를 말함인데 어르신들이 치료를 잘하면 "용한 의사"라는 말을 쓰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명의보다는 용한 의사가 되고 싶은 맘이 드는 거는 의사로서 사치스러운 생각 일까?
여하튼 병이 생기기도 전에 고친 의사는 유명해지지 않는다.
#애경내과 #신도림역 내과 #구로동 내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