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오모에서 인생 첫 부부싸움하기
2015년 우리는 이탈리아로 신혼여행을 떠났고, 신혼여행을 이탈리아로 선택했던 것 로맨틱한 도시 피렌체 , 물의 도시 베니스, 그리고 로마가 있었기 때문이다. 첫 장거리 여행이자 첫 유럽이자 신혼여행이었기에 설렘과 떨림이 공존하는 우리 부부의 첫 장거리여행이었다.
우리의 신혼여행은 내가 준비한 순도 100% 자유여행이었다. 비싼 호텔 보단 뷰가 멋진 에어비엔비까지 찾아내며 나름 열심히 준비했고 특히 내가 가장 힘을 주고 애쓴 도시가 피렌체였다. 냉정과 열정사이로 유명해진 두오모 성당을 비롯해서 발길 닿는 곳이 로맨틱하며 맛난 먹을 것들이 즐비한 피렌체는 그야말로 꿈에 그린 아름다운 유럽 도시였다. 숙소도 두오모 성당이 보이는 곳으로 알아보고 로맨틱한 신혼여행을 위해 나의 준비는 완벽했다. 물론 도착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캐리어를 끌고 하는 유럽여행은 처음이었던 우리에게 피렌체의 우둘투둘 한 거리는 그다지 낭만스럽지 못했다 아스팔트가 아닌 잔 돌들이 깔려있는 유럽식 거리들은 캐리어 바퀴들을 아주 쉽게 돌아가게 만들어 이동 하나하나가 참 쉽지가 않았다. 아마 호텔이었다면 엘리베이터쯤은 있었을 테고, 성급이 좋은 호텔이었다면 객실까지 짐을 들어주는 호의쯤은 심심치 않게 받았을 테지만 내가 예약한 곳은 에어비엔비를 통해 예약한 3층짜리 숙소였다 보니, 엘리베이터는커녕 숙소 입구도 못 찾아 건물 주변을 20분쯤 헤맨 거 같았다. 10바퀴쯤 돌다가 간신히 찾아낸 입구를 들어서자 놀리기라도 한 듯 나타난 비좁은 계단, 목을 타고 나오는 탄식을 꾹꾹 눌러 담고 케리어를 낑낑대고 끌고 올라가야 하는 전통적인 유럽식 가정집이었다. 결국 고장 나 버린 캐리어 바퀴에 괜한 탓을 하며 삐죽 대고 있는 남편의 목소리에 나의 신경도 괜히 덩달아 올라섰다. 즐거운 감정을 어렵게 꺼내보지만 자꾸만 들려오는 한숨에 마음이 좀처럼 웃어주지는 않았다. 그렇게 어렵게 찾은 출입문 그땐 그랬다. 그래 어서 이 무거운 캐리어라도 놓고 좀 쉬자, 제발 숙소라도 편하게 되어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문을 열었다.
"우와 집 예쁘다 "
먼저 들어선 남편의 탄성에 그제야 마음이 조금 녹아내렸다. 유럽식 인테리어와 고즈넉한 소파들과 엔틱 한 느낌의 공간이 따뜻했다. 그리고 베란다로 보이는 테라스에서 스치듯 보이는 두오모성당의 모습에 둘 다 눈이 휘둥그레저 캐리어는 뒤로 하고 어린아이 마냥 창문 너머 베란다를 향에 뛰어가고 있었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미친 두오모 성당 뷰에 어렵고 힘들고 지치게 만들었던 직전의 상황들이 한순간에 눈 녹듯이 사라졌다.
CG를 보는듯한 바로눈앞에 두오모성당이 바로 보이니 기분이 이상했다. 남편과 나는 ‘우와 뷰 미쳤다’를 외치며 서로 부둥켜 앉고 이미 신나 있었다. 힘들었던 마음은 로그아웃되고 설레고 신나는 마음들이 다시 재부팅되었다.
다행이었다.
짐을 정리하고 우리는 진짜로 두오모 성당을 마주하기 위해 숙소를 나갔다. 멋진 뷰를 보고 캐리어 없이 자유로운 몸으로 나온 유럽식 자갈길은 운치 있게 다가왔다. 좀 전엔 그렇게 미워 보였던 돌들도 예뻐 보이고 이제야 피렌체가 눈에 들어왔다. 두오모 성당을 향해 가는 길에서 노점인 듯 아닌 듯 좌판 같은 곳에서 특이한 병맥주를 너무 싸게 팔고 있었다. 맥주를 좋아했던 남편과 나는 무거운 줄도 모르고 싸다는 생각에 10병을 사서 가방에 넣었다. 내가 두병을 넣고 나머지는 남편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우리는 신나는 발걸음으로 두오모 성당을 향해 갔다. 두오모 대성당 꼭대기 쿠폴라를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표를 끊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통합권을 미리 예약을 해놓은 나 자신을 칭찬하며 우선 사람이 제일 많다는 조토의 종탑 꼭대기를 먼저 오르고 그리고 내려와서 찬찬히 나머지를 둘러보기로 했다. 조토의 종탑은 400개의 계단을 올라야 볼 수 있다는 걸 그땐 미처 몰랐다.
그저 나는 피렌체에 왔다는 설렘과 신남에 400개의 숫자가 주는 부담감은 애초에 없었다. 그까짓 거 올라갈 수 있지 뭐 긍정적인 마인드로 할 수 있다를 외치며 호기롭게 아니 엄청난 속도로 신나서 올라갔다. 400개의 계단 위에 펼쳐질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렸던 냉정과 열정사이에서의 그 멋있는 풍경을 나도 이제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내 다리는 빛의 속도로 위로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꼭대기 즈음에 갔을 때쯤 돌아보니 남편이 보이지 않았다. 왜 뒤에 없지 싶어서 나는 올라오던 사람들을 보내고 몇 계단을 아래 내려가니 그제야 올라오고 있는 남편이 보였다.
“뭐야 체력이 그 모양이라서 되겠어!! 남자가 그 정도밖에 안된다니 실망이야 ~ 날 봐 나는 한 번도 안 쉬고 이렇게 먼저 올라왔는데 ~안 되겠네~우리 남편 다시 내려갔다 와야겠어!!~돌아간다 실시!!~~”
신나서 남편에게 와다다 말해버렸지만 평소 같으면 같이 깔깔거리거나 본인이 더 잘 간다며 투덜이라도 거렸을 텐데 신난 나의 텐션과는 사뭇 다른 낯선 남편의 표정에 그제야 나는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사늘하게 식어있는 표정에 나 또한 당황했다.
“자기야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뭔데?”
“…………”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남편은 나와 눈은 마주치지도 않은 채 나를 향해 손을 쭉 펴서 훠이 훠이 저리 가라는 손짓만을 했다.
“왜 그래? 다 올라왔잖아 몇 걸음만 더 가면 다 볼 수 있어 가자 나가서 보자~”
남편 팔을 끌어당기는 순간 엄청난 목소리가 공간에 울려 퍼졌다.
“혼자 보라고!! 신난 너 혼자 보고 오라고!!!”
화가 잔뜩 난 남편의 목소리가 내 귓가를 사정없이 때렸다. 달뜬 기분이었던 내 맘이 순식간에 바닥에 내동댕이 쳐지는 것 같았다. 갑자기 이러는 남편 맘을 알리가 없던 나는 벼락을 맞은 기분이었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갑자기 왜 저러는지? 걸어오는 길에 외국인하고 싸운 것도 아니고 왜 저러는지 정말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었다. 내 기분에도 검은 물이 뿌려진 듯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 같이 나빠진 내 기분은 아름다운 두오모 성당 뷰를 깡그리 회색빛으로 갈기갈기 찢어 놓은 기분이었다. 그런 내 기분을 주워 담을 생각은 없었다. 우선 그 자리를 피해 풍경을 이 있는 밖으로 나갔다. 그토록 기대했던 두오모성당의 뷰였건만 삐뚤어진 마음덕에 뷰가 보일 리가 없었다. 그렇게 기대했던 두오모인데 이런 아름다운 뷰를 함께 보지 못하는 게 너무 속상했다. 크게 숨을 한번 들이쉬고 다시 나는 남편에게 갔다.
“ 남편 왜 그래 갑자기 기분이 왜 그렇게 된 거야? 말을 해야 내가 알지? “
“ 됐어! 그냥 혼자 봐 난 그냥 여기 있을게 보고와 보고 오면 같이 내려가자 “
남편은 정말 아무것도 보지 않고 망부석처럼 안쪽 벽에 걸터앉아 핸드폰만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피렌체에서 이 풍경을 보지도 않고 잔뜩 부어오른 얼굴을 하고 앉아 있겠다는 남편의 표정은 정말인지
여행기분을 딱 뭉게 버리기 참 좋은 타이밍이었다. 나도 나름 참고 영문도 모르고 버럭질을 당한 내 맘은 생각도 안 하고 왜 그러냐고 물어보고 있는 나에게 여전히 삐뚠 마음으로 날 선 모습을 들이대는 모습에 나도 같이 화가 났다. 정말 너무 멋있었던 이 풍경을 이런 분위기에서 보게 될 줄은 나도 몰랐다.
왜 저러지라는 생각으로 이 좋은 곳에서 갑자기 급 식어버린 분위기에 카메라 셔터 소리 딱 한번 눌러보곤
나도 굳어진 표정으로 두오모 보기를 접었다. 꼬깃꼬깃 구겨진 내 표정과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피렌체의 모습은 한없이 아름다웠다.
“ 내려가자 “
냉랭하게 식어버린 우리 사이 기운은 이미 이 여행은 여기 까지라는 선이라도 그어낸 듯 설렘과 신남으로 올라오던 그 비좁은 계단을 적막한 공기만 담아 터덜 터덜 내려갔다. 우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직 볼게 더 남았는데도 두오모 성당 내부도 안 봤고 두오모 성당 꼭대기도 올라가야 하고 할게 이렇게나 많은데 도저히 이 기분으로 뭘 할 수 있겠냐 싶어 우린 그렇게 두오모를 등지고 걷기 시작했다. 너무 기대를 한 내 탓인가? 근데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무슨 이유로 화가 났는지도 모르고 나의 피렌체 여행을 그것도 신행인데 이렇게 마무리 지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감정이 복받쳐 올라왔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한참을 걷는데 도무지 왜 이렇게 돼버린 건지 발끝부터 치밀어 오른 서운함이 결국 눈물로 터져 나와 버렸다. 피렌체 한복판에서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 아니 뭐 때문에 그런지 말은 안 해주고 화부터 내고 이게 뭐야 이게 무슨 신혼여행이야"
결국 나는 남편에게 왜 그러냐며 피렌체 한복판에서 꺼이꺼이 울며 화를 내버렸다. 연애하면서도 한 번도 싸운 적도 없고 크게 화낸 적도 없는 내가 해외에서 그것도 신혼여행지에서 울면서 소리치니 남편도 그제야 왜 우냐며 당황한 표정으로 나의 울음을 멈추기 위해 아등바등하고 있었다.
이게 다 너 때문이잖아라고 쏘아붙여 주고 싶었지만 나도 궁금했다. 도대체 왜 그런 행동을 한 건지 말이다.
그래서 울먹이며 남편에게 왜 피렌체는 보지도 않고 나한테 왜 그러는 건지 이유라도 말해달라며 눈물 콧물을 흘리며 피렌체 한복판에서 보기 좋게 울고 있었다 나는...
남편은 서러움에 눈물을 훔치고 있는 나에게 이거 들어보라며 본인이 메고 있던 가방을 내 손에 쥐어 줬다.
그 가방을 받는 순간 나는 가방에 돌덩이 백개가 들어 있는 듯한 엄청난 무게감에 나도 모르게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 뭐야 가방이 왜 이렇게 무거워? “
“ 나 이거 메고 거기 올라간 거잖어. 근데 자기는 뒤 한번 안 돌아보고 신나서 가더라? 중간에 잠깐 쉬는데 자기가 없어지고 진짜 나는 정말 힘들어 미치겠는데 막 자기가 늦게 왔다느니 하며 막 놀리며 말하니 나도 모르게 기분이 너무 나빠서 화가 났나 봐 미안해 "
정말 상상도 못 했다. 맥주병 8개… 그 무게를 오롯이 짊어지고 올라오는 남편을 챙길 생각은 못하고 피렌체에 왔다는 기분에 신나서 올라간 것도 모자라 놀려댔으니 내가 얼마나 얄미웠을까? 그제야 부끄러움과 미안함이 밀려왔다. 가방이 안 끊어진 게 다행일정도의 무게라 할 말을 잃었다.
“ 남편 미안해 몰랐어 나는 피렌체가 너무 좋아서 올라갈 생각만 했지 맥주 생각은 못했어 근데 가방 장난 아니다…”
“나는 군대서 행군할 때도 이 정도 무겐 아니었던 것 같은데 정말 죽을 뻔했다고.... 나도 진짜 미안해 감정 조절이 안됐다 순간적으로 미안하다 “
눈물이 뚝 그쳤다. 그리고 어이없는 웃음이 자꾸 났다. 맘이 풀린 나는 맥주병은 반으로 나눠 담고 피렌체를 걸어 야경을 보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너무너무 기대가 커서 피렌체보다 더 사랑하는 남편을 잊은 덕분으로 피렌체는 나에게 결혼생활 첫 싸움을 안겨 주었다. 그리고 남은 두 장의 사진
남는 건 사진 이랬는데 피렌체 그곳은 남편과 나의 머릿속과 가슴속에만 오롯이 남겨졌다. 이 오롯한 추억이 지워질세라 나는 뒤늦게서야 이렇게 그날의 기억을 꺼내놓는다. 로맨틱을 꿈꿨지만 눈물로 마무리한 뜨겁게 아름다웠던 피렌체! 그래서 그날밤 피렌체의 야경은 한층 더 쓸쓸하지만 아름답게 빛났는지 모르겠다.
무심히 내리던 빗줄기 속에서도 어둠 내린 하늘을 머금고 반짝이던 두오모 성당은 여전히 멋스러웠다.
이제 곧 결혼 10년인데 10년 전 로맨틱한 피렌체는 잘 있겠지? 여전히 내 맘속엔 가장 로맨틱한 도시 그곳을 언젠간 남편과 다시 가볼 수 있기를 그땐 가방하나 들지 않고 세상 제일 편한 복장과 편한 마음으로 올라가 맘껏 보고 올 거라 새로운 여행 계획에 넣어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