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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작인 Mar 10. 2022

2021년 두 번째로 잘한 일

운동포비아를 탈출하였습니다



지난 2021년 내가 가장 잘한 일은 바로 멈추기로 한 것이었다. 엉망진창인 삶을 멈추고 잠시 돌아보기로 한 것, 스스로 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인정하기로 한 것. 말로는 쉽지만 정말 어렵게 어렵게 해낸, 또 해내고 있는 중인 첫 번째로 잘한 일.



그리고 두 번째로 잘한 일은 바로 달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뭔 소린지 못 알아먹겠으니 부연하자면 그냥 달리기, running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태어나서 자의로 운동을 해본 적이 거의 없다. 키 170에 떡 벌어진 어깨, 여자치고 압도적인 피지컬에 비해 운동신경도 그다지 좋지 않은 편이다. 운동 좀 하게 생겨서 체육대회만 하면 주전으로 나가게 되는데 알고 보니 쟤가 구멍이네의 쟤를 맡고 있는 그런 허당이 바로 나다. (그럼에도 매년 주전이 됐던걸 보면 울 회사 어르신들도 참 꾸준히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둘째 아이를 출산한 후 허리 통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버티다 버티다 정형외과에 가보니 단번에 수술을 권고받을 만큼 상태가 안 좋았다. 일자로 허리를 펴지 못하는 나날이 계속됐고 앉으나 서나 누우나 어떤 자세를 취해도 항상 아팠으니 말은 다했다. 나는 두 번의 출산 때문에 디스크가 발병했다고 생각했지만 의사의 소견은 달랐다. 디스크는 일찌감치 터져서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그동안은 근육이 잘 버텨줘서 모르다가 운동을 너무 안 하니까 근육이 무너져서 이제서야 아픈 거라고. 예…. 운동할게요 할게요…




그렇지만 넘치는 의욕과는 다르게 바로 운동을 시작할 순 없었다. 당장의 통증이 너무 심해서 걷기도 어려운 상황이니 지금 운동을 바로 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고 했다. 일단 휴식과 물리치료를 퉁해 통증을 가라앉힌 후 가벼운 운동부터 시작하라고 했다. 그런데 그 통증이라는 게 쉽사리 가라앉질 않았다. 꾸준히 물리치료를 받고 아무 생각 않고 누워서 푹 쉬어야 염증이 사라지는데 하루에 10시간씩 컴퓨터 앞에 앉아있어야 하는 직장인이 매일 통원치료에 휴식이 가당키나 하나.




그래도 물리치료도 꾸준히 받고 최대한 조심해서 살다 보니 이제 조금 나아지는가(혹은 그냥 통증에 적응하는가) 싶은 느낌이 드는 때가 왔다. 허리 근력을 키우는 필라테스도 좋고 헬스PT도 좋고 여러 운동들이 허리에 좋다고 했다. 그중에서 내가 제일 처음 선택한 건 달리기였다. 가장 허리 근육에 직접적인 자극이 없으면서 전체적인 체력 향상에 도움이 될 것 같기 때문이었다.




살면서 달리기를 아예 안 해본 건 아니었다. 어릴 적부터 오래 달리기 장인이었던 남편을 따라 5km 마라톤에 나간 적도 있었다. 하프 마라톤도 출전한 경력이 있을 정도로 달리기 장인이었던 남편은 장비빨세우기에도 장인이었는데 나이가 들수록 후자 쪽에 좀 더 진심인 사람이 되어갔다. 한참을 달리기를 쉬다가 작년 초쯤 새로 시작한다며 장비빨을 세우기 시작했는데 추위 때문인지 며칠 하다가 그만두더라. 그래서 그 장비들이 아까워 내가 달리기를 시작했다.




 몇 년 쉬다가 갑자기 달리기를 시작하려니 생각만 해도 발목이고 무릎이고 허리고 다 아픈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달리기 앱인 '런데이'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런데이 앱에는 8주간의 인터벌 달리기 훈련을 통해 30분 연속 달리기에 성공하는 게 목표인 프로그램이 있었다. 처음엔 2분 달리고 2분 쉬고, 그다음엔 2분 30초 달리고 2분 쉬고, 그다음엔 3분을 달리고, 또 5분을 달리고 점점 달리는 시간을 늘려 결국 30분까지 쉬지 않고 달리게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처음 며칠 해보니 너무 재미가 있었다. 일단 인터벌이라도 내가 30분가량 뛰고 걸었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인적이 드문 새벽에 공원이나 한강변을 달리니 기분도 너무 상쾌했다. 그래서 3주를 내리 신나게 달렸다.



해 뜨기 전의 여의도를 바라보며 달려나가는 것은 꽤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랬더니 바로 무릎에 무리가 왔다. 도대체 그동안 얼마나 운동을 안 했으면.... 싶으면서도 허리가 아픈 와중에 무릎까지 지병을 달게 되면 큰일이라고 생각해 당장에 달리기를 멈췄다.




 사실 회사 다니기도 바쁜데 아침에 일어나서 달리기를 하는 게 좀 벅차기도 했다. 7시 반에는 출근하러 나가야 되는데 5시 반에 일어나 운동 다녀와서 씻고 애들 등원 준비시켜놓고 나도 출근 준비해서 나가는 게 너무 빠듯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운동을 아예 쉴 순 없었다.




 그래서 자전거를 타기로 했다. 집에 자전거가 없어서 따릉이를 이용하기로 하고 3만 원에 1시간짜리 연간이용권을 끊었다. 시민들의 발이 되라고 만든 따릉이로 조금 어처구니없지만 재활 운동을 시작했다. 일주일에 최소 2 이상 새벽에 1시간씩 자전거를 탔다. 자전거는 속도감까지 있어서  신이 났다. 무릎에는 무리가 가지 않으면서도 허벅지가 터질  같은 느낌이 드는  묘하게 희열이 있었다. 내 딴에는 재활을 목적으로 자전거 타기를 시작한 건데 자전거는  자체로도 재미가 있었다. 그래서 시간 가는  모르고 신나게 탔다. 그게 무려 3개월이나 지속됐다.



주간에 시간이 나면 일부러 맛있는 커피집까지 자전거를 타고 다녀오기도 했다. 이러면서 운동하는 거지 뭐





 그러던 어느 날 다시 달리기를 시작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느끼기에도 다리에 힘이 좀 붙은 것 같았고 무릎도 괜찮아졌다. 그 사이에 휴직을 하게 되면서 앉아있는 시간을 줄이자 허리 통증도 많이 없어졌다. 평생 운동포비아로 살아왔지만 아주 잠깐 달렸던 3주라는 기간 동안 느꼈던 희열을 잊지 못했던 것이다.




 아직 해가 일찍 떠오르는 9월이었다. 그래서 5시~6시 사이 새벽에 일찍 일어나 달리기를 하러 나갔다. 집 근처에 있는 여의도공원을 한 바퀴 달리고 오기도 하고 한강변을 달리기도 했다. 나도 일찍 일어나는 편이긴 했지만 새벽의 공원에는 나보다 더더 일찍 하루를 시작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 운동이 몸에 밴 것 같은 어르신들도 많았고, 어린 나이일수록 더 달콤한 새벽잠을 이기고 나와있는 청년들도 많았다. 그냥 그 시간에 그 자리에 나와있는 것만으로도 많은 에너지를 받았다.




 봄에 시작했다가 중단하고 가을에 다시 시작한 30분 달리기 도전 프로젝트는 겨울이 다 되어서야 달성할 수 있었다. 이제는 언제 어디서든 달리기 시작하면 30분 넘게 거뜬히 달릴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런데이 30분 달리기 8주 프로젝트 달성



사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을 하더라고 새벽에 눈을 떠서 몸을 일으키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인데, 한창 달리기에 빠졌을 땐 눈이 와도 미세먼지가 있어도 달려 나가고 싶어 안달이 났다. 일기예보에 눈이 있는데 설마 진짜 오겠어? 하고 나갔다가 눈사람이 되어 들어오는 날도 있었다.



원래 쌓여있던 눈 아니고 방금 내려서 쌓인 눈길 한강공원




처음 달리기를 시작할 땐 30분 내리 달릴 수만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 와중에 기록에 연연해하는 (전문 러너가 아닌 일반인) 사람들을 보면 참 쓸데없는 곳에 에너지 낭비한다고 생각했었는데 반년도 안 지나서 내가 그런 사람이 되고 말았다. 페이스가 7분대에서 6분대로 줄어들게 되면서 요새는 매일 기록에 연연하는 러너가 되었다. 역시 사람은 입을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여기서 또 한 번 깨닫는 것, 욕심은 한도 끝도 없다.





달리기가 익숙해지니 점차 다른 운동에도 관심이 생겼다. 허리를 강화하고 근육량을 늘리려면 결국 무산소 운동이 필수였다. 당장 집 앞에 필라테스를 끊을까도 싶었지만 체지방량이 돼지보다 높은 수준이었던 나였기에 당장에 어려운 운동을 하는 건 무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애들이 코로나 때문에 수시로 어린이집, 유치원에 못 가고 집에서 가정보육을 해야 했기에 정기적으로 갈 수 있는 운동은 끊기가 주저됐다. 그래서 집에서 맨몸으로   있는 운동을 시작했다. 스쿼트, 크런치, 레그레이즈드 같은 단순하지만 코어를 단련할  있는 운동들 말이다. 처음엔 스쿼트 30 하는 것도 벅찼지만 이젠 마음먹으면 100개도   있게 되었다. 한 번에   있는 개수가 70개를 넘어가면서부터는 카운트도 귀찮아서 그냥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음악이 끝날 때까지 스쿼트를 반복하는 식으로 운동을 하게 됐다.



이렇게 운동을 해도 부족하다는 느낌이 드는 날이면 홈트 영상을 틀어놓고 따라 하기도 한다. 내 동작이 정확한 건지 확인받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평소에 자주 쓰지 않던 근육을 이용하면서 몸을 풀어주고 땀을 흘리고 나면 상쾌했다. 코로나로 밖에 나가는 것이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또 프리랜서처럼 생활이 불규칙해 정기적으로 운동을 못 하는 사람들도 점점 많아질 테니 홈트 시장이 점점 커지겠구나 싶었다.



물론 나도  운동들을 매일매일  하지는 못한다. 특히나 최근에는 코로나가 더더더욱 심해져 아이들이 유치원, 어린이집을 못 가는 날이 더더더욱 많아지다 보니 일주일에 두 번 달리고 홈트를 하는 것도 정말정말 무리를 해야만 가능한 일이 되었다. 그렇지만 한번 운동하는 몸을 만들어놓고 나니 일주일 정도 쉬었다 다시 시작해도 금세 다시 운동하는 몸으로 돌아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내 생애 운동을 즐기는 순간이 오다니, 이건 정말 놀라운 변화다. 세상에 정말 안 되는 일은 없구나 하는 걸 다시 한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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