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난 스페인 8편> 5일 천하로 끝난 카탈루냐공화국
* 사그리다파밀리아: 바르셀로나의 명물 사그리다파밀리아. 천재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가 설계를 했다.
스페인은 지역색이 강한 곳이다. 그래서 지방자치도 잘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카탈루냐는 지방자치를 뛰어넘어 스페인 중앙정부에서 독립을 하고자 한다. 마치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영국에서 분리돼 스코틀랜드 국가를 원하듯이, 카탈루냐 사람들은 독자적인 '카탈루냐 국가‘를 원하고 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카탈루냐 지역 일대를 여행하다보면 매우 정치적인 낙서들을 어렵지 않게 보게 된다.
- 카탈루냐는 스페인이 아니다
- 스페인은 정치범을 붙잡고 있다
카탈루냐 사람들은 카탈루냐가 스페인 역사에 편입된 건 1700년대 이후였다고 주장한다. 불과 300여 년 전에는 독자적인 주권을 행사하는 지역이기에 스페인 중앙지역인 카스티야와는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역설한다.
* 바르셀로나: '스페인은 정치범을 붙잡고 있다'라는 낙서. 그걸 누군가가 지우고, '스페인 우선'이라는 내용으로 바꿔놓았다.
카탈루냐는 카탈란어라는 독자적인 언어가 있는데 예전에는 사용이 금지된 적이 있었다. 탄압이 가중될수록 그들의 카탈란어 사랑은 더 깊어갔다. 바르셀로나 인근 레우스(Reus) 출신인 천재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도 카탈란어를 사랑했던 이들 중 한 명이었다. 1924년 9월이었다.
당시는 쿠데타로 집권한 프리모 데 리베라가 통치를 하던 독재정권 시기였는데 가우디는 카탈란어를 사용하다 경찰에 붙잡히게 된다. 경찰의 모욕과 탄압이 있었지만 가우디는 끝내 스페인어 사용을 거부했다. 카탈루냐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는 가우디의 굳은 심지가 돋보이는 사건이었다.
이런 흐름들은 실제적인 행위들로 도출됐다. 카탈루냐 공화국의 설립이 바로 그것이다. 역사적으로 카탈루냐 국가를 설립하려는 시도는 여러번 있었지만 번번이 좌절되고 말았다. 하지만 독립국가에 대한 열망은 꾸준히 발현되었고, 몇 해 전인 2017년에도 실행되기에 이른다.
2024년 8월 8일, 바르셀로나에서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일이 벌어졌다. 카를레스 푸지데몬(Carles Puigdemont)이라는 전 카탈루냐 자치정부 수반이 7년 만에 귀국했는데 깜쪽같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당시 푸지데몬은 자신이 소속되어 있는 '카탈루냐를 위해 함께'라는 정당의 환영행사에 참여를 했었다. 이 행사에서 그는 카탈루냐 독립에 대한 당위성을 주장하는 연설을 한다. 수많은 지지자들에 둘러싸여 연단에 오르고, 또 퇴장을 했다. 이후 준비된 자동차를 타고 모임장소에서 벗어났다.
여기에 문제가 있는가? 정치인이 연단에 올라 정치적인 발언을 하겠다는데...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푸지데몬은 여러 가지 혐의로 스페인 공안당국에 수배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회합장소에서 벗어나 자택으로 간 것이 아니라 국경을 넘어 갔다. 수많은 지지자들이 블록 역할을 했고, 결국 그를 체포하기 위해 대기하던 경찰들은 허탕을 치고 만 것이다.
* 푸지데몬: 전 카탈루냐 자치정부 수반. 출처 Wikimedia Commons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스페인 중앙정부는 푸지데몬의 행동에 촉각을 세우게 됐는가? 2017년 10월이었다. 카탈루냐의 분리독립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가 있었고, 독립찬성으로 결과가 나온다. 이에 카탈루냐 국가가 선언됐고, 초대 국가수반으로 푸지데몬이 권좌에 오른다. 푸지데몬을 비롯한 독립파는 이를 카탈로냐 공화국(Republic of Catalonia)으로 칭했다.
바르셀로나를 수도로 삼은 카탈루냐공화국은 약 32만km²로 그 크기가 벨기에(약 30만km²) 보다 조금 더 크고, 인구는 약 700만 명 정도였다. 2022년 카탈루냐의 국내총생산(GDP)은 2,441억 달러로 2,558억 달러인 포르투갈에 좀 못 미치는 수준이다. 벨기에 정도의 땅 크기와 포르투갈 정도의 경제력을 가지고 있는 나라가 21세기에 출현을 했다면 유럽 역사가 새로 작성됐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결론을 알고 있다. 2017년에 등장한 카탈루냐공화국은 시작과 동시에 멸망했다. 그래서 한국사람들은 카탈루냐공화국에 대해서 존재 자체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 존재를 알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더 이상할 정도다.
일련의 사태가 어떻게 진행됐는지 알아보자. 분리독립을 가만히 보고 있을 중앙정부가 아니었다. 당시 스페인 총리였던 마리아노 라호이는 헌법을 발동하여 주동자였던 푸지데몬을 해임했다. 또한 반역죄와 배임 등의 죄목으로 수배령을 내렸다. 그는 자신의 고향을 등지고 벨기에로 망명하게 되고, 카탈로냐화국은 5일 만에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카탈루냐 공화국이 5일 천하로 끝난 후, 권력의 공백은 중앙정부가 메꾸게 된다. 스페인 중앙권력은 4개월 동안 까탈루냐를 직접 통치하게 된 것이다.
* 카탈루냐기: 카탈루냐어로 세녜라(Senyera)라고 부른다. 이 문양은 원래 아라곤 연합왕국의 표식이었다. 그래서 카탈루냐 뿐만 아니라 아라곤, 발렌시아 등 옛 아라곤 왕국 지역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 에스텔라다(Estelada): 카탈루냐 독립세력들이 흔드는 깃발로 카탈루냐 민족주의를 상징한다. 비공식 깃발이다.
2017년 카탈루냐 독립 문제는 스페인을 넘어 전 유럽을 뒤흔들어 놓았던 일대 사건이었다. 푸지데몬의 망명, 중앙정부의 강경 대응 등으로 독립파들의 예봉은 꺾이게 된다. 하지만 그 불씨는 여전히 잠재해있었다.
7년이 흐른 2024년 8월, 푸지데몬은 자수를 하겠다는 조건으로 다시 카탈루냐 땅을 밟을 수 있게 됐다. 지지자들 앞에서 연설을 한 후 경찰에 연행되는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는 자수를 하지 않았고, 7년 전처럼 국경을 다시 넘어간 것이다.
분리독립은 경제문제와도 얽혀 있다. 만약 카탈루냐가 스페인의 다른 지역들보다 가난하다면? 물론 경제력 여부에 따라 독립운동의 향방이 결정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들의 돈이 다른 지역들보다 더 많이 걷히고 있다면 그 부분이 썩 내키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그랬다. 카탈루냐의 국내총생산(GDP)은 2022년 기준으로 스페인 전체의 약 20%를 차지하고 있다. 이를 두고 분리주의자들은 자신들의 경제적 기여가 큼에도 불구하고 중앙정부는 그만큼의 혜택을 돌려주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스페인의 다른지역보다 더 많은 돈을 중앙정부에 보내지만 정작 카탈루냐로 돌아오는 재투자 비용은 그보다 더 적다는 것이다. 자신들이 손해를 보고 있다는 뜻이다.
* 몬세라트: 돌산인 이곳에서 가우디는 큰 영감을 얻었다. 바르셀로나 인근에 위치함.
이런 주장들은 경제위기와 맞물려 설득력을 얻게 됐다. 2010년경에 남부유럽에 경제위기가 닥치는데 해당되는 국가들의 앞 글자를 따니 PIGS가 됐다. 포르투갈(Portugal), 이탈리아(Italy), 그리스(Greece), 스페인(Spain). 필자가 다 좋아하는 국가들인데 어쩌다가 ‘돼지들’이라는 굴욕적인 멸칭을 얻게 됐을까... 어쨌든 이런 재정위기가 닥치자 카탈루냐 분리주의자들은 스페인 중앙정부의 무능을 왜 자신들이 짊어져야 하냐며 불만을 표출했다. 독립을 하여 독자적인 경제정책을 수행하면 더 잘 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제까지 2017년도에 있었던 카탈루냐공화국 사건을 중심으로 카탈루냐 문제에 대해 알아보았다. 지금이야 잠잠하지만 카탈루냐 문제는 언제든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올 수 있다. 마치 경제위기가 언제든 다시 발생할 수 있는 것처럼...
남북이 갈린 분단국에 사는 이에게 카탈루냐 문제는 어떻게 다가올까? 굳이 누구의 편을 들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확실히 새겨진 감정은 있었다. 신기함!
* 카탈루냐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