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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git Feb 06. 2022

결국 내가 문제였네

제대로 못 알려줘서 미안해

조카를 가르치면서 왜 엄마들이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화를 벌컥벌컥내고 목소리가 높아지고 도깨비 얼굴이 되는지 완전히 이해하게 된다. 아니! 이걸! 왜! 몰라~~! 아까 알려준거잖아! 이거 풀었었잖아! 소리가 절로 나오는데 계속 모르니까 화가 난다. 앞에서는 분명히 풀었던 문제를 뒤에 와서는 또 틀리고 그게 왜 틀리냐고 묻고 또 묻는다. 정말 머리가 돌아버릴 지경이 된다.

왜 우리 언니는 이런걸 안가르친거지? 하면서 또 언니한테 할 잔소리 리스트를 길게 만들어둔다. 

여튼 오늘은 진짜 여러번 화를 냈다. 공부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있을까 싶지만 공부하는 내내 허리를 비비꼬고 다리를 달달 떨고 졸린 눈으로 뇌는 저어기 마인크래프트의 게임속 아이템 저장고에 넣고 온듯한 표정을 보고 있으니 울화통이 터진다. 

이녀석! 정신 차려! 하면서 등짝이라도 한대 후려갈기고 싶지만.. 그럴수는 없는 노릇이다. 

참을 인자 세번이면 사람도 살린다는데, 나는 오늘 참을 인자를 몇십번 썼다. 열댓명을 살렸다. 

정말 이게 뭔가 싶을 지경이다. 그러다가 숨고르기를 하면 화가 풀린다. 나의 어릴적 모습이 생각나서이다.  사실 조카는 나보다 훨씬 잘하고 있다. 하기로 한걸 하고, 놀다가도 시간이 되면 “거의” 시간맞추어 들어온다. 나는 사실 차라리 엄마한테 한대 맞자! 생각하고 삔들대며 몇시간씩 더 놀아버리던 어린이였는데, 우리조카는 그런 나보다 훨씬 나은 약속을 잘 지키는 어린이다. 그렇게 삔들대며 공부와 담쌓았던 어른이 커서 마치 평생 모범생이었던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니 참 어른의 모습은 뻔뻔하다. 


적당히 아는걸 가르치는건 진짜 어려운일임을 조카와 공부를 하면서 자세하게 깨달았다. 아는데 왜 이런지 설명을 하기 어려우면 너도 이렇게 생각해보라면서 이상한 사례들을 든다. 조카는 어쨌든 나이든 이모가 손짓발짓 섞어가며 설명을 해주니까 열심히 듣는척은 하지만 느낌적 느낌으로 이해한것으로 대충 문제를 풀고, 숫자가 달라진 다음문제에서 틀려버린다. 그때 헐, 이녀석 아까 안다고 했으면서!! 하면서 거짓말을 했다는 생각과 또 어떤 사례를 들어야 할까 하는 귀찮음과 얘가 뭐될라고 이것도 모르나 하는 불안감이 화로 표출되는거다. 식을 쓰다가 항상 똑같은 포인트에서 몇번이나 틀려버리는 조카를 보면서 벽에다 두시간동안 이야기를 했단말인가! 하는 생각에 좌절감 마저 든다. 이걸 어떻게 설명 해야하나, 언니한테 큰소리 땅땅 쳤는데 어쩌면 좋을까 하며 또 마음이 불안해진다. 잘난척 하지 않으면 못견디는 병이 걸린것 같다. 


꼬마도 나도 지쳐버려 일단 공부를 마무리 하고 재웠다. 조카가 잠들고 난 후 언니한테 문자폭탄을 보냈다. “얘가 기초가 이렇게 안되어있는데 그동안 어떻게 공부시킨거야!” 

사실 언니가 공부를 안시킨것도 아니고, 조카가 일부러 틀리는것도 아닌데 자꾸만 화풀이를 한다. 진짜 못된 동생이고 못된 이모다. 

하지만 나도 너무 지치는건 사실이다. 아침부터 밤까지 어린이의 공부에 집중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화딱지가 나서 일찍 자버렸다. 일찍 잠들었다가 새벽에 깨서 작업실에 앉아있다가 조카의 여러가지 문제집을 들고와 앉아서 문제집을 이것저것 뒤적여봤다. 지금 풀고있는것이 왜 어려운지, 더 쉽게 설명된것은 없는지 보고 EBS 인강을 들어봤다. 인강을 틀고 5분만에 나는 나의 잘못을 깨달았다. 저렇게 쉽게 원리만 가르치면 될걸 계속 빙빙 돌아서 더 헷갈리게 만들고 있었는데, 내가 잘 못 가르쳐놓고는 조카만 달달볶았던것이다. 


내 능력이 부족한것을 누구를 탓하고 있었던걸까? 조카에게 너무나 미안해졌다. 커피를 한잔 내려 마시면서 어떻게 사과를 할까 고민했다. 계속 짜증냈던 나의 모습이 너무 부끄러웠다. 

조카를 깨워 씻기고 아침을 먹였다. 오늘의 공부를 시작하는 조카에게 “이모가 못가르쳐주고 알아서 잘하라고 화내서 미안해. 이모보다 더 잘 가르쳐주시는 인강 선생님한테 배우면 이해가 쉬울거야. 같이 공부해보자”하고 사과했다. 조카는 두 눈이 똥그래져서 “이모, 이게 그렇게 사과할 일인가?” 라고 하며 볼이 발그레해져서 웃었다. 자기도 너무 속상했는데 엄마도 그렇게 화내니까 그런 정돈 괜찮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깨를 한번 으쓱 하고 기분 좋은 얼굴을 하고 공부를 하기 시작한다.


개떡같이 설명해도 찰떡같이 알아듣길 바라던 이기적인 이모였다. 청출어람이란 멋진 사자성어를 등에 업고 어린 조카를 너무 괴롭혔다. 나보다 낫기를 바라지만, 내가 나아지지 않으면 어린이도 나아지기 어려운것이다. 드라마에 나오는 철없는 어른과 어른스런 아이같은 관계를 바라서는 안된다. 어린이가 어린이답게 클 수 있도록 이모가 노력할게. 


숙제를 마치고 뽀뽀랑 노는 홀가분한 마음의 어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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