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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은 별 Jul 31. 2024

기네스라는 품격! in 아일랜드

기네스의 매력 

아일랜드를 가지 않았다면 나는 기네스 맥주에 대해 잘 몰랐을지도 모른다. 

맥주를 너무 좋아해서 남편하고 해외여행을 할 때마다 양조장 투어를 할 정도로 맥주를 좋아했었지만 유럽 저 멀리에 있는 섬나라에 있는 기네스라는 맥주에 대해선 그땐 잘 몰랐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더블린에서의 시간은 참 꿈만 같았고 내가 아일랜드에서 정말 1년 넘게 살다온게 맞나 싶을 정도로 지금은 뻔한 현실에 살고 있지만 가끔 마트에서 기네스를 보고 여전히 반가운 걸 보면 더블린에 살다 온 게 꿈은 아닌 게 맞나 보다. 


내가 아일랜드에서 처음 기네스를 마신건 정말 우연이었다. 아일랜드에 도착하고 일주일쯤 지나서였을까? 

처음 어학원을 가기 전날 이제는 학생으로서 매일을 살아야 할 날들이 기다리고 있기에 그전에 더블린 시내에서 학생카드도 만들 겸 어학원 가는 길도 익힐 겸 나가 보기로 했다. 남편은 그날 집에서 해야 할 일이 있어서 겁도 없이 나 혼자 나갔다 오겠다고 자신감 넘치게 나섰던 기억이 난다. 남편 없이 혼자 나가는 게 은근히 떨리기도 했고 설레기도 했다. 여행이 아닌 이제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를 지나 시내로 나가는 골목 여기저기 모든 게 새롭고 신기했던 그날의 기분이 아직도 생생하다. 


푸르름 짙었던 4월 어느 날 버스를 타고 더블린 시내에 도착해서 나는 무작정 걸었었다. 낯설지만 여행자가 아닌 앞으로 자주 올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해서였을까? 야외 테이블에서 스탠딩으로 서서 맥주를 마시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은근히 좋아 보였고 나도 모르게 이끌려 이름 모를 펍에 들어갔다. 그리고 나는 맥주를 한잔 시켜 야외가 보이는 창가 테이블로 가서 앉았다 그리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홀짝홀짝 맥주를 들이켰다. 그땐 이름도 잘 몰랐지만 마시고 나서 나중에 찾아보니 내가 마신 맥주는 홉하우스라는 맥주였다. 라거풍의 맥주였고 맥주잔에 13이라고 쓰여있는 게 은근히 예뻐 보여 시킨 맥주였는데 시원하게 넘어가는 그 맛이 너무 좋았다 그리고 음악과 함께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데 ' 아 여기 더블린.. 유럽이지..' 혼자 중얼거리며 감성에 젖어들어가고 있었다.  

혼자 감성에 취했을 무렵 중년신사 한분이 말을 걸어오셨다. 


"어느 나라 사람이세요? 맥주 좋아하나 봐요? "

" 네 저 맥주 너무 좋아해요. 한국에서 왔어요" 

" 더블린 여행 중인가 봐요? "

"아니요 저 더블린에서 살고 있는 유학생입니다. 온 지 얼마 안 됐어요 "

"오~ 그래서 홉하우스를 먹고 있군요. 홉하우스도 기네스 회사에서 만든 거긴 한데 

 아일랜드에서는 기네스를 젤 먼저 마셔줘야 하는데! 아일랜드 맥주라서가 아니라 기네스 매력적인 맥주랍니다. 더블린에서 산다니 환영해요. 좋은 추억 좋은 기억 만들고 가길 바래요"

"감사합니다. 기네스 맥주 꼭 마셔 볼게요! 제가 아직 온 지 얼마 안 돼서 몰랐네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

"아일랜드 사람들은 술과 노래를 좋아해요 그래서 아일랜드엔 술과 낭만이 있답니다. 아참 그리고 기네스는 마시는 예절이 있어요 기네스는 바로 마시지 말고 10초 후 검은색이 다 차 올랐을 때 마셔야 해요! 잊지 말아야 해요! 아일랜드에서 산다면! "


중후한 미소를 머금은 중년의 할아버지와의 대화가 은근히 재미있었다. 기네스 예절이라니! 진짜인가? 싶었지만 서빙하는 분들의 모습을 보니 뭔가 순가가 있는 그런 느낌이긴 했다. 그리고 아일랜드 사람들은 술을 좋아하고 음악을 사랑해서 엄청 낭만적이라고 하는데 한국인의 정서랑 너무 잘 맞는 거 같아 은근히 반갑고 앞으로 더블린에서 사는데 잘 맞을 것 같은 좋은 기분이 들었다. 여행지에서는 느끼지 못한 현지인들과의 이 여유로운 대화가 더블린에 잘 왔다 잘 살아가보자라며 좋은 기운을 주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었다. 

나도 이제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는데 갑자기 종업원이 기네스 맥주를 나에게 가져다주었다. 


"저 기네스 맥주 시키지 않았어요 잘못 주신 것 같아요 다른 분 거 같아요 "

" 손님 거 맞습니다. 아까 이야기하시던 손님이 주문해 주셨어요. 

  저기 앉아 계시네요 저분이 가져다 드리라고 했어요 " 


바에 앉아 계셨던 중년의 더블린 신사분은 나에게 '슬란차(아일랜드에서 건배라는 뜻의 게일어)'라고 말하며 본인이 들고 있는 기네스 잔을 들어 보이며 미소를 지어 보여 주셨다. 살짝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더블린 신사의 깜짝 선물에 기분도 좋아지고 더블린에서의 첫 느낌이 은근히 좋았었다. 

아이랜드에서 중년의 신사들이 기네스 한잔씩 선물로 쏘고 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했다. 원하는 사람들에게 기네스 한잔씩을 전달하는 게 함께 이 시간을 즐기고 즐겁게 살아보자라는 긍정적 메시지를 담은 좋은 감정을 표현하고 나누는 것이라고 했다. 


공짜 맥주여서도 있겠지만 더블린 신사의 작은 배려로 처음으로 만나게 된 기네스는 나에게는 꽤 품격 있어 보였다.  기네스 예절이라는 말이 첨엔 뭔가 했는데 내가 기네스 맥주를 직접 받아보니 알겠더라. 처음엔 갈색빛을 띠던 맥주가 몇 초가 지나니 서서히 검은색 흑맥주로 변하는 게 아닌가? 사실 생맥주를 서빙할 때는 웨이터분께서 이미 생맥주 기네스를 잘 조절해서 따르기 때문에 갈색이 어느 정도 변하고 나서 전달해 주지만 생맥주를 따르는 웨이터분들의 모습을 보면 기네스 예절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특히 생맥주보단 캔맥주를 먹을 때는 컵에 따른 후에 정말 기다렸다 마셔야 한다는 걸!! 기다림의 묘미 그것이 기네스 예절! 기네스의 품격이었음을...

그 맛을 잘 알기에 마트에서 사 온 기네스를 우린 여전히 품격 있게 기네스 예절에 맞춰 마시고 있다. 


기네스 맥주로 참 좋은 추억, 오랜 기억을 남겨주신 이름 모를 더블린 신사분이 오랜만에 생각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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