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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작가 역사트레킹 May 09. 2024

<재미난 스페인 3편> 타리파

땅끝마을에 해적이 나타났다!






* 타리파성: 타리파성에서 해안가 방면의 모습. 왼쪽 상단에 또다른 성이 하나 있다. 산타카탈리나성이다. 






"당연한 말인데요, 서울에도 좌청룡, 우백호, 남주작, 북현무가 있어요. 우백호는 인왕산이고, 좌청룡은 낙산입니다. 낙산공원으로 유명한 그 낙산이에요. 남주작은 관악산이고, 북현무는 북한산입니다. 좌청룡우백호가 서울 안쪽에 위치한다면, 남주작북현무는 외곽에 자리잡고 있는 셈이죠. 그렇게 각각의 방위를 지키는 네마리 동물을 사신수라고 부릅니다."


<역사트레킹 서울학개론> 강의를 할 때 종종 저런 설명을 했었다. 서울의 공간적인 면을  알기 위해서는 서울의 동서남북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사신수와 함께 언급을 하면 흥미를 유발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학습효과는? 그게 참 쉽지가 않다. 필자가 열심히 지도를 그리는 이유가 있다. 


남쪽 안달루시아 지방에 있는 타리파(Tarifa)라는 곳에 갔는데 이곳이 스페인의 남쪽 땅끝마을이었다. 예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은 후 피스테라라는 곳을 방문했는데 그곳은 스페인의 서쪽 땅끝마을이었다. 여차저차해서 스페인의 남쪽과 서쪽의 땅끝마을을 탐방했던 것이다. 기왕이렇게 된 거 스페인의 동서남북을 땅끝에 초첨을 맞춰서 알아보았다. 사신수는 없어도 땅끝마을은 존재하니까.


일단 피스테라(Fisterra)부터 좀 더 살펴보자.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오신 분들은 피스테라(Fisterra)에 대해서 잘 아실 것이다. 피스테라는 스페인의 서쪽 땅끝으로 순례길의 종착지인 산티아고 콤포스텔라에서 서쪽으로 약 90km 정도 떨어져 있다. 북쪽 땅끝은 바레스(Bares)라는 곳으로 피스테라에서 북동쪽으로 약 200km 정도 떨어져 있는 곳에 위치한다. 비교적 거리가 가까운 바레스와 피스테라는 둘 다 갈리시아 지방에 속한다. 동쪽 땅끝은 크레우스(Creus)라는 곳이다. 정확히는 크레우스(Cap de Creus)곶인데 바로셀로나에서 북동쪽으로 약 160km 정도 떨어져 있다. 


여기서 용어 정리를 해보자. 바다쪽으로 땅이 많이 튀어나온 지형을 두 가지로 나눠서 부른다. 크게 튀어나오면 '반도'가 되고, 작으면 '곶(串)'이 된다. 포항의 호미곶을 생각하시면 된다. 북한쪽에는 백령도와 마주하고 있는 장산곶이 유명하고 유럽쪽에서는 포르투갈의 호카곶이 유명하다. 호카곶은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맨 끝지점이다. 포르투갈의 서쪽 땅끝마을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곶은 영어로는 케이프(cape)로 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케이프타운(cape town)은 직역하면 '곶마을'이 될 거다.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에서는 카보(cabo)로 쓰는데 바로셀로나가 속해 있는 까딸루냐에서는 캅(cap)으로 적는다. 






* 타리파섬: 흰색 등대가 보이는 곳이 타리파섬이다. 그 앞으로 타리파항이 있다. 모로코에서 출항한 배가 입항하고 있다. 






다시 스페인 남쪽 땅끝마을인 타리파(Tarifa)에 대한 이야기다. 타리파는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의 카디스주에 속해 있는 도시다. 앞으로 지브롤터해협이 펼쳐져 있고, 그 건너로 북아프리카 모로코땅이 보이는 곳이다. 지브롤터에서 봤던 풍광하고는 또다른 모습이었다.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북아프리카가 손에 잡힐 정도로 가까이보일 정도였다. 


한편 타리파라는 지명은 711년 이베리아반도를 침공한 무어인 장군인 타리크 이븐 말릭(Tarif ibn Malik)의 명칭에서 나온 것이다. 무어인들이 북아프리카를 떠나 가장 먼저 도달한 곳에 타리크 장군의 이름을 따서 명칭을 붙인 것이다. 이렇듯 무어인들의 지배를 가장 오랫동안 받은 안달루시아 지방은 곳곳에 무어인들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타리파에는 구즈만 엘 부에노(Castillo de Guzman el Bueno)라고도 불리는 타리파성이 있다. 스페인어로 성을 카스티요(Castillo)라고 부른다. 워낙 스페인에 성이 많으니 앞으로도 '카스티요'에 대한 언급이 많을 것이다. 


타리파가 스페인의 땅끝인만큼 타리파성은 스페인의 가장 최남단에 위치하고 있다. 더불어 유럽에서 가장 남쪽에 자리잡은 성이기도 하다. 북아프리카 모로코까지는 직선거리로 약 15km 정도에 불과할 정도다. 


타리파성은 960년에 무어인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문명에 십자로상에 놓여 있다보니 타피라성은 지정학적으로 역사의 현장이 될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앞서 언급한 구즈만 엘 부에노도 그런 역사의 현장에 서 있는 인물이었다. 


1294년에 카스티야 왕국의 왕위 계승에 불만을 품은 이들이 반란을 일으킨다. 그들은 무어인들까지 끌어들여 왕위를 쟁취하려고 했다. 레콩키스타, 즉 국토회복전쟁이 무색할 정도였다. 이때 구즈만 엘 부에노가 지키고 있던 타리파성이 격전지가 됐는데 반란군들은 성을 포위하며 항복을 요구했었다. 운명의 장난인지 반란군들은 구즈만의 아들을 포로로 잡고 있었고, 성을 포기하지 않으면 그 아들을 죽인다고 협박했었다. 






*구즈만 엘 부에노상: 단검을 들고 있다. 






이에 구즈만은 반란군측에 단검을 던지며, 그 단검으로 아들을 죽이라고 말했다. 아들이 아닌 국가를 선택한 것이다. 읍참마속보다도 더한 일이지 않은가? 만약 여러분들이 그런 상황에 직면한다면 어떤 판단을...?


타리파성에 올라가면 타리파항이 바로 앞에 보인다. 타리파항에서는 모로코에 있는 탕헤르로 향하는 여객선을 탈 수 있다. 타리파항 너머로는 흰  등대가 우뚝 서 있는 타리파섬이 보이는데 육지와 워낙 가까워 이곳은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타리파섬은 이베리안반도의 최남단이자 유럽의 최남단이기도 한다. 여러모로 의미가 큰 섬이지만 필자가 갔을 때는 쇠사슬로 문이 잠겨있었다. 알고보니 몇 년째 문이 잠겨 있다고 했다. 


한 때 타리파섬은 해적들의 소굴이었다. 비좁은 지브롤터해협은 지정학적으로 중요한만큼 해적질을 하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유럽 각국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약탈한 보물이 캐리비언 해적들의 좋은 먹잇감이었다면 타리파섬의 해적들은 통행세를 챙겼다. 어차피 길목을 차단하면 두고두고 보호비(?)를 뜯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캐나다 출신 역사학자 데이빗 데이는 자신의 저서인 <Smugglers and Sailors: The Customs History of Australia 1788-1901>(밀수업자와 선원: 호주의 관세 역사 1788~1901)에서 관세(tariff)의 어원이 타리파섬의 해적행위에서 기원한다고 언급했다. 15세기 이후 아메리카 및 인도로 가는 신항로가 개척되자 지중해 무역은 쇠퇴하기 시작한다. 이에 따라 유럽 각국은 아메리카 대륙으로 힘의 무게를 쏟게 된다. 지브롤터 인근 해역에 힘의 공백이 생긴 것이다. 해적들이 신날 일이었다. 


해적들이 물러간 타리파는 현재 서핑족들의 천국이 되었다. 여름이면 유럽 각지에서 몰려온 서핑족들로 물반서핑족반이라고 할 정도다. 로스란세스 해변이 그 중심인데 대서양의 거친 파도가 계속 밀려들고 있었다. 서핑족들이 보기에는 물질하기 딱일 듯싶었다. 


수영복도 없고 해서 필자는 그냥 모래사장을 걸었다.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온 몸을 휘감고 있었다. 무언가가 씻겨가는 느낌이었다. 이런 바람을 해남 땅끝탑에서도 맞은 적이 있었는데 바람을 맞으며 무언가 다짐을 했었다. 그 다짐들이 잘 이루어졌을까? 







* 타리파성







* 유럽의 최남단: 타리파는 스페인의 땅끝이자 유럽의 최남단이기도 하다. 더 가고 싶어도 더 나아갈 수가 없다. 




* 스페인의 동서남북 땅끝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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