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안개가 너무나 자욱했다. 말 그대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거기에 더해 한기까지 파고드는 느낌이드니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한국에서 봤던 낭만적인(?) 안개하고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안개였다.
메세타고원(Meseta).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순례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마주쳐야 할 고원지대이다. 가도가도 끝이 없어보이는 드넓은 평야가 순례객들의 눈 앞에 펼쳐진다. 워낙 광활해서 한국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지평선을 볼 수 있을 정도다. 그렇게 광대한 평야가 펼쳐지니 시야는 확 트여서 좋다. 하지만 발걸음이 좀 위축된다.
메세타에 대한 악명(?)이 워낙 자자해서 그런 것이다. 지형 자체는 평평하니 체력적으로 힘들지는 않다. 하지만 그늘도 없는 평야를 신물이 날 정도로 걸어야 하니 정말 고역일 수밖에 없었다. 마을에서 마을까지 거리도 꽤나 멀어서 밥 시간에 맞춰 식당에 들어가기가 정말 어려웠다. 그래서 메세타 구간에서는 꼭 도시락을 챙겨야했는데 문제는 걸터앉아 먹을만한 곳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벤치나 쉼터같은 휴식공간도 부족하다보니 거의 스탠딩으로 빵을 뜯어 먹었었다.
그 광활한 평야에 홀로 서서 빵을 뜯어먹으니 이것이 눈물 젖은 빵인가? 이때 눈치없는 매 한 마리가 '휘~' 소리를 내며 필자의 머리 위를 선회하고 있었다. 이걸 뺏어먹으려고? 빼앗길 수는 없지, 눈물 젖은 빵치고는 맛났으니까...
메세타에 대해서 더 알아보기 전에 간단한 스페인 회화를 한 번 해보자. 식당에서 주문을 할 때다.
A: ¿Tiene mesas?(띠에네 메사스: 테이블 있어요?)
B: Sí, ¿Cuantas personas?(시, 꾸안따스 페르소나스?: 네, 몇 명이세요?)
영화 좋아하시는 분들은 페르소나(사람)의 복수형인 페르소나스에 눈길이 갈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메세타에 대해서 알아보는 시간이다. A가 테이블이 있냐고 묻는데 mesas라고 말한다. 스페인어로 테이블을 mesa라고 부르는데 여기서는 복수형인 mesas라고 쓰고 있다. 메세타(meseta)는 테이블, 탁자를 뜻하는 mesa가 변형된 형태다. 한마디로 메세타 평원은 일명 '테이블 평원'인 것이다.
* 안개낀 메세타평원: 싸늘함이 전해진다.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우리가 통상적으로 스페인어라고 칭하는 언어는 까스띠야어다. 카스티야는 수도 마드리드를 중심으로한, 이베리아반도 중앙부에 위치한 지역으로 카스티야어를 사용한다. 이에 비해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한 카탈탈루냐 지역은 카딸란어라는 지역어를 카스티야어와 함께 공용어로 사용한다. 이렇게 해당 지역어를 사용하는 지역이 또 있다. 피레네산맥 부근에 위치한 바스크, 북서쪽에 자리잡은 갈리시아 등이다. 스페인이 워낙 지역색이 강하다보니 이렇게 각 지역의 지역어도 공식언어로 대접받고 있다.
메세타는 스페인의 중앙부에 위치해 있는데 그 넓이가 210,000km2 에 달한다. 한반도가 약 230,000km2이니 그 규모를 짐작해볼 수 있는데 스페인의 3/4 정도가 메세타에 속할 정도다. 이베리아반도 전체로 확장해보면 2/3가 된다.
고원이라는 명칭답게 평균고도는 약 660m로 꽤 높은 편이다. 한반도만한 면적의 고원지대가, 그것도 해발 600미터가 넘고 있으니 스페인의 평균 해발고도는 꽤 높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유럽국가들 중에서 스위스 다음으로 스페인이 해발고도가 가장 높다.
메세타는 서쪽을 제외한 동쪽, 남쪽, 북쪽이 모두 큰 산맥으로 둘러쌓여 있다. 동쪽에는 이베리코(Ibérico), 북쪽에는 칸타브리카(Cantábrica) 산맥이 두르고 있고, 남쪽에는 2중 장벽 형식으로 모레나(Morena)산맥과 베티카스(Béticas)산맥이 자리잡고 있다.
이베리코산맥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는 몬카요(Moncayo / 해발 2,315미터), 칸타브리카 산맥에서는 토레세레도(Torre Cerredo / 해발 2,650미터), 모레나산맥에서는 바누에라스(Bañuelas / 해발 1,332미터)이다.
모레나와 함께 남쪽에 있는 베티카스산맥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는 물아센(Mulhacén)인데 그 높이가 무려 3,482미터에 달한다. 그렇다. 물아센은 이베리아반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이다. 베티카스산맥은 지맥 개념으로 시에라네바다산맥을 거느리고 있는데 물아센이 그 시에라네바다산맥에 위치해 있다. 시에라네바다산맥은 알함브라 궁전으로 유명한 그라나다(Granada)의 배후산이라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그라나다에서 물아센이 가깝다는 것이다. 그라나다만큼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론다(Ronda)도 베티카스산맥의 서쪽 지역에 자리잡고 있다.
* 메세타평원: 안개 속의 돌다리. 역설적으로 안개와 어울리는 모습이다.
한편 메세타의 중심부에도 중앙(Central)산맥이 무려 600km에 걸쳐 동서 횡축으로 놓여져 있다. 중앙산맥은 국경을 넘어 포르투갈 동쪽지역까지 뻗어 있다. 이 중앙 산맥을 기준으로 메세타는 북쪽 메세타와 남쪽 메세타로 나뉜다. 카스티야의 행정구역도 나눠진다. 메세타 북쪽은 카스티야이레온(Castilla y León), 남쪽은 카스티야라만차(Castilla-La Mancha)로 분리된다.
외형적으로보면 평균 고도가 600미터에 달하는 그 자체로 고지대인 메세타를, 그보다 더 높은 산맥들이 담장을 치듯 두르고 있는 셈이다. 아직까지 이해가 잘 안 되신다면 강원도 양구군의 펀치볼 지형을 연상하시면 좋을 듯싶다. 펀치볼은 해발고도가 400~500미터 위치에 있는데 그 주위를 대암산, 도솔산, 대우산, 가칠봉 등의 1,000미터가 넘는 산들이 두르고 있다. 차이점은 메세타가 서쪽이 트여있는 형태라면 펀치볼은 동서남북이 다 둘러진 형태다.
수박 화채를 해먹기 좋은 둥그스러운 그릇을 영어로 펀치볼(Punchbowl)이라고 하는데 그곳 지형이 펀치볼처럼 생겼다하여 그렇게 이름이 불려진 것이다. 한국사람들이 붙인건 아니고 한국전쟁 때 양구에 주둔한 미군들에 의해 붙여졌다.
서쪽이 트여있는 지형이라 스페인의 주요 강들은 서쪽인 포르투갈 방향이나 남쪽으로 흐른다. 포르투로 흐르는 두에로강, 리스본으로 흐르는 타호강,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남쪽 국경을 형성하는 과디아나강, 스페인 남부를 흐르는 과달키비르강. 모두 다 대서양으로 흘러들어간다. 단 에브로강은 동쪽인 카탈루냐 지방으로 흘러 지중해가 된다.
아시다시피 스페인의 여름은 정말 뜨겁다. 당연히 스페인의 2/3를 차지하고 있는 메세타도 뜨겁다. 또한 건조하다. 하지만 겨울은 추운 편이다. 즉 여름과 겨울의 기온차가 크다는 뜻이다. 또한 지대 자체가 높다보니 겨울에는 짙은 안개가 매일같이 끼는 것이다. 필자가 순례길을 겨울에 많이 가서 그랬나? 메세타 구간에서는 거의 안개 속을 헤치며 걸었었다.
메세타지역은 인구가 희박한터라 마을들도 띄엄띄엄있다. 오랜시간 안개 속을 헤매며 외롭게 순례길을 걷는다고 생각해보라. 쉽게 발걸음이 안 떨어질 거다. 그래서 어떤 순례자들은 산티아고 순례길의 본 노선인 프랑스길에서 벗어나 지선인 북쪽길로 이동하기도 한다. 어떤이는 아예 버스나 기차로 메세타 구간을 점핑하기도 한다.
필자도 메세타를 겪어본 사람으로서 그 순례자들이 좀 이해가 된다. 하지만 안개 속을 헤치며 당당하게 걷는 것도 순례길의 일부가 아니겠는가! 순례길에서 메세타 빼먹으면 재미없지!
* 메세타평원
* 메세타평원: 안개가 구름처럼 깔려있다.
* 지도: 메세타평원을 타나냄. 메세타는 표시된 지역보다 더 넓음. 박스처리로 대략적인 위치를 표시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