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거와 많이 다른 일본-25>>
일본의 아베 전 총리가 퇴임 후 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에 그토록 집착하는 일본 지배층에 우리는 또 분노하고.. 여전히 무한반복이다.
그런데, 이참에 2차대전 전범에 대한 우리의 상식적 이미지와 실제와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 있다는 점도 확인할 필요가 있겠다. 일본이 왜 저러는지 보다 분명히 짚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이런 질문을 던져보자. 독일과 일본의 전범은 같을까, 다를까라는 질문...
1945년 연합군이 2차대전에서 승리했다. 전쟁을 일으킨 독일과 일본을 단죄하고 과거를 정리할 역사적 무대에 서게 됐고, 그래서 전범 재판을 열기로 했다. 범죄자를 정해야 했고, 그러려면 그들이 자행한 범죄의 유형을 구분해 정의해야 했다.
먼저 첫 번째는 전쟁 자체가 나쁜 거니까 이런 전쟁을 기획하고 총지휘한 최고 인사들이 제일 나쁜 놈들이다, 그야말로 평화를 해친 범죄(Crimes against Peace)를 지은 것이니, A급 전범이라 규정했다. 일본의 A급 전범 중 사형당하거나 옥사한 14명이 야스쿠니에 합사돼 있다.
그다음은 전쟁에 참여한 것은 어쩔 수없다 해도 적어도 전쟁의 규칙은 지켜야 하는 거 아니냐 하는 문제의식이다. 민간인을 학살한다든지 포로를 학대한다든지 이런 행위는 아무리 전쟁 중이어도 해서는 안될 범죄 아니냐... 즉 전쟁에도 룰은 있는 법이니, 이것을 어긴 사람들은 B급 전범으로 단죄하자, 다시 말해 통상의 전쟁 범죄(Conventional War Crimes)를 저지른 사람들로 규정한 것이다.
여기까지는 자연스럽게 정리가 됐다. 그런데 이렇게 하고 보니 미국이나 유럽인들 입장에서 한 가지 중요한 지점이 빠져 있었다. 인류의 가장 큰 비극 중 하나로 여겨지는 유대인 학살 문제다. 독일이 벌인 만행을 촘촘히 처벌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경우다. 독일군이 2차대전 중 다른 국적 유대인을 학살한 경우는 통상의 전쟁 범죄, 즉 B급으로 어쨌든 다룰 수 있겠지만, 만약 독일 국적의 유대인들, 즉 자국민을 학살한 경우는 어찌할 것인가? 또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전쟁과 무관하게 벌어진 유대인 학살은 또 어찌할 것인가? 국적과 시기에 상관없이 유대인에 가한 독일군의 만행을 빈틈없이 처벌하기 위한 고민이, 바로 인권을 유린한 범죄(Crimes against Humanity), C급 전범의 탄생 배경이라 할 수 있다.
B급 전범과 C급 전범은 전쟁 중이라 하더라도 어떤 ‘선’을 넘어서는 잔인한 행위를 처벌한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B급으로 처벌하지 못하는 부분, 즉 자국민에 대한 인권유린, 2차대전 이전에 벌어진 인권유린은 C급으로 처벌 가능하다는 점에서, 확장과 보완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바로 여기서 불편한 진실이 탄생한다.
일본의 전범에게는 이 C급 혐의가 적용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일본은 인권을 유린하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 무슨 의미인가? 요컨대 이런 말이다. 일본이 자국민, 즉 조선인에게 행했던 잔혹한 통치를 연합국은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우리로서는 대단히 납득하기 어려운 당시 국제사회의 상식을 직면하게 만든다. 즉, 일본 국적인 조선 민중에 대한 일본인들의 폭압은 1945년 전범 단죄의 그물망 밖에 있었다. 형식상 일본 국민이었던 조선인에 대해 일제가 자행했던 탄압과 인권유린에 대한 처벌 의지가 당시 연합국에는 전혀 작동하지 않았던 게 현실이다.
미국과 영국이 일본과 전쟁 과정에서 가장 치를 떤 건 포로 학대 문제였다. 독일군이나 이탈리아군에 포로로 잡힌 미국, 영국 병사의 사망률은 4%인데 비해 일본군에 포로로 잡힌 병사의 사망률은 무려 27%였다고 한다. 포로감시원으로 차출됐던 조선인들이 B급 전범으로 추궁받고 목숨을 잃기도 한 비극은, 당시 연합국의 분노가 식민지 청년들의 사정을 감안할 ‘상식’조차 없었음을 냉정히 반증한다.
결과적으로 ‘C급 인권유린 범죄로 독일 전범은 단죄하지만 일본 전범은 그럴 필요가 없다’는 팩트만 남았다.
이런 내막이야말로 한국인 입장에서 보자면 2차대전 전범 재판이 얼마나 한계가 많고 부족한 행위였는지 선명히 다가오게 한다. 식민지 조선에 저지른 일제의 만행이 연합국에게는 범죄로 인식되지 않았던, 1945년 당시 국제사회의 기준과 상식이야말로 우리로서는 뼈아프지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혼선의 배경이자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일본과 독일이 똑같은 전범국가인데, 이웃국가에 대하는 사죄의 태도는 하늘과 땅처럼 다르다는 점을 우리는 늘 지적하고 비판하지만, 주된 처벌 내용에서 일본과 독일은 전혀 달랐다고 일본 주류는 끈질기게 강조하고 있다. 일본이 포로 학대로 상징되는 전장에서의 범죄였다면, 독일은 유대인 학살로 상징되는 민간인 인권유린 범죄였다고, 일본과 독일은 전범국이지만 전혀 다르다고, 그러니까 조선인을 유린했다고 국제사회에서 지적받고 규탄받은 적이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2015년 미국을 방문한 아베 총리는, 유대인 학살 추모관을 찾아 당당하게 추모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역설하고, 유대인을 구출하는데 도움을 준 일본인을 상기시키는 행보를 보였다. 당시 우리 언론은 아베가 독일처럼 과거사를 반성하지는 않으면서, 유대인 학살에는 공감과 분노를 표하는, 뻔뻔한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그들은 황당한 두꺼운 얼굴로 국제사회에서 뻗대는 게 아니라, 자신들이 던지고 싶은 메시지를 자리를 봐가며 일관되게 전파하고 있을 뿐이다. 국제사회에서 통용될 상식에서 자신들이 들어갈 수 있는 아주 좁은 구석을 빈틈없이 찾아낸 다음,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자신들의 입지를 넓히고, 자신들의 주장을 더 커진 목소리로 세상에 퍼뜨려왔다.
일본은 ‘무작정 질주’하고 있는 게 아니라, 국제사회에 놓인 자신들의 위상과 국제사회가 만들어놓은 기준을 정확히 체크하며 처신하고 있다. 이중적인 행보라고 그들의 표면에 주목할 게 아니라, 이중적인 것처럼 보이는 행보를 그들이 일관되게 밀고 가는 이유와 근거가 어디에 있는지 봐야 하지 않을까? 전범 논리가 확산하면서 우리의 아픔이 부각되고 일본이 우리에게 반성하게 됐는가, 아니면 그들에게 탈출구를 마련해주고 뻔뻔해질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해 주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