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내려놓을 수 있을까
석 달 전쯤 여행을 결심했다. 여행을 위한 자금은 2년 전부터 조금씩 모아 왔지만 언제, 어디로 떠날지에 대해선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러던 작년 10월, 아이가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힘들어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이제 겨우 여덟살인 아이는 학교에서 매일 울었고, 담임 선생님은 수업이 안 된다며 집에 데려가라 했다. 그렇게 6주 가까이 매주 3~4차례 씩 학교를 조퇴했다.
주변에선 보통들 아이가 학교 입학하는 시기에 휴직을 하라고 권하는데 나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까지 무탈하게 잘 해온 아이고, 세 살부터 어린이집, 유치원에서 조직 생활을 하며 큰 어려움이 없었던 아이니까. 그래서 아이가 학교에서 무슨 일로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가늠조차 하지 못했다.
한번 프로젝트에 들어가면 6~10개월 정도 일터에서 살다시피 하는 남편도 나와 비슷했다. 아이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오만한 탓에 우리는 아이가 힘들어 하고 있다는 것을 아주 늦게 알았다.
우리는 아이가 진급하기 전 한 달 동안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직장인이 회사에서 주는 연차로 한 달을 쓴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하다. 그래서 나는 휴직을, 남편은 대체휴가와 연차를 적절히 섞었다.
한 달 동안 여행을 떠나는 것은 스물세 살 대만에서 유학 생활을 했던 때 이후 처음이다. 마실 다녀오 듯 작은 여행을 다녀온 적은 있지만, 한 달이라는 시간을 온전히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곳에서 보내는 것은 쉽지 않으니까.
여행을 떠날 때면, 그곳이 서울에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대전이든 또는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하는 해외든 꽤 깊이 있게 준비하는 편이다. 가장 최근에 다녀온 여행은 지난 1월 다녀온 대전 여행이었는데, 목표는 오로지 성심당이었다. 갓 나온 튀소(튀김소보로)와 우유를 마시고 싶어 떠난 여행. 그 목적에 충실하고자 1박 2일 동안 성심당만 세 차례 다녀왔다.
지난해 11월 다녀온 홍콩 여행은 삼보일식을 목표로 했다. 걷고 먹고 걸었다. 딤섬부터 현지인들이 가득한 식당에서의 광동식 죽, 갖가지 국수와 차찬텡까지 미식기행을 즐겼다.
우리는 비행기를 타고 14시간을 날아 유럽으로 간다. 24박 25일의 일정. 20대에도 유럽 배낭여행을 떠나보지 못한 나는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 유럽에 간다. 목적지는 프랑스와 영국, 이탈리아. 평소라면 욕심을 한가득 부릴 나지만, 여덟살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에선 많이 내려놔야할 것 같다. 한 도시에 최대한 여유있게 머물기로 해본다.
과연 내려놓는 여행을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치유받고 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