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얻고자 하는가
직장인 12년, 목표지향성, 효율성을 치열하게 추구하며 살아왔다. 이번 여행은 키워드로 '내려놓기'를 꼽았지만,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나는 다시 이번 여행에서 무엇을 얻고, 채워올지 찾고 있다.
두 동반자와 함께 첫 회의를 열었다.
이번 여행의 목표, 이번 여행에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해보자고.
'자, 나 먼저 얘기할게.'
유명한 화가 전시회가 열릴 때면 얼리버드 티켓을 사서 가는 나, 쉬는 날이면 갈 만한 미술 전시부터 찾아보는 나, 그렇게 20대 때부터 미술관을 다녔으나 시각적인 풍요로움과 마음의 평화만 얻어올 뿐 딱히 미술사나 화풍에 대해서는 여전히 모르는 나... 이번 여행지에 있는 미술관에는 우리나라에 몇 년에 한번 들어올까 말까한 대작들이 있고, 미술관마다 반드시 봐야 할 작품들이 있다. 그리고 기왕에 가는 거 공부가 되게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표: 유럽 역사와 미술사 이해하기
버킷리스트: 3대 박물관(루브르, 바티칸, 영국) 다녀오기, 파리(오랑주리, 오르세)/ 런던(내셔널갤러리, 테이트모던)/ 피렌체(우피치), 베네치아(페기 구겐하임) 가기. 주요 박물관, 미술관 일정들을 가이드 투어로 진행하기
다음은 아이 차례. '목표'가 뭔지 잘 모를 것 같아서 추상적인 이야기를 늘어놓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이는 제법 구체적이고 분명한 목표를 얘기한다.
아이는 일곱살부터 그리스로마신화에 푹 빠져있다. 가나출판사, 미래엔, 아울북 3개 출판사에서 나온 그리스로마신화를 모두 읽었고, 좋아하는 책들은 따로 구매해서 수차례 읽었다. 우리가 어렴풋하게 유럽을 생각했던 배경에도 그리스와 로마가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동선 상 그리스를 넣기가 애매하고, 그리스 치안이나 국가 사정도 조금 복잡하다는 이야기를 들어 가지는 못하게 됐지만, 아이는 여전히 그리스 신화에 대한 환상이 가득하다.
목표: 그리스로마신화는 가짜일까 실제일까 알아보기
버킷리스트: 그리스로마신화에 나온 유적지 찾아가기, 신전 보고 싶어요
마지막 남편. 그의 버킷리스트는 참 그답고 충격적이다.
버킷리스트: 축구, 런던 뮤지컬, 담배
남편은 여행과 출장 등을 통해 유럽에 수차례 다녀왔다. 우리가 이번에 방문하는 파리, 런던, 이탈리아 주요 지역(베네치아, 피렌체, 로마)을 모두 다녀왔고, 심지어 딱 1년 전인 작년 2월 이탈리아에서만 2주 넘게 출장을 다녀왔다. 출장 때도 남편은 유럽인들의 자유로운 흡연 분위기에 이미 매료되어 있었다. 금연한지 만 1년이 넘었음에도 흡연 생각을 하는 걸 보니, 담배는 끊는 것이 아니라 참는 것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아이 앞에서 당당하게 본인의 버킷리스트가 흡연이라고 말하는 모습을 보며 혀를 끌끌 찼지만, 그래도 존중해 주기로 한다.
그렇게 세 사람의 버킷리스트를 최대한 존중하며 일정을 짜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