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쓴 팀장은 스티브 노무사의 조언을 바탕으로 윌리 본부장을 설득했다. 처음에는 완강하게 버티던 윌리 본부장도 현업 책임자인 제이쓴의 이야기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었다. 실제로 잭슨 매니저의 업무스타일만 좀 다듬으면 오히려 적극성과 열정 측면에서는 다른 직원보다 뛰어난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영업하면, 적극성과 열정 아니겠는가?
제이쓴 팀장은 잭슨 매니저의 수습기간이 종료되면서 피드백 면담을 진행했다. 지난 수습 3개월 동안 기대치 대비 괜찮았던 부분과 부족했던 부분을 솔직하게 이야기 하는 자리였다. 앞으로 계속 한 팀에서 일을 해야하기에 불편한 부분이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전달하고 개선을 요구하는 것이 피차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제이쓴 팀장: 잭슨 매니저, 아시겠죠? 잭슨 매니저의 강점도 있지만, 다소 아쉬운 점도 있으니 소통방식과 협업 관점에서 좀 더 하나의 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 주세요. 앞으로 잘 해 봅시다. 이번에 저도 윌리 본부장님 설득하는것이 매우 힘들었는데, 저도 잭슨 매니저의 강점에 집중하기로 했어요. 잘해봅시다?
-잭슨 매니저: 네, 팀장님, 사실 저도 구성원들이 그렇게까지 생각하는지 몰랐습니다. 저도 명색이 경력입사인데, 수습 3개월 동안 뭔가 결과를 보여드려야겠다는 생각에 빠져있다보니 구성원들에게 불편함을 준 것 같습니다. 이제 수습도 끝났으니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제이쓴 팀장: 좋습니다. 기대합니다. 오늘 점심은 저랑 같이 드시죠. 제가 사겠습니다. 면담 후 제이쓴 팀장의 마음은 한결 편해졌다.
'그래, 불편해도 말하길 잘했어. 이제 정말 잘하겠지?'
잭슨 매니저의 지각이 반복되고 있다.
면담 이후 팀 분위기는 괜찮았다. 잭슨 매니저가 눈에 띄게 부드럽게 소통하고, 다른 구성원의 피드백이나 도움 요청에도 잘 응해주었다. 같은 팀 다니엘 매니저도 잭슨 매니저가 면담이후 태도가 많이 달라졌다면서 좋아했다.
그런데 몇 주 쯤 지났을까 잭슨 매니저가 아침 출근시간 5분 정도 지각을 하더니, 이후로 일주일에 1~2번 정도 거의 주기적으로 10~20분 지각을 하는 것이 아닌가? 첫 번째 지각이 있었을 때, '직장 생활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하고 그냥 넘어갔는데, 이제는 습관적으로 지각을 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었다. 때 마다 이유는 있었다.
'지하철이 늦게 왔다.', '갈아타는 버스가 제 시간에 안왔다.'
수습기간 중에는 지각을 한 번도 안하던 친구가 수습기간이 종료되고 나서 이런 모습을 보이니 팀장인 나로서는 정말 당황스러웠다. 면담이후 괜찮았는데, 이런 변수가 생길 줄이야.
윌리 본부장님의 시야에 이 모습이 들어왔는지, 또 나를 부른다. 잭슨 매니저 계속 근무와 관련해서 나와 의견대립이 있었던 윌리 본부장은 건수를 잡은 듯 했다.
-윌리 본부장: 제이쓴 팀장, 내가 뭐랬어요? 사람 잘 안변한다고 했죠? 지금 몇 주새 잭슨 매니저 지각이 몇 번째에요? 지난 본부 전체 회의 때 잭슨 매니저 기다리느라 본부 전체 인원이 20분이나 기다렸는데, 왜 개선이 안됩니까?
-제이쓴 팀장: 아.. 네...그게...그 친구도 사정이 있었다고...
-윌리 본부장: 다른 직원들은 뭔가요? 나도 마찬가지고, 출퇴근 어려움은 다들 있는 것이고, 정말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출근 시 발생하는 변수를 잘 고려해서 출근시간을 맞추는 것이 기본 아닙니까? 도저히 그냥 넘어 갈 수가 없으니 잭슨 매니저에게 시말서 받으세요. 꼭 팀원들에게 미안하고, 반성한다는 내용이 꼭 포함되도록 하세요. 당연히 한 번더 그러면 징계한다고 이야기 하고..
나는 사실 할 말이 없었다. '잭슨 매니저 이 녀석, 왜 그럴까..., 수습끝나니 마음이 돌변했나?' 지난 번 인사팀에서 공유한 시말서 양식을 출력해서 다시 잭슨 매니저와 면담을 하러 간다.
오후 4시 쯤 잭슨 매니저를 소회의실로 불렀다. 최근 지각 상황을 이야기 하고, 어제 본부 회의가 있던 날 20분이나 지각한 상황을 이야기 하면서 시말서를 작성하라고 하였다.
-제이쓴 팀장: 윌리 본부장님이 화가 많이 나신 것 같습니다. 나도 팀장으로서 봐줄 수 있는 한계를 넘었어요. 일단 시말서 써서 제출하시고, 다시 지각하시면 징계조치 할 수 도 있어요.
-잭슨 매니저: 팀장님, 저는 제 시간에 집에서 나왔는데, 지하철이 늦게 온거 잖아요.
-제이쓴 팀장: 정말 큰 사고가 있는 경우가 아니면 그런 부분까지 고려해서 출근 시간을 지키는게 직장생활 아닙니까? 다른 직원들도 비슷한 상황에서 다 제때 출근합니다. 잭슨 매니저도 신입사원이 아니니 충분히 이런 맥락을 이해하리라고 봅니다. 그리고 본부장님 요청이니 시말서에 미안하다는 내용과 반성하는 내용을 담으라고 하시네요. 내일까지 써주세요.
잭슨 매니저의 시말서 작성 거부, 괜찮은 걸까?
당연히 분위기는 영 좋지 않았다. 그런데 잭슨 매니저의 반응이 의외였다.
-잭슨 매니저: 팀장님, 제가 지각한 건 맞고 인정하겠지만, 미안하다는 내용은 못 쓰겠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출근 시 여러 변수를 고려해서 지각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분명히 제 시간에 나왔습니다. 제가 늦잠을 잤으면 모를까, 사과까지 꼭 해야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네요. 반성문 작성하라고 하시는 거면 저는 시말서 안쓰겠습니다.
또 다시 잭슨 매니저의 고집이 나오는 것 같았다. ’하, 이런 반응일 줄이야...‘ 내일까지 윌리 본부장에게 잭슨 매니저의 시말서를 전달해야하는데, 큰일이다.
역시 이럴 땐 스티브 노무사를 찾을 수 밖에 없다. 다시 한번 스마트 폰을 찾는다.
-제이쓴 팀장: 스티브 노무사, 어떻게 하냐? 이거 바로 징계 들어가야 할까?
-스티브 노무사: 제이쓴, 수고가 많다. 이제는 네가 참 안쓰러워보여. 내가 친구로서 도와 줄 수 있는게 감사할 따름이다. 그런데 시말서에 대해서 할 이야기가 있어. 시말서는 사죄문이나 반성문이 아니야. 시말서를 한자로 써보면 始末書인데, 그냥 일의 시작과 끝을 정리한 문서 즉, 사실확인서나 경위서 정도로 이해할 수 있어. 많은 분들이 시말서를 반성문으로 알고, 잘못한 직원에게 반성문 목적의 시말서를 쓰도록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거는 문제가 될 수 있어.
-제이쓴 팀장: 그래? 난 첨 듣는 이야기인데? 뭔 근거로 그런 이야기를 하는거야?
-스티브 노무사: 하급심 법원(서울행정법원 2008.7.17선고, 2007구합46005 판결)에서는 사죄문이나 반성문 작성을 요구하는 시말서 작성 강요는 헌법 상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판단한 바 있어. 단순히 사실관계 확인을 위한 경위서나 확인서 관점의 시말서는 문제가 없지만, 사죄나 반성을 강요할 수는 없다는 거지.
-제이쓴 팀장: 그래? 그럼. 잭슨 매니저가 시말서 작성을 거부해도 문제가 없는 거야?
-스티브 노무사: 응, 반성문을 포함시키도록 한 거면 잭슨 매니저의 시말서 작성 거부는 문제가 없을 거라고 봐. 다만, 지금이라도 6하 원칙에 따른 사실관계 확인, 지각으로 인해 조직에 끼친 부정적 영향이 무엇이었는지, 재발방지 약속과 대책 등을 작성하도록 하는 건 가능하니 거기에 집중하도록 해. 일단 윌리 본부장에게 반성문을 요구하는 것이 무슨 문제가 있는지 이야기 해주고, 잭슨 매니저와 면담도 다시 해야할 거야. 잭슨 매니저도 이 정도 요구를 하면 시말서 작성을 거부하지는 않을거야. 그 친구도 합리적인 이야기는 잘 듣잖아?
그리고 노파심에 하는 이야기인데, 앞으로 ’시말서‘라는 용어쓰지 말고, ’확인서‘정도로 수정하는게 좋을 것 같네. 인사팀에 이야기해서 한 번 바꿔바. 그리고 경위서 작성 관련해서 현업 팀장들 교육 꼭 하라고 하고, 잘못하면 반성문을 강요했다는 이유로 직장내 괴롭힘 이슈로 확대될 수 가 있으니까.
-제이쓴 팀장: 어우, 왜 이렇게 모르는게 많을까. 너 말 들어보면 내가 참 무지함을 느낀다. 넌 정말 내 베프다. 고마워. 얼른 윌리 본부장님 만나러 가야겠다. 다음에 봐.
시말서 작성과 관련한 몇 가지 주의사항
시말서는 사실관계 확인을 위한 경위서 또는 확인서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시말서라는 용어를 쓰지 않는 것을 권장한다.
헌법 상 양심의 자유가 있고, 시말서 작성 시 사죄나 반성을 강요하는 것은 헌법 상 양심의 자유 침해로 인정받을 여지가 있으므로, 반성을 강요해서는 곤란하다.
징계관련 문제가 있는 직원에게 사실관계 확인을 위한 확인서를 요청하였으나 합리적인 이유없이 이를 거부하면, 그 자체가 추가 징계사유가 될 수도 있다. 다만, 반성을 강요하는 경우는 이를 직원이 거부하여도 문제가 없을 것이다.
현업 팀장에 대한 교육이 매우 필수적이다. 현장 리더의 몰이해에서 문제가 불거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