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근히 달고 쫄깃하지만 담부턴 기계로
설 어름에 토종쌀로 떡을 했다. 쌀은 한양조와 북흑조.
한양조는 그 특유의 은은한 핑크빛이 예쁠 것 같아서고 북흑조는 개량종 쌀과 가장 비슷한 쌀일 것으로 보아서이다.
떡이란 것은 만들기가 어렵지가 않다. 그저 손이 많이 갈 뿐이다.
쌀을 물에 불리는 것부터 시작이다. 겨울이면 하룻밤 정도 불려도 되는데, 물에 불리는 시간이 길어지면 쌀에서 쉰내가 나기 시작한다. 그래서 여름에는 짧게는 서너시간 정도만 불린다.
쌀이 불면 이제 채반에 받쳐 말린다. 물기가 적당히 빠져야 가루를 낼 수 있다. 이렇게 불렸다가 물기를 빼면 20~25% 정도 무게가 불어난다. 방앗간 표준은 800그람 쌀이 1킬로 쌀가루가 되어 나오는 것.
사실 얼터렉티브살롱에 있는 업소용 믹서를 써도 된다. 처음 하는 것이라 전문가의 손길에 맡긴다는 생각으로 방앗간에 갔는데 앞으론 직접 할 것 같다.
가루를 낼 때 미리 소금을 뿌리는 방법과 아닌 방법이 있다. 가루를 낼 때는 떡을 할 것이라는 이야기고, 떡을 할 때는 다소간의 소금이 들어가니까, 금방 떡을 지을 것이면 아예 소금을 뿌려서 가루를 낸다는 방앗간 사장님의 말씀.
한양조와 북흑조 두 가지를 가루 내는데 하나는 소금 투여, 하나는 안 투여다.
이것은 한양조로 만든 설기떡이다.
설기떡은 진짜 가루까지 있으면 하나도 안 어렵다. 설탕 적당량, 소금 한두 꼬집 넣고 잘 섞어서 찜기에 올려 적당한 시간 찌면 끝. 한 이십분 정도면 완성이다. 시간도 엄청 민감하지 않아서 조금 더 찌더라도 크게 바뀌는 게 없다. 단, 전문 찜기를 사용해서 기화된 물방울이 떡에 되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은 중요하다. 안 그런 덕에 물에 젖어 '떡진' 부위가 생겼다.
맛은 떡집에 맡긴 것이나 진배 없는 훌륭한 백설기 맛. 너무 심하게 언더쿡 되거나 소금량이 너무 많은 것이 아니라면 사실 별로 달라질 여지가 없는 거 같다. 갓 쩌낸 떡은 갓 지은 밥 만큼이나 진리.
사진엔 잘 표현이 안 되었지만 핑크빛이 은은한 한양조설기떡은 스스로도 매우 만족스러웠다. 이걸 나눠먹지 못한 게 아쉬울 만큼.
사실 떡 만들 쌀가루는 강릉의 한주미식회에서 떡국 모임을 하기로 했기에 직접 떡을 한 번 만들어보겠다고 한 시도인 것이다. 백설기에 만족하지 않고 가래떡 도전.
모든 과정은 다 똑같고 나온 백설기를 치데서 가래떡 모양을 만들면 된다.
현대에 이런 작업은 기계를 쓴다. 옛날에도 떡메를 쳐가면서 했지 사람 손으로 조물조물은 법도에 없는 방식이다. 왜인지는 해보면 안다. 이걸 손으로 한다는 건 인대와 관절을 그대로 갈아넣는 것과 같다. 떡반죽은 빵반죽과는 비교가 안 되는 격한 저항이 느껴진다. 이걸 미끈한 방앗간 가래떡같이 뽑으려면 당장이라도 손목이나 팔꿈치가 망가질 것 같아 대충 모양만 만들었다. 못 생겼지만 가래떡도 파는 것에 비해서 달착하고 맛있다. 은근한 향도 있고.
내년에도 떡국은 필히 토종쌀 떡으로 해야겠다 싶은데 차마 내 손으론 못하겠고, 천상 방앗간 가져가서 부탁해야겠는데 최소 주문수량이 떡 기준으로 6Kg이니 공동구매 팟이 꾸려져야 한다. 올해 떡국 드신 분들 반응을 생각하면 그 정도는 어렵지 않을 듯.
황태육수 내서 떡국도 끓이고.
잘라서 떡구이도 해먹고. 구워먹기엔 매끈한 떡보다 이런 떡이 더 좋네.
밥도 그렇지만 떡도 토종쌀의 은근한 단맛과 향이 잘 살아있는 동안은 확실한 격차가 있다. 어디 유명한 떡집이라면 토종쌀떡을 시도해볼만 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