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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은 별 Jul 17. 2024

내 생에 가장 로맨틱한 소원 in프라하

10년 전 소원이 이루어졌다. 

로맨스와 스릴러 중에 뭐가 좋냐고 하면 나는 여전히 로맨스다! 멜로가 체질인 건 아니지만 나이가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몸이 베베꼬이지만 미소가 슬슬 나오는 그런 달달함에 자꾸 눈이 간다. 로맨스가 좋아서였을까 나는 어쩌다 프라하를 두 번이나 다녀왔다.

 

처음 프라하를 갔던 것은 10년 전이었다. 여행이라곤 아시아지역이 전부였던 나의 첫 장거리 비행이자 첫 유럽여행이었다. 그 당시엔 동유럽은 유럽을 많이 가본 사람들이 나중에 가는 여행지였는데 나는 첫 여행지가 동유럽이었다. 물론 나의 결정과 의견보다는 전적으로  친한 회사 언니들의 추진력에 반은 얹혀 막내로 실려 갔다는 게 더 맞을 수도 있다. 여행 계획은 그저 언니들이 가는 데로 갈 예정이었다 보니 무 준비 무계획 첫 여행을 그저 설렘만 가득 앉고 갔다.

 

동유럽은 나에 눈엔 '이것이 유럽이다'라고 말해주고 있는 듯 모든 게 다 새롭고 경이로웠다. 건축물은 물론이거니와 특히 그 당시에 동유럽엔 아시아 사람이 많지 않다 보니 제대로 유럽에 온 느낌이 났다. 빈을 시작으로 잘츠부르크를 지나 부다페스트를 넘어 프라하에  온 그날 온 동네가 궁전과 같고 도로 위로 전차가 다닌 그곳은 어느 나라에 공주가 된 듯 내 마음을 달콤하게 달아오르게 하기 딱 좋았다.

빈에서 4시간 동안 타고 온 버스! 사실 난 그 버스마저도 신기하고 좋아서 창밖을 구경하기 바빴고 프라하에 발을 딱 내딛는 순간도 너무 좋아서 어서 돌아다녀야지라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여행은 혼자 온 것이 아니었다 나보다 많게는 5살 이상 많은 언니들과 함께였기에 나의 계획 나의 맘은 그저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만 설레고 있었다. 버스에서도 깊은 잠을 자던 언니님들이 달뜬 나를 보며 조심스레 말했다

 

"너무 피곤하지 않냐? 우리 숙소로 들어갈래? 가서 좀 자고 이따 밤에 다시 나오는 건 어때? "

 

아니 언니들 이제 막 발을 디뎠는데 들어가자니요. 이제 2시가 좀 넘었을까? 시차 적응도 안된 데다  4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온 서른 살 중 후반이었던 언니님들은 막내의 맘도 모르고 피곤함을 어깨에 이고 지고  호텔 방향으로  이미 몸을 자연스럽게 돌리고 있었다. 나는 이대로는 호텔로 들어간다는 건 말도 안 될 일이었다. 이렇게 초롱초롱한 눈과 멀쩡한 나의 컨디션과 그리고 눈앞에 이렇게 멋진 프라하가 나를 반기고 있는데 이 마음을 그냥 프라하 입구에 던져두고 방으로 간들 난 잠이 일도 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럼 저는 혼자 프라하 성까지 가보고 올게요! 숙소에서 쉬고 계세요" 

"진짜? 안 힘들겠어? 이따 같이 가도 되는데~~ 그래 그럼  우린 숙소에서 쉬다 이따 나가면 연락할게! "

 

첫 유럽이며, 준비는 일도 안 하고 언니들만 믿고 왔으면서 영어도 그땐 잘할 줄도 몰랐으면서 무슨 패기로 혼자 간다고 했는지 지금이었다면 나도 언니들처럼 여유로움과 휴식을 택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땐 그냥 프라하가 좋아 용기를 쥐어짜 본 것 같다. 아무것도 모르는 막냉이를 위해 미리 여행을 준비했던 언니들의 친절한 구두 길안내를 꾹꾹 기억저장소에 담아  나는 프라하성으로 걸어갔다. 혼자라도 괜찮았다 아니 혼자라서 너무 좋았다 온전히 모든 게 내 것이 되는 시간! 이래서 혼자 여행을 즐기는 사람도 있겠구나~설렘이 가득가득 채워졌다.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들으며 걷는 프라하 시내는 나의 기분을 나의 발끝을 한껏 하늘 위로 올려놓기에 충분했다. 너무 행복했다. 아직도 그 순간은 생생한 모습으로 내 마음속에 저장되어 있다.

 

아무 준비 없이 따라나섰던  여행길! 프라하성, 까를교 말고 나는 아무 정보도 없었지만 여행에 정보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내 눈으로 담아지는 순간이 진짜였다.


지금이면 스마트폰이면 되었지만 10년 전엔 카메라였다 나름 인기 있던 올림푸스 PEN을 들고 다니는 거울샷도 찍을 줄 아는 나도 그땐 유행 좀 아는 젊은이였구나 
나의 시간을 한참이나 잡았던 까를교 위의 악사들! 모든 풍경이 그들의 선율이 정말 황홀했다. 연륜이 깃든 음악 소리! 


내가 프라하에서 이 낭만을 오롯이 혼자 담을 줄 상상도 못 했지만, 이 순간을 누리게 해 준 피곤한 언니들에게 솔직히 매우 감사하긴 하다. 내가 프라하를 더 좋아하게 되고 기억할 수밖에 없는 건 혼자 오롯이 맘껏 누볐기 때문은 아녔을까? 그리고 우연히 만난 까를교 위 독일인 친구!  물론 그땐 그가 그저 한국에 관심이 많은 한국말 잘하는 외국인이라고 생각했지만 돌아보니 나의 소원을 이루어지게 해 준 사람이었다. 가끔 생각한다. 그녀는 천사가 아니었을까? 

 

까를교를 걷다 보면 우르르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이 있다. 한국이었으면 그냥 관심 없다는 듯 쿨한 척하며 지나갔을 텐데 여행지에선 뭐 하나도 궁금함에 나도 기웃거렸다.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뭔가를 만지고 있었다. 한 곳만 바래진 게 정말 많은 사람들이 만진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많은 사람들 만지고 나도 만졌던! 



뭐에 홀린 듯 영문도 모르는 그것을 나도 만져야 할 것만 같아  줄을 서있는데 뒤에서 누군가 나를 톡톡 쳤다.


"한국인이세요? "


나는 한국말이 들리니 반가움에 고개를 돌렸는데 그는 외국인이었다. 한국말을 꽤 잘했다. 그는 원래 한국에서 회사를 5년 넘게 다니다 현재는 쉬고 있는 중이라며 여기 뭐 하려고 서있는 줄 인지 아냐고 물어봤다. 나는 순진한 얼굴로 모른다고 했더니 그는 정말 이유도 모르고 여기 서있는 거냐며 한참을 웃었다.  그는 나를 줄 맨뒤로 다시 끌고 나와 끝쯤에 줄을  다시 서게 한 후  왜 사람들이 서있는지에 대해 설명을 해줬다.


"저 걸 만지기 전에 이루고 싶은 소원을 말하고 만져야 해요. 그럼 그 소원이 이루어진데요! 진짜로 진심으로 빌어봐요! 나도 이루어진 게 있었거든요"


그리고 그는 무슨 요정처럼 좋은 여행 되라며 자기는 기차 시간이 다돼서 다시 프라하성을 가야 한다며 떠나버렸다. 나는 앞에 한 3명쯤 남을 때까지 무슨 소원을 빌어야 할지 모르다가 갑자기 생각이 났다.


"지금은 혼자 왔지만 나중에 꼭 사랑하는 사람과 프라하를 다시 오게 해 주세요"


그리고 내 차례가 왔을 때 소원을 말하고 쓱쓱 나도 사람들처럼 문질 문질 했다. 그땐, 소원이 이루어질 거란 기대보단 그 순간이 좋았고 마술과도 같은 그 공간이 그저 좋았었다. 그리고 그 소원을 빌었는지도 모른 채 나의 첫 유럽여행은 마무리가 되었고 그렇게 십여 년이 흘러갔었다.


10년은 생각보다 길었다. 내가 아일랜드를 다녀온 지도 3년이 훨씬 넘었으니 시간은 늘 빠른 것 같다. 

나는 남편과 2019년 3월 퇴사를 하고 아일랜드로 떠났었다. 코로나로 2년을 다 채우지 못하고 돌아오긴 했지만 그래도 1년 넘게 아일랜드에서 살았던 그 시간은 남편과 나에게는 꿈같은 시간이었다. 아일랜드에 있었기에 유럽을 가는 일은 한국보다 훨씬 쉬웠고 저렴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엄두도 못 내고 늘 사진과 영상으로만 보았던 유럽 크리스마스마켓을 가보기로 했다.  

우리는 2019년  겨울 유럽의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마켓을 보겠노라 비행기에 올라탔다. 빈을 지나 잘츠부르크를 지나 뮌헨을 지나 크리스마스 당일 운 좋게 프라하를 만났다. 까를교 위에서 바라본 두 번째 프라하는 여전히 아름답고 감동적이었다. 사실 그때까지는 기억하지 못했다. 그때 내가 소원을 빌었다는 것을! 그리고 까를교에 다 달았을 때 여전히 울려 퍼지고 있는 까를교 위의 음악을 들으며 행복에 젖어 있을 무렵 웅성웅성 여전히 몰려 있던 사람들을 보고서야 나는 생각이 났다! 10년 전 나의 소원이!! 


"자기야~~~~ 나 이제 생각났어!! 나 2010년쯤에 프라하 왔었다고 했잖아!! 그때 내가 저기서 소원을 빌었거든 들어준다고 해서! 사랑하는 사람하고 여기 다시 오게 해 주세요 했거든~ 근데 대박! 소원이 이뤄졌어!! 자기랑 지금 우리 여기 까를교 위잖아! 말도 안 돼!!

진짜 신기하다! 나는 한 오십 살 넘어서 은퇴할 때 되면 오지 않을까 했었는데!! 이렇게 자기랑 있으니 너무 신기하고 그리고 너무 행복하다"


소원이 이루어진 것도 좋았지만 나만의 가장 로맨틱했던 유럽의 공간에 내 최고의 사랑과 함께 다시 서있다는 게 너무너무 행복했다. 그때 나에게 귀띔해 준 외국인 청년은 나의 수호천사였을까? 로맨틱한 상상을 해보며 그렇게 여전히 프라하는 아름다웠고 낭만 그 자체였다.


남편과 이번에는 스마트폰으로 다시 담았던 낭만 그 자체의 프라하 

여전히 그대로 온전히 낭만적이고 아름다웠던 프라하! 이 모든 걸 남편과 함께 했음에 그저 행복했다.

여행은 언제나 좋다. 많은 추억 소소한 이야깃거리를 남겨주는 여행이 참 좋다. 예전에 프라하는 나의 기억 속에만 남아있는 시간이었는데 이제는 남편과 함께 나눌 거리가 생겼고 새로운 추억이 남겨졌다. 

이번에는 남편과 둘이 함께 각자 소원을 빌었다. 더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빌어본 소원이 언제쯤 이루어 질지는 모른 지만 기다려진다.


 


나의 소원을 이루어준 프라하!

영원히 잊지 몰할 나의 기억 그리고 우리의 추억! 여전히 아름다울 끝까지 로맨틱함으로  채워질 프라하

참 좋았다!

 

PS: 다시간 프라하에 10년 전과 달라진 게 있었다면, 프라하성 그 엄청난 뷰를 담은 그곳에 스타벅스가 생겼다는 것이다. 나의 로맨틱함을 상업성이 감히 파괴하는 건 아닌가 잠시 속상했지만 프라하의 스벅은 프라하가 스벅을 품어준 듯 자연스러웠다! 인정! 

결국 그냥 프라하라서 다 용서되고 다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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