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등바등 머릿속 채우기
부모님 영향인 것 같다. 어릴 적부터 부모님과 주말마다 여행을 다녔다. 우리는 주로 절이나 산과 계절을 느낄 수 있는 지역 명소로 여행을 떠났다. 아빠는 이동하는 차 안에서 한두 시간씩 그 지역에 대한 이야기를 해줬다. 역사적인 이야기, 지리적인 이야기, 이 지역이 어떤 의미가 있는 곳인지, 어떤 사람이 여기서 태어났는지 등.
아빠가 해주는 이야기는 참 쉽고 재밌었다. ‘백과사전을 머리에 심어뒀나?’ 싶게 버튼을 삑 하고 누르면 이야기가 줄줄 나오는 것이 참 신기했다. 더불어 요즘 말하는 ‘메타인지’도 꽤나 발달한 분이라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얘기해 줬다. 대신 그런 부분은 마을 이장님이든 주지 스님이든 그 지역을 가장 잘 아는 분을 찾아가 물어볼 수 있도록 했다. 고등학생 때 한국지리에 관심을 갖자 아빠는 교과서에 나온 지역들로 함께 떠나주기도 했다.
그 영향 덕분인지 내게 있어 여행의 시작은 공부다. 나는 머릿속에 들어있는 것이 많지 않아 노력을 해서 채워 넣어야 하는 타입인데, 그 어떤 공부보다도 여행을 위해 공부하는 시간은 즐겁다.
로마에서 들릴 바티칸 시국에 대해 이해하고 싶어 영화 <두 교황>을 봤다. 작년 말 툭 건들기만 하면 눈물이 쏟아질 정도로 힘들었던 마음을 어찌 달랠지 몰라 헤매다 가톨릭에 입문했다. 종교적 관점에서 보는 이탈리아는 새롭다. 바티칸에 대해, 가톨릭에 대해 궁금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는데 이를 눈치챈 친구가 책 세 권을 빌려줬다. <천국과 지상>, <교황 프란치스코 어록>, <교황 프란치스코, 그는 누구인가>.
로마와 피렌체를 배경으로 한 <다빈치코드>, <천사와 악마>, <인페르노>를 봤다. 이 영화는 내가 이탈리아에 갈 계획이라고 했더니 한 언론사 기자가 추천해 준 영화인데, 기독교에 대해 조금 신박한 해석을 담고 있어 심오하기는 했지만 이탈리아의 유명 명소를 구경하는 맛으로 봤다.
피렌체를 배경으로 한 <냉정과 열정 사이>도 다시 봤다. 20년 전에 처음 봤던 영화를 20년 만에 다시 본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은 건 음악이다. 그래도 이번엔 피렌체 대성당도 눈에 가득 담아본다.
런던의 포토밸로 마켓 일상이 담긴 영화 <노팅힐>도 놓칠 수 없다. 25년 전에 나온 영화임에도 요즘 영화처럼(어쩌면 그 보다 더) 세련되고 아름답다. 북적북적한 시장에 사람 사는 냄새가 가득했고 휴 그랜트의 ‘웁스 데이지’에는 귀여움이, 줄리아 로버츠의 눈에는 사랑이 가득했다.
중간중간 세계테마기행과 톡파원25시도 찾아본다. 마침 세계테마기행에서 이탈리아편을 진행하고 있어서 저녁 식사 때마다 빼놓지 않고 시청했다. 이제 좀 사전 답사를 마친 기분이 든다.
그 나라에 대한 배경을 이해할 수 있는 책도 찾아봤다. 이번 여행을 준비하며 아이에게 미션을 줬다.
“엄마는 지금 일하면서 계획을 짜는 것만으로도 조금 벅차거든? 그러니 프랑스와 영국, 이탈리아에 대해 얻을 수 있는 지식을 최대한 많이 얻어서 엄마와 아빠에게 알려줄래?”
아이 시선에서 볼 수 있는 <벌거벗은 세계사>, <지대넓얕> 같은 책을 구해줬다. 사실 이 책들은 워낙 콤팩트하게 역사를 정리해 둔지라 내가 읽어도 제대로 이해하기 쉽지 않은데, 아이는 제 몫을 하기 위해 꾸역꾸역 책을 읽는다. 아이는 ‘단두대 처형’ 같은 자극적인 에피소드에 충격을 받아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한 것 같은데, 그래도 뭐라도 읽었으니 도움이 되겠지…
<먼 나라 이웃나라>도 읽어본다. 30여 년 전 국민학교 다닐 때 봤던 책인데, 어른이 되어 읽으니 이 책에 담긴 해학과 풍자를 겨우 이해한 것 같다. 역시 아이 시선에서 보기엔 어려운 책이다.
파리, 런던, 이탈리아(베네치아, 피렌체, 로마)에 대한 가이드북도 읽었다. 여행지에서의 동선과 맛집 정보는 아주 중요하니까.
그렇게 머릿속을 채우고 또 채운다.
기억력이 좋지 않아 금방 까먹는데,
그래도 다시 채워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