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윗드림 Sep 20. 2021

정직하게 기다리는 자에게 복이 아닌 불공정?

<오징어게임>의 명대사

버스를 한번 더 갈아타야 하는 출근길엔 항상 잠이 덜 깬 채 멍하니 줄을 선다. 오늘도 어김없는 만원 버스엔 비집고 들어갈 공간이 많지 않다. 다음 버스엔 탈 수 있겠지?라고 기대하는 순간, 버스 기사님이 뒷문을 열며 "뒤쪽으로 타세요."라 외친다. 그러면 뒤쪽 줄에 서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타고, 앞쪽에 멍하니 있던 나는 버스 한 대를 그렇게 놓치게 되고 다음 버스를 기다려야 한다.


분명 내가 먼저 줄을 섰는데 왜 저들이 먼저 타지?

뒷문을 열어줬기 때문에 먼저 타는 사람은 뒷문 가까이에 있던 사람들이다. 먼저 와서 앞쪽 줄에 서 있었던 사람에겐 불공정한 일이 되어버린다. 직장에서 막내라도 자신의 기여엔 합당하게 인정을 받아야 하고 가사노동은 구성원 모두에게 공평하게 분배되어야 하며 학생들은 누군가가 묻어가는 그룹 프로젝트가 아닌 개인과제를 더 선호한다. 상품을 구매할 때도 그 브랜드의 올바른 선한 영향력을 더 중시하는 요즘 세대이다. 공정함에 대한 요구가 높아진 시대가 왔다.


이슈가 있을 때 불붙는 불매운동은 단순한 열기가 아니라 공평성, 선한 영향력, 효능감에 대한 열망이 표현된 것이다. 기업의 불공정 관행에 대해서는 혼쭐을 내주고, 선한 활동에 대해서는 '돈쭐(착한 기업을 대상으로 소비자들이 자발적으로 진행하는 팔아주기 운동)'을 내준다. 2020년에는 조직화되어 선한 기업의 리스트를 공유하고 팔아주기 운동을 벌이는 사회 전반적 선한 영향력이 전파되고 있다.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에게 새로운 기회를

《오징어 게임》


구조조정으로 실직한 후 사채와 도박을 전전하다 이혼을 당하고 무기력하게 사는 74년생 성기훈. 어머니의 돈을 훔쳐 경마장으로 향하는 철없는 무직자이다. 현재 채무액 사채 1억 6천, 은행 대출 2억여 원으로 새아빠를 따라 미국에 간다는 딸과 당뇨로 당장 입원해야 하는 어머니를 위해 큰돈이 절실하다.


사채업자들이 들이닥쳐 신체포기각서까지 쓴 이생망인 기훈에게 지하철 역사에서 의문의 제안이 들어온다. 딱지치기 게임을 해서 이기면 10만 원씩 주겠다고. 돈 없는 기훈은 질 때마다 몸으로 때우고 이길 때는 10만 원씩을 받게 된다. 그러고 나서 전해받은 명함 한 장. 자리가 얼마 안 남은 일확천금의 기회를 알려준다.  절벽에 몰린 그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지금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은 모두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지고 삶의 벼랑 끝에 서 계신 분들입니다.

그렇게 벼랑 끝에 몰린 전국 각지의 이생망들 456명이 한자리에 모인다. 이상한 가면을 쓴 진행요원들이 모두에게 공정한 게임을 위해서 게임 정보는 사전에 공개할 수 없다 말한다. 이 게임 세상에서는 현생에서 망한 내가 다시 시작할 수 기회는 물론 게임의 '공정함'이 반영되어 있다. 바깥에서 어떤 직업가졌던 얼마만큼의 빚을 지고 있든 간에 이곳에서는 똑같은 체육복이 주어지고 이름 대신 번호를 지칭하며 다시 생을 시작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이생망 456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오징어게임, 넷플릭스
제1항, 참가자는 게임을 임의로 중단할 수 없다.
제2항, 게임을 거부하는 참가자는 탈락으로 처리된다.
제3항, 참가자의 과반수가 동의할 경우 게임을 중단한다.
 여러분께선 그런 저희를 믿고 모두 자발적으로 어떤 강압도 없이 이 게임에 자원하셨습니다.

돌아가서 남은 인생을 빚쟁이들에게 쫓기며 쓰레기처럼 사시겠습니까? 아니면 저희가 드리는 마지막 기회를 잡으시겠습니까?
첫 번째 게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오징어게임, 넷플릭스

5분 안에 술래의 눈을 피해 결승선으로 들어와야 하는 누구나 해본 그 어릴 적 게임이 이제 살인게임이 되었다. 술래의 눈에 움직임이 포착된 사람은 가차 없이 총살을 당한다. 살아 숨 쉬던 옆사람이 피를 튀기며 죽는 모습에 정신을 잃고 게임에서 이기려는 인간의 본성이 나오게 된다. 어쨌든 5분 안에 결승선을 통과해 살아야겠다는 일념 하에.


첫 번째 게임이 끝나고 겁에 질린 생존자들은 살려달라 울부짖는다. 게임을 계속할 것인가, 여기서 중단할 것인가. 참가자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투표가 진행된다. 그 전, 255억의 상금이 돼지 저금통에 적립된 것을 제눈 앞에서 본 참가자들은 혼돈을 겪는다. 한 표 차로 인해 게임은 더 이상 진행되지 않고 그들은 망한 바깥세상으로 다시 돌려보내 진다. 이들이 접한 현실은 게임에서 죽는 게 나을 만큼 가혹하기 그지없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다시 게임 세상으로 돌간다. 달콤하면서도 잔혹한 게임은 계속된다. 이기지 않으면 죽게 되는 게임에 무슨 수를 쓰더라도 살아야 하는 것밖에 선택권이 없다. 옆에 누군가가 단숨에 죽는 걸 지켜보는데 제정신으로 참여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인간 본성의 바닥을 보이며 상금을 위해, 아니 생존을 위해 처절히 이기고 싶어 한다.


하지만 너희들은 이곳에서 가장 중요한 걸 망쳐놨어. 평등이야. 이 게임 안에선 모두가 평등해. 참가자들 모두가 같은 조건에서 공평하게 경쟁하지. 바깥세상에서 불평등과 차별에 시달려 온 사람들에게 평등하게 싸워서 이길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주는 거야.


공평하게 경쟁을 하는 게임이라고 하지만 그들에게는 능력치와 나이, 성별이 모두 다르다. 어떤 이는 게임 룰을 이미 알고 있으며 협상을 통해 미리 게임 정보를 획득하기도 한다. 어떤 게임이 진행될지도 모르며 전혀 게임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불공평한 시작이 되는 것이다. 정말 평등한 게임이란 애초부터 없는 것이다. 이들은 그저 바깥세상보다 조금이나마 나은 이 게임 세상에서 한줄기의 희망을 바라보며 처참하게 살고자 한다.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이 모든 것은 돈 많은 사람들의 단순한 재미 추구로 시작되었다. 돈이 하나도 없는 사람과 돈이 너무 많은 사람의 공통점은 사는 게 재미가 없다는 것. 그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마련된 게임인 것이다. 인생은 짧기에 더 재밌는 것 더 악랄하고 자극적인 게임을 찾아 나서다 고안한 잔인한 게임 속에 빠져들게 된 것이다. 이 세계에서는 오직 사람들 서로를 죽이고 이용하며 배신해 결국 승리한다고 믿는다.



인간은 어디까지 악랄해질 수 있는가?


하얼빈 여행 때 멸종 위기에 처한 시베리안 호랑이를 볼 수 있는 '동북 호림원(Siberia Tiger Forest Park)'을 방문한 적이 있다. 호랑이 번식 사육 기지인 이곳은 차를 타고 다니며 야생의 호랑이를 볼 수 있는 사파리 체험이 가능하다. 매표소 요금표에 닭, 소 등 호랑이가 아닌 동물도 있어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살아있는 닭이나 소 한 마리를 구매하면 호랑이 사육 기지로 넣어 눈앞에서 닭과 소를 물어뜯는 쇼를 보여준다고 한다.


실제로 몇몇 관광객이 닭을 구매해 호랑이 떼 사이로 던졌으며 굶주린 그들은 닭 한 마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야생의 모습을 눈앞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거친 장면을 즐기는 누군가는 소를 구매할지도 모른다. 오징어게임의 VIP들은 잔인한 장면에 익숙해졌기에 더 악랄한 방법을 동원해 화면 너머로의 인간 살상을 즐기는 것이다.


전 세계에서 온 VIP들은 인간이 두려움에 떨고 서로를 미워하고 욕심을 부리는 살생 장면을 유쾌하게 지켜본다. 사람에 대한 연민과 믿음은 없고, 같은 인간임을 잊은 채 그들에게 놀람과 즐거움, 또 순간의 쾌락만 줄 수 있다면 호랑이굴에 소를 던지듯 상금이라는 보상을 걸고 인간을 던지는 것이다. 그들이 과연 공정한 게임을 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공정하다면 벼랑 끝에 몰려 선택권이 많지 않은 절실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지 말아야 한다. 굶주린 배를 채운다는 명목으로 바깥세상 삶이 지옥 같은 사람들에게 희망고문을 하지 말아야 한다. 게임이 시작되기 전 이기지 못하면 죽는 게임이라는 사실을 알려줬어야 한다. 게임 세계에 던져진 그들은 공평하지 않은 경쟁이라도 한번 경쟁에서 도태된 사람에겐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공정성에 대한 열망이 한국사회에서 커져가고 있다.『트렌드 코리아 2020』에 따르면 한국 사회의 평등 지향성이 높아지면서 차별에 대한 인식이 더욱 커지고, 경제적 풍요 속에서 성장했지만 저성장 시대의 좌절감도 경험한 밀레니얼들의 특성 때문이라 말한다. 또한 자신의 목소리를 충분히 낼 수 있는 페어 플레이어 세대의 효능감이 높아져서이기 때문이다. 완전한 공정은 없겠지만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라며 부조리와 몰상식에 맞서 소리를 높여야만 이 사회가 조금이나마 변할 수 있다.


참가자들의 목숨 값인 456억 원을 획득한 기훈은 죄책감에 돈도 쓰지 못하며 우울한 나날을 보내게 된다. 수많은 이들의 욕망과 배신이 묻은 돈다발이기 때문이다. 기훈은 "원래 사람은 믿을만해서 믿는 게 아니라 안 그러면 기댈 대가 없어서 믿는 거지."라 말하면서도 사람에 대한 동정심을 놓지 못한다. 죽기 전까지 사람의 온정을 믿지 못하는 주최자는 쓸쓸히 홀로 죽음을 맞이한다. 참으로 운수 좋은 날이다.


모든 사람은 죽음 앞에서 평등하다.
-로마의 시인 푸블릴리우스 시루스
이 게임에 과연 승자가 있는가? @오징어게임, 넷플릭스


<참고 자료>

- 나무위키 https://namu.wiki/w/%EC%98%A4%EC%A7%95%EC%96%B4%20%EA%B2%8C%EC%9E%84?from=%EC%98%A4%EC%A7%95%EC%96%B4%EA%B2%8C%EC%9E%84


#넷플릭스 #오징어게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