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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청 Oct 14. 2020

덜 그린 듯한 그림

묘사력 이외의 어떤 것

quack


에어브러쉬로 만진 듯한 텍스쳐.

테두리선에 한치 오차 없이 들어가 있는 색.

흠잡을 데 없는 투시와 명암.


형식적으로 완벽한 그림에는 잘 매력을 잘 느끼지 못한다. 이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취향과 지향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당연히 작가가 완벽한 그림을 그리기 위해 연마한 시간과 노력에 경탄하지만 내 영혼에 말을 거는 그림들은 어딘가 덜 그린 듯한 그림들이다.


하지만 그건 절대 덜 그린 그림이 아니다. 덜 그린 듯할 뿐이다.


간혹 어떤 사람들이 그런 류의 작품들을 보고는 '저건 나도 그릴 수 있겠다'라거나 '애가 그린 것 같은데' 등등의 평을 하는 것을 전시장에서나 인터넷에서 본 적이 있다.  


그렇지만 아이가 그린 것과, 작가가 의도를 가지고 아이처럼 그린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만약 일반 사람이나 덜 훈련된 작가에게 똑같이 그려보라고 하면, 그림은 그림대로 못 그리고 그림에 담겨있는 뉘앙스나 느낌까지 없애버릴 것이다. 그러니까 사실 덜 그린 듯한 그림은 사실 흉내 낼 수는 있어도 진정으로 따라 하긴 어렵다. 덜 그린 듯한 그림은 정말 어려운 그림인 거다.


또 그런 그림을 그린 작가들은 마음만 먹으면 흔히 말하는 '사진같이 잘 그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묘사하는 것은 엄청난 시간을 훈련해야 하지만, 훈련하면 도달할 수 있는 경지다.


묘사력도 끈기와 노력이 없다면 절대 성취할 수 없는 능력이기 때문에 높이 평가해야 마땅한 가치지만, 묘사력만으로는 전달할 수 없는 그림의 영역도 분명히 있다. 때로는 쉬워 보이는 그림 아래 더 많은 고민과 연습의 시간들이 버티고 있을 수 있다.



인스타그램: @byjeanc

웹사이트: https://www.artbyjean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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