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이 따라 하면 어떻게 할 거예요?
시장을 개척하는 스타트업들이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대기업이 따라 하면 어떻게 할 거예요?"인 것 같다. 그 질문에 명쾌한 답변을 들어본 기억은 없다.
대기업이 시작하기 전에 빠르게 시장을 선점한다
대기업이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더 잘할 것이다
정도가 그나마 수긍이 갈 만한 답이었다. 그만큼 대기업이 가진 거대한 자본과 인프라, 축적된 경험은 한낱 작은 스타트업이 상대하기에는 엄두가 안 날 정도로 강력하다.
그리고 건강한 저칼로리 아이스크림을 만들고 있는 라라스윗은 그 상황에 직면해 있다. 당장 이번 달을 시작으로 국내 굴지의 기업들이 동일 상품군의 제품 출시를 앞두고 있다. 그나마 수긍이 간다 했던 3가지 답변도 우리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다. 자본, 경험, 인프라 등 뭐 하나 나아 보일 게 없는 라라스윗이 IT업종도 아닌 제조업에서 이 험난한 여정을 어떻게 극복해나갈 수 있을까?
우리는 그 해답을 '고객'으로 정의한다. 식상해 보이는 답변이지만 대체 우리가 말하는 고객이 무엇인지, 그리고 왜 그것이 대기업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해답이라고 하는지에 대해 풀어보고자 한다.
우리가 말하는 '고객'이란 단순히 결제를 통해 우리에게 매출을 발생시켜주는 '구매자'가 아니다. 우리에게 고객이란 구매자를 넘어, 라라스윗을 아끼고 응원해주며 쓴소리 조차 마다하지 않는 '서포터'를 말한다. 그렇기에 사업 초기 단계에서, 모든 구매자를 동일하게 놓아버리는 조회수, 결제 전환율, 객단가 같은 수치보다 고객 한 명 한 명이 전해주는 소리를 더욱 중요한 가치로 두고 있다.
첫 번째 펀딩을 끝마친 뒤, 고객들로부터 피드백을 받았다. 기존에 일일이 돌아다니면서 받던 제품 리뷰를 조금 더 다양한 고객들에게 받아보기 위해서였다. 피드백이 하나둘 쌓여가면서 놀랐던 점은, 한두 줄의 구매평이 아닌 평균 500자가 넘어가는 디테일한 내용들이 절반 이상이었던 것이다. 심지어, A4용지 5장이 부족할 정도로 피드백을 남겨주신 분들도 계셨다. 내용들 또한 단순한 맛 평가보다는 잘한 점, 아쉬운 점, 나아가야 할 점들이 반복적으로 녹아있었다. 고객들은 생각 이상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구매자' 들로부터 설문을 받고자 했었는데 '서포터'들에게 조언을 얻으며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었다.
결국 120개가 넘는 피드백들을 종합해 개선해야 할 점들을 정리한 뒤, 판매를 중지하고 정비 기간을 가지게 되었다. 경쟁사들이 하나둘 나오고 있는 시점에서 1개월간 판매를 중단한 만큼 매출뿐 아니라 여러 부분에서 손해를 보았지만, 서포터들은 자신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회사를 쉽게 버려두지 않았다. 개선이 끝나고 돌아왔을 때, 지난 1개월간 매출액을 단 4일 만에 달성할 수 있었다.
초기 기업들은 거의 모든 것이 부족하다. 마케팅 비용 또한 마찬가지다. 인지도가 없는 상태에서 고객에게 우리의 새로운 제품을 알리기 위해서 블로그, SNS 인플루언서 홍보 등 마케팅을 하는 것은 당연한 선택인 듯하다.
1차 펀딩이 끝난 뒤 우리 또한 고민에 빠졌다. 영혼 없는 SNS 마케팅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누구나 다 하고 있는 것들을 안 하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는 장기적으로 우리의 경쟁력이 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곧 들어올 큰 회사들과의 경쟁에서 마케팅 비용으로 승리할 가능성은 0%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 비용을 제품에 투자하기로 결정했고, 바닐라빈 아이스크림의 바닐라빈 함량을 올리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이 사실을 기존 서포터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렸다.
서포터들은 이 사실을 알고 가만히 있지 않았다. 우리 대신 라라스윗을 이곳저곳에 소개해주었고, 동시에 40개가 넘는 블로그 후기와 200개가 넘어가는 인스타그램 리뷰, 거기에 생각도 못하던 영상 리뷰까지 만들어졌다. 애초의 고민이 무색할 만큼 좋은 결과를 얻으며, 우리는 서포터와 좋은 제품을 동시에 얻게 되었다.
서포터는 갑자기 다가오지 않는다. 서포터들도 구매자로 시작한다. 우연히 우리 제품을 알게 되었고, 확신보다는 고민 끝에 구매를 결정하게 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제품이 뛰어나다면 문제없지만, 대부분 그렇지 않다. 우리 또한 많은 실수가 있었다. 뚜껑이 깨지는 사고부터, 제품을 잘못 보내기도 하고, 배송일을 다르게 보낸 경우도 있었다. 이런 문제가 발생했을 때, 본인이 약속받은 것을 받지 못한 구매자들은 기본적으로 화가 나 있다. 다만, 우리는 이런 분들을 쉽게 흘려보내지 않았다.
불만에 관련된 접수가 들어오면, 아무리 늦은 시각이라도 바로 연락을 드리고 문제를 해결해드렸다. 늦은 시각이라 화를 내시지 않을까 고민도 했지만, 늦은 시각에 화가 난 상태로 잠들기보다 빠르게 해결해드리는 게 좋다고 판단해서였다. 신기하게도 그럴 경우 단 한분도 화를 내시지 않았고 오히려 빠른 응대와 조치에 되려 고맙다는 말을 해주시며, 늦은 시간 고생한다며 힘을 내라는 응원도 많이 받았다. 실수는 우리가 했는데 오히려 고맙다는 말을 듣게 될 때의 기분은 참 묘했다.
그렇게 우리는 구매자를 잃을 뻔한 위기를, 서포터를 얻는 기회로 바꾸었다.
우리가 서포터의 의미를 깨닫게 된 곳은 '와디즈'다. 처음엔 그저 크라우드 펀딩을 위한 채널 정도로 선택하고 다가갔다. 와디즈가 가진 선주문, 일괄 배송 등의 방식이 초기 자금을 절약하는 좋은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번째 펀딩을 하면서 와디즈가 가진 힘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와디즈의 댓글은 일반 쇼핑몰들과는 다른, 특이한 점이 있다. 와디즈에서 펀딩에 참여하는 '서포터(고객)'들은 끊임없이 '메이커(브랜드)'에게 대화를 시도한다. 마치 오랜 기간 알고 지냈던 사이처럼 다가와 편안하게 말을 건다. 그리고 우리 또한 원래 그랬던 것처럼 답을 한다. 다른 쇼핑몰의 댓글들이 구매평에 그치는 것 과는 매우 다르다. 이는 더 이상 고객과 브랜드가 구매자-판매자의 관계가 아님을 의미한다. 그렇게 서로 인지하지 못한 채 관계를 맺기 시작하고, 이들은 브랜드와 대화하며 자연스레 서포터가 되어간다. 이렇게 맺어진 서포터들은 앞서 말한 것처럼, 초기 회사가 길을 헤쳐 나가는데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준다.
이런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하는 와디즈의 디테일한 노력들이 뒤늦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판매', '구매'라는 용어를 금지하고 '메이커'와 '서포터'라는 용어를 강요한다. 또한 매일 아침 9시면 날아오는 미답변 댓글 알림은, 메이커가 서포터와 소통할 의무를 상기시킨다. 처음에는 불편하고 어색했던 이 모든 것들이 와디즈가 의도한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이 서비스가 가진 잠재력과 무서움을 깨닫게 되었다. 와디즈는 '고객과 브랜드의 거리를 최단 거리로 좁혀주는 공간'이다.
서포터를 대하는 방법론적인 부분을 이야기했지만, 이외에도 보이지 않는 작은 노력들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모든 시작은 '고객들이 이런 것을 좋아하지 않을까?', '이런 것은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진심을 다해서 고객을 대하다 보면, 고객들도 우리의 진심을 알아줄 것이라 믿는다.
머지않아 대기업들이 유사 상품을 더욱 저렴한 가격에 더욱 공격적으로 공급할 것이고 우리는 그들과 경쟁할 수 없다. 또한 경쟁하지 않는다. 지금처럼 진심으로 대하면서 우리 고객을 하나 둘 늘려가는 데에만 집중할 것이다.
우리는 이런 제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