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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은 별 Jul 28. 2024

E와 I 사이

그 어디쯤에서 나를 찾아본다. 

MBTI검사를 하면  하는 족족 나는 E가 나온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요즘 내 삶에선 E라는 구석은 잘 찾아지지가 않는다. 예전에는 사람 만나는 게 좋아 일부러라도 모임을 찾아서 먼저 다가가는 것이 당연한 거였고 뭐든지 먼저 해야 하고 적극적이며 밖에서 하는 활동으로 내 삶은 가득 차 있었다. 근데  요즘은 혼자 카페 가는 게 더 편하고 아무도 만나지 않아도 크게 외롭거나 답답하지가 않다. 이런 내가 어색할 때도 있지만 나이가 들어가고 일하는 스타일이 바뀌어 가면서 나도 모르게 정적인 스타일에 소리 없이 익숙해 가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십 대의 나를 생각해 보면 지금의 나를 이해 못 할 정도로의 적극적이며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고 따분한 시간을 참지 못해 집에 있는 사람들을 이해 못 하는 즐길거리를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 같은 사람이었다. 광고회사가 첫 직장이었다 보니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은 더 트렌디해야 했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잘 뽑아내야만 했기에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땐 그렇게 살아졌고 그런 시간이 당연했다. 아이디어 회의를 하며 야근을 하는 일도 잦았고 주말 출근도 많았지만 지금 생각해도 젤 많이 웃고 젤 신나게 일했던 시간이었기도 했다. 그때의 나를 기억하는 친구들은 요즘의 나를 보며 괜찮냐는 말을 할 때도 있다. 


"너 기억 안 나? 예전에 집에 있는 사람들 이해 안 간다고 내가 회사 안 가고 집에서 혼자 일하고 싶다고 했더니 

네가 일은 사람들하고 같이 해야 하는 거지 혼자 일하면 안 된다고 엄청 열변을 토했는데 이젠 네가 혼자 일한다고 하니 너무 신기해 "


"그렇지 맞아 그땐 그랬지 나도 이런 내가 신기하다. 이제는 집에서 혼자 서재에서 일하는 게 너무 편해. 팀원들하고 회사에서 어떻게 일했나 싶을 정도로 조용한 하루하루가 너무 편하긴 해. 물론 수입이 아직 없다는 게 함정이지만 말이야"


친구와 오랜만에 만나 대화를 하는데 '내가 저런 이야기를 할 때도 있었나?' 싶을 정도로 예전의 내가 낯설었다. 솔직히 이제는 복작 복작한 일상보다는 조금은 천천히 여유롭게 지나가는 시간들이 은근 매력 적이며 그저 잔잔히 흘러가는 시간에 몸을 맡겨 놓는 게 나쁘지 않다. 이건 나이가 들면서 삶은 바라보는 시선이나 목표가 달라졌기 때문도 있겠지만 이제는 이런 내가 익숙하다. 물론 이런 내가 한 번에 확 바뀐 건 아니지만 점점 위로 가는 문이 좁아지고 치열하게 사는 게 마냥 즐겁지 않은 걸 느껴가며 직책이라는 휘장이 어깨를 누르는 어느 시점부터 위로 올라가고 싶은 욕망의 불씨는 타오를 생각을 마다했는지도 모르겠다. 불쏘시개를 불어넣어야 탈 텐데 장작을 더 넣기보단 계속 이 뜨거움을 따뜻함을 적당히 유지하는 숯불이 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여전히 수익이 없는 이 프리랜서의 삶이 너무 편하거나 매우 만족스러운 건 아니다. 아직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살아가는 속도에 어느 정도 스피드가 떨어진 건 사실이다. 전에는 페라리를 타고 가장 빠른 속도로 꽤 멋지게 달리고 싶었다면 지금은 투싼정도 타면서 가끔 차박도 하며 주변풍경도 즐겨가며 속도에 연연하지 않고 가고 싶은 마음이다. 속도를 조금 줄이고 보니 주변에 할 수 있는 일도 많이 보이고 헤드헌터 외에도 해볼 수 있는 일이 꽤나 있다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너무 빨리 달릴 때는 내일만 바라보고 달려야 했는데 속도를 조금 줄여보니 새로운 것들이 눈에 하나씩 들어온다. 


내 삶이 E면 어떻고 I면 어떠랴 그 어딘가에 나에 맞는 옷을 입고 잘 살아내면 그만이라 생각한다. 젊은 시절 높았던 텐션덕에 지금은 어쩌면 그 바람이 조금 빠져도 오히려 적당한 삶의 무게를 유지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직은 조금 이 시기가 낯설고 나의 미래가 불투명하게 그려져 있지만 차츰차츰 나아질 거라 생각하며 오늘도 한걸음 또 내디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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